기리가미네 정상. /최인한 소장
기리가미네 정상. /최인한 소장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6월 하순, 산악인들의 성지로 불리는 ‘일본 알프스’를 다녀왔다. 일본 알프스는 혼슈(본 섬) 중부에 위치한 히다(飛驒), 기소(木曾), 아카이시(赤石) 등 세 개 산맥을 총칭한다. 유럽 알프스에 비유될 만큼 아름답고 높은 산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 세 개 산맥은 북 알프스, 중앙 알프스, 남 알프스로도 불린다. 이번 산행은 기리가미네(霧ヶ峰), 노리쿠라다케(乗鞍岳), 다테야마(立山) 등 일본 알프스 내 ‘100명산(百名山)’ 세 곳을 목표로 삼았다. 예년보다 기온이 낮은 데다 6월 초 눈이 내려 정상에 오르기가 쉽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6월 21일 찾은 노리쿠라다케에서 예상치 못한 풍경과 마주쳤다. 

산 계곡 쪽에는 만년설이 그대로 남아 있고,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보였다. 3000m가 넘는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다가 길을 잃어 헤매기도 했다. 6월 23일, 다테야마에서는 강한 비바람을 만나 몸이 어는 추위를 경험했다. 높은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훨씬 위험하다. 6월 20일부터 25일까지 걸었던 일본 알프스 산행기를 소개한다. 

일본에 도착한 6월 20일, 첫 번째 목적지인 기리가미네로 향했다. 물 좋기로 유명한 나가노현에 위치하며, 최고봉 구루마야마(車山)는 1925m다. 기리가미네는 100명산 가운데 정상까지 오르기가 아주 쉬운 산으로 꼽힌다. 인근 스키장에서 만든 리프트가 구루마야마 아래까지 연결된다. 리프트 종점에서 산 정상까지 걸어서 20분이 채 안 걸렸다. 구루마야마에 오르자 북 알프스, 중앙 알프스, 남 알프스까지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 일행이 찾은 날은 흐렸지만, 후지산이 멀리 희미하게 보였다.

노리쿠라다케, 눈길에서 길을 잃다

어이쿠, 이러다가 정말 사고 나는 거 아닌가⋯. 걷기 이틀째인 21일, 머릿칼이 쭈뼛 서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3000m 이상 높은 산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잠시 잊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던 2022년 7월, 맑은 날에 어렵지 않게 정상에 올랐던 게 화근이었다. 노리쿠라다케는 나가노현과 기후현에 걸쳐 있는 북 알프스의 겐가미네(剣が峰·3026m)를 주봉으로 하는 활화산이다. 일본에서 19번째로 높다. 고대부터 영산(靈山)으로 숭배된 산악신앙의 중심지 가운데 한 곳이다. 승용차가 들어가는 노리쿠라고원에서 무공해 전용 버스로 갈아타고 30분을 더 달려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고도 2702m로 등산 초보자도 3~4시간 만에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는 거리다. 이날 오전부터 빗줄기가 가늘어졌지만, 2~3m 앞이 안 보이고 기온은 5도 정도여서 몸이 덜덜 떨렸다. 30분 정도 오르다가 하산길 등산객을 만나 길이 안전한지를 물었다. 60대 남성은 “산 위쪽에 눈이 쌓여 있고, 미끄러워 위험하다”고 했다. 정상 등정을 포기하고 내려오는 등산객 두 팀을 만났다. 우리 일행 대부분은 춥다며 중간쯤에서 돌아갔다.

이번 일본 알프스 원정대의 리더와 함께 둘이 갈 수 있는 곳까지만 가 보기로 했다. 1시간 정도 오르자 수백 미터로 이어진 눈 비탈을 만났다. 여름철에는 계곡 바윗길인데, 아직 눈이 쌓여 발자국을 보고 건너가야 하는 구간이다. 멀리 앞에 가는 등산객의 뒷모습을 따라서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조금 더 올라 정상에 도착하자 산안개 속에 ‘도리이(鳥居)’가 등산객을 맞았다. 기념사진 몇 컷을 찍은 뒤 하산했다.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쉽게 정상에 올라서인지 기분이 조금 들떴다.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 오길 잘했다는 우쭐대는 마음마저 생겼다. 결국, 하산길에 사달이 났다. 눈 비탈에서 올라올 때는 분명히 있었던 사람 발자국이 사라졌다. 갑자기 안개까지 짙어져 코앞도 안 보여 당황했다.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해도 길을 찾지 못했다. 눈 비탈을 피해 바윗길로 100m쯤 내려가다가 돌아왔다. 계속 가다간 다른 계곡으로 빠질 것 같아 눈 비탈을 건너가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둘이 잠시 심호흡을 한 뒤 천천히 주위를 살펴보니 조금 아래쪽에 사람이 건너간 발자국이 나타났다. 어휴, 여기구나. 살았다~. 마침안개도 조금씩 걷히자, 눈 비탈 건너에 사람이 희미하게 보였다. 10여 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옥과 천당을 오간 기분이었다. 높은 산에서 한여름에도 저체온증으로 큰 사고가 난다는 말이 실감 났다.

노리쿠라다케 정상과 노리쿠라다케 눈 계곡에서 여름 스키를 타고 있다. /최인한 소장
노리쿠라다케 정상과 노리쿠라다케 눈 계곡에서 여름 스키를 타고 있다. /최인한 소장

다테야마, 행운의 라이초 만나

넷째 날인 23일 찾은 다테야마는 도야마(富山)현 북 알프스 북부에 있는 산으로, 최고봉 오난지야마(大汝山)는 3015m다. 구로베댐과 알펜루트를 통해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이 찾는 산이다. 기차를 타고 나가노현의 오기자와역을 출발해 전철과 케이블카를 갈아타고 등산로 입구인 고도 2500m 무로도(室堂)까지 2시간이 걸렸다. 무로도에 도착하자 강풍과 폭우에다 짙은 안개로 바로 앞에 걸어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일행과 상의한 끝에 등산은 포기하고 산정 호수인 ‘미쿠리카이케’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1시간 정도 걷기를 하고 무로도역 휴게소로 돌아오자, 배낭과 옷이 흠뻑 젖었다. 다테야마의 6월은 아직 겨울이었다. 다테야마 풍경은 전날 밤 하쿠바호텔에서 멀리 본 야경이 전부였다. 하루 종일 올라가 본 것은 발밑에 쌓인 눈뿐이었다. 다테야마는 두 번째 도전이지만, 이번에도 정상에 못 갔다. 대신 호수 둘레를 걷다가 특별 천연기념물인 라이초(雷鳥)를 만났다. 고산지대에 사는 날지 못하는 새로, 라이초를 만나면 행운이 온다는 얘기가 있다. 

지나친 욕심은 버리고, 겸손해야

다음 날 조간에 일본 알프스에서 혼자 산행하던 20대 청년이 2400m 계곡에서 시신으로 발견됐고, 후지산을 등정하던 네 명의 등산객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실렸다. 이번 일본 알프스 산행에선 애초 목표했던 100명산 3곳 등정은 달성하지 못했다. 신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지는 않는다. 지나친 욕심은 버리고, 겸손해야 한다. 여름 일본 알프스를 걸으며 얻은 교훈이다. 

Plus Point

박혁신 일본 100명산 블로거 “일본 100명산을 아시나요.”

일본 100명산 위치도. /박혁신 일본 100명산 블로거
일본 100명산 위치도. /박혁신 일본 100명산 블로거
일본 최고봉은 야마나시현에 위치한 후지산(富士山·3776m)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후지산은 7~8월 두 달간 일반인의 정상 등정이 가능하다. 불(火)의 산으로 알려진 후지산은 전설과 신앙의 산이다. 예전에는 정토 신앙을 구하는 수행자가 많이 찾았다. 지금도 깊은 산속 곳곳에 오래된 신사와 절이 남아 있다. 후지산 정상에 한 번 오르는 것을 일생의 소원으로 꼽는 일본인이 많다. 후지산 정상은 만년설로 덮여 있다. 8개 봉우리로 둘러싸인 분화구는 깊이 200m, 폭 700m 규모로 장대하다. 1707년 대분화한 적 있는 활화산이다. 당시 화산 폭발로 수백㎞ 떨어진 에도(도쿄)까지 화산재가 날아가 2~3㎝나 쌓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흔히 후지산은 오를 때보다 멀리서 볼 때 아름다운 산이라고 말한다. 국토의 70% 정도가 산악 지형인 일본에는 거칠고 험한 산이 많다. 혼슈(본섬) 중부에는 기타다케(3193m), 야리가다케(3180m), 노리쿠라다케(3026m), 다테야마(3015m) 등 3000m급 산이 즐비하다. 이 고산지대를 유럽의 알프스에 비유해 ‘일본 알프스’로 부른다. 후지산 등 전국을 대표하는 산이 100명산에 들어간다. 그중에서도 후지산, 다테야마(立山), 하쿠산(白山)이 가장 기운이 좋은 3대 영산(靈山)으로 꼽힌다. 

100명산은 문인이며, 산악인 후카다 큐야가 1964년에 펴낸 단행본 ‘일본 100명산(日本 百名山)’에서 유래한다. 후카다는 도쿄대 재학 때부터 30여 년에 걸쳐 이들 산의 정상에 오른 뒤 등정기를 썼다. 그는 100명산 선정 기준으로 ‘산의 품격’ ‘산의 역사’ ‘산의 개성’을 꼽았다. 무조건 높은 산이 아니라 웅장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인문학적 가치가 있는 100곳을 골랐다.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부터 규슈 남단 야쿠시마까지 전국에 걸쳐 골고루 퍼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