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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교수·선장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교수·선장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출근과 퇴근은 직장인에게 긴장을 주기도 하지만 희망을 주기도 한다. 출근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혼이 난다. 그래서 직장인은 종종걸음을 친다. 일에 지친 심신이지만 퇴근 시간이 되면 이들은 다시 생기가 돈다. 그래서 직장인에게 출퇴근은 양념과 같은 것이다. 출근과 퇴근은 사람들에게 생활의 주춧돌이 되기도 한다. 직장인의 생활은 출퇴근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바다는 어떨까. 출근과 퇴근이 있기나 한가. 돌아갈 집과 직장이 있어야 출퇴근이라는 말이 성립한다. 선박에서 선원들이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 일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자신의 침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가까운 곳에 있다. 선박이라는 공간은 아주 좁다. 겨우 1분 이내에 출근하고 퇴근한다. 그래서 육지에서 직장인이 가지는 출근 시의 긴장과 퇴근에 대한 기다림이 없다.

그래도 바다에서 가끔 퇴근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삼등 항해사 시절 당직을 마치고 침실로 내려가려고 했다. 선장님이 불렀다. “삼항사 수고 많았어요. 이리 오세요.” 맛있는 안주와 맥주가 곁들여져 있다. 술기운이 오른 선장님은 옛날 옛적 무용담을 들려줬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직장인의 퇴근길 한잔과 다를 바가 없다. 어렵게만 보였던 선장님이 가까워졌다.

항구에 정박해 육지 구경을 나가는 것을 선박에서 퇴근으로 확대해 볼 수 있다. 항구에 입항하기 며칠 전부터 선원들의 마음은 설렌다. 어디로 구경을 가고, 어느 백화점에서 어떤 선물을 살 것인지 준비를 한다. 선박이 부두에 붙여지고, ‘선식’이 오면 그의 차를타고 육지로 나간다. 백화점과 선술집을 들렀다. 오락도 했다. 중고 서점에 들러 아주 싼 가격에 ‘케네디 대통령 자서전’ 등 읽기 쉬운 원서를 몇 권 사 왔다. 시간을 보내고 녹초가 된 상태로 선박으로 돌아온다. 곧 배는 떠난다. 출근을 시작하자마자 우리를 태운 배는 바다로 나가버린다. 당분간 퇴근은 없다. 긴 항해 중 원서를 읽었다. 새로운 내용을 알게 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더 큰 퇴근이 있다. 바로 휴가다. 선박에서 10개월간 근무한 후에 달콤한 2개월간의 휴가를 얻었다. 출근이 없는 퇴근을 하게 된 것이다. 집에서 빈둥빈둥 논다. 지겨울 때가 되면 다시 승선하게 된다. 출근인 셈이다. 이렇게 몇 년간 선원 생활을 하다가 영원히 하선하게 됐다. 바다로부터 영원한 퇴근인 셈이다.

육상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매일 출근과 퇴근을 해야 한다. 선박이었으면 1분이면 끝났을 출근과 퇴근이 1시간이 걸린다. 몸이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서야 나는 완전히 육지에 적응한 직장인이 됐다.

출퇴근이 없다는 말은 가족과 친구와 함께할 시간이 없다는 말이다. 완전히 단절된 외로움은 선박 생활의 가장 큰 단점이다. 그런데 이제는 일론 머스크가 만든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 등 통신수단의 발달로 언제나 가족과 친구와 소통이 가능하다. 그 단점은 사라졌다. 이제는 시각을 달리해 선박에서 출퇴근이 없는 장점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출퇴근 시간을 절약해 오직 나를 위한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다. 돌이켜 생각하니, 출퇴근 없는 선박 생활은 오히려 천금 같은 시간을 내게 주었고, 나는 그 시간을 잘 활용해 크게 성장할 계기를 마련했다고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