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대응을 출산율을 올리는 방식으로 하는 것은 이미 늦었다. 우리에게 남은 수단은 현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하지 않는 방식의 선제적 노후 준비다. 인구전략기획부의 핵심 의제에 ‘후세대에 기대지 않는 현세대의 노후 준비’가 포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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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한국과학 기술원(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서울대 산업공학, 미 프린스턴대 경영과학 및 금융공학 박사
김우창 한국과학 기술원(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서울대 산업공학, 미 프린스턴대 경영과학 및 금융공학 박사

비극적인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들은 평범한 사람이 평생 경험하기 어려운 비상식적인 상황을 겪는다. 독자가 그 과정을 납득하려면 그에 걸맞은 상황 설정이 필요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작가가 즐겨 쓰는 방식은 감당하기 어려운 부양의무를 주인공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평범한 젊은이가 목숨을 건 범죄행위에 가담하는 것은 몸이 불편한 노모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서라거나, 순결한 젊은 여성이 몸을 팔 수밖에 없는 건 연로한 홀아버지를 잘 모시기 위함이라는 것 등이다. 주인공이 기댈 만한 형제나 친척 없이 혼자 어려움을 헤쳐가는 것도 흔한 패턴이다.

강서구 모자 살인 사건의 비극

이런 비극적인 스토리는 현실에서도 발견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강서구 모자 살인 사건’이다. 2019년 9월, 누군가 112에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고 신고한다. 신고자는 사건 장소인 임대아파트 집 주소와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보니, 80대 후반의 노모와 지체장애인인 50대 아들이 큰 외상을 입고 숨져 있었다. 용의자는 둘째 아들인 50대 남성으로, 사건 발생 이틀 후 한강 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범인으로 판명된 둘째 아들의 동선을 경찰이 CCTV 등을 통해 추적해 보니, 한강에 투신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둘째 아들은 생전 병을 앓고 있는 노모와 중증 지체장애를 가진 형을 극진히 부양했다. 생계는 일용직으로 유지했다. 하지만 형의 증상이 심해지고, 본인의 건강마저 나빠지며 더 이상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생활고와 부양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는 것이 경찰의 수사 결과다. 112에 신고를 한 것도 둘째 아들이었다. 어머니와 형의 시신이라도 제때 발견됐으면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머니와 형을 살해한 용서받기 어려운 범죄지만, 당시 뉴스의 댓글을 보면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세 가족의 명복을 빌며 다음 세상에는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부양의 무게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후세대의 부양은 아이가 커가며 조금씩 수월해지지만, 앞 세대의 부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황이 악화한다. 경제적으로 전혀 준비되지 않은 부모의 부양은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에게도 만만한 일이 아닌데, 강서구 모자 살인 사건의 당사자는 사회적인 성공도 이루지 못했고, 크게 물려받은 재산도 없었던 듯하다. 그런 상황에서 혼자서 두 명을 부양해야만 했다. 안타깝지만, 2024년의 대한민국은 다음 세대에게 이와 유사한 상황을 국가 차원에서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저출생 충격, 먼 미래 아니다

저출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구가 유지되기 위한 합계 출산율인 2.1을 하회한 것은 40여 년 전인 1983년이다. 100만 명이 넘게 태어났던 1971년생이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한 2002년에는 그 절반인 50만 명도 태어나지 않았다. 작년에는 또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22만 명이 태어났다. 신생아가 의미 있는 경제활동을 하기까지는 통상30년이 걸린다. 따라서 저출생 충격이 본격화하는 것은 먼 미래가 아니다. 앞 세대 대비 인구가 반 토막 난 2000년대 초반생이 사회에 진출하는 시점은 불과 몇 년 뒤인 2030년 부근부터다.

저출생 충격이 본격화하는 단적인 예가 건강보험 재정이다. 노령 인구가 본격적으로 증가하며 소득의 7% 수준인 건강보험료로는 더 이상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게 됐다. 올해부터 구조적인 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4년 뒤인 2028년에는 현재 25조원가량 쌓여있는 기금이 완전히 고갈된다. 8년 뒤인 2032년에는 정부 지원금과 적자 보전금을 합쳐 43조원의 국가 재정이 투입되어야 한다. 국내총생산(GDP)의 2%에 육박하는 수치다.

국민연금도 같은 실정이다. 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기금 고갈은 2055년이다. 전문가들조차 30년 가까이 뭔가를 해볼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보험료로 국민연금 급여를 메꿀 수 없는 시기, 그러니까 본격적인 국민연금 재정 적자가 발생하는 시기는 불과 6년 뒤인 2030년이다. 가입자가 바로 수혜자가 되는 건강보험과 달리, 국민연금은 납입 시점과 수급 시점에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기금 고갈이 늦을 뿐, 적자 발생 시점은 건강보험과 대동소이하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이 적자로 돌아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노인과 중장년을 포함한 현재의 기성세대가 받아 가는 혜택보다 적은 비용을 지불해서다. 인구 피라미드가 정상적이었다면 후세대가 이를 메꿔줬겠으나, 인구구조의 악화는 주지의 사실이다.

건보·국민연금 재정 미리 쌓아야

해법은 간단하다. 그 앞 세대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인구가 많은 1970~80년대생이 경제활동을 하는 향후 20여 년간,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재정을 선제적으로 쌓는 방향의 개혁을 하면 된다. 국민연금의 경우, 현세대가 납입하고 있는 보험료는 GDP 대비 약 2.5%다. 이를 최대한 빨리 4.5%로 끌어올리면 기금은 소진되지 않고 모든 세대가 같은 보험료를 내고 같은 연금 급여를 받을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국민연금보험 납입액을 GDP의 6% 수준까지 올리면 2060년 이후 세대부터는 기금 규모가 충분히 커져서 보험료를 한 푼 내지 않더라도 기금의 수익만으로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 부모가 시집·장가가는 자식에게 생계에 보태라며 작은 상가를 하나 마련해주는 것과 같다.

지금보다 보험료를 두 배 넘게 내는 것이니 말도 안 된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금 이대로 가면 2080년 후세대는 국민연금보험료로 GDP의 10% 가까이 부담해야 한다. 요컨대 현세대는 후세대가 내야 할 보험료의 4분의 1만 내고 있는데, 현세대부터 조금만 더 부담하면 대대손손 같은 보험료로 국민연금 혜택을 누리는 것이고, 그보다 조금 더 부담하면 다음 세대의 노후 소득 보장을 현세대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거다.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역시 대동소이한 원리가 적용될 것이 명백하다.

사실 현재의 기성세대는 앞뒤 세대와 비교할 때 한참 낮은 수준의 부양 의무를 부담한다. 노년 부양비와 유소년 부양비를 더한 총부양비(생산가능인구 100명이 부담해야 하는 비생산가능인구의 수) 지표를 보면, 출산율이 높았던 앞 세대에선 지표가 80명이 넘는다. 고령화 폐해를 감당해야 할 다음 세대의 총부양비 지표는 100명을 웃돈다. 앞 세대는 수명이 짧고, 뒤 세대를 낳지 않아 부양할 대상이 적은 현재의 기성세대는 40명도 안 되는 아주 낮은 총부양비를 누려왔다. 앞뒤 세대와 비교하면 위로도, 아래로도 부양 부담이 적었으니 이번 세대는 충분히 본인이 미리 재원을 적립해 두는 방식의 노후 준비를 할 여력이 있다.

저출생 대응을 출산율을 올리는 방식으로 하는 것은 이미 늦었다. 수백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지만, 백약이 무효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적적으로 출산율이 회복된다 쳐도 앞으로 한 세대가량의 초고령화는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수단은 현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하지 않는 방식의 선제적 노후 준비다. 이를 통해 국가 차원에서 다음 세대에게 비극의 주인공같은 상황을 강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새롭게 생기는 인구전략기획부의 핵심 의제에 ‘후세대에 기대지 않는 현세대의 노후 준비’ 가 포함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