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월 19일 평양에서 조약을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노동신문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월 19일 평양에서 조약을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노동신문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서울대 법대, 국방대 국방관리 대학원 석·박사, 현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 현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법대, 국방대 국방관리 대학원 석·박사, 현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 현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다시 만났다. 6월 19일 평양에서 이뤄진이번 만남은 이전보다 더 뜨거웠다. 김정은은 오전 2시 30분까지 기다려 푸틴을 맞이했다. ‘지각 상습범’ 푸틴의 늦은 등장으로 1박 2일이던 일정이 하루짜리로 바뀌었지만, 김정은은 개의치 않았다. 가장 큰 소득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러 양국이 새롭게 맺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연방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이하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이다. 이는 북한에는 엄청난 정치적 승리를 의미한다. 냉전 종식과 핵 개발 이후 중국 이외에 별다른 우방국이 없던 북한에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는 왜 북한을 필요로 하나

북한은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동맹조약이었던 조·소 우호조약이 갱신되지 못하고, 2000년 양국 관계가 북·러 친선·선린·협조 조약으로 하향 조정됨에 따라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유지하지 못했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일으킨 이후에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깨닫는다. 전쟁을 대비해 탄종별로 수백만 발 수준으로 포탄을 쌓아놓은 나라는 다섯 손가락에 꼽는데, 그중 러시아에 실제 지원해 줄 수 있는 나라가 북한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북한의필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군수 지원을 요청하자, 북한은 이를 활용해 양국 관계를 군사동맹으로 끌어올리고자 했다.

푸틴과 김정은의 만남은 이번이 세 번째다. 첫 번째 2019년의 만남은 탐색전에 불과했다. 푸틴은 김정일과 몇 차례 만남을 가졌으나, 2011년 말 급하게 북한의 수장이 된 김정은을 8년이 다 되도록 만나지 않았다. 2018년 섣불리 대화 프레임을 만든 한국 좌파 정권이 미국과 북한의 만남을 중개하자,김정은을 만나지 않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곧바로 회동했다. 푸틴도 역시 김정은을 만났다. 이 시기는 김정은이 외교가에서 가장 높은 주가를 찍던 때였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당시 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 원하는 것도, 혹은 받아 갈 그 무엇도 없었다.

3년 후 상황은 돌변했다. 2022년 2월 ‘수주 만에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겠다’며 우크라이나를 휩쓸 기세였던 러시아는 참혹한 패배를 거듭했다. 결국 키이우 점령은커녕 북부 전선을 유지하기도 힘들어졌다. 러시아는 돈바스-헤르손 전선을 유지하기도 바빴다. 2022년 여름부터 전쟁이 교착 상태로 빠지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하루에 수만 발씩 주고받는 화력전을 펼쳤다. 지리멸렬한 탄약 싸움이 일어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 모두 포탄이 부족해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내몰렸다.

이미 2022년 봄부터 당시 러시아 국방장관이던 세르게이 쇼이구가 비밀리에 중국·이란·북한을 돌아다니며 탄환과 물자를 구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러시아는 중국부터 찾았으나, 중국 측은 물자 지원을 해주되 무기 제공은 거절했다. 그다음은 이란이었다. 샤헤드-136이라는 저렴하지만, 벌떼 공격이 가능하게 해주는 자폭 드론을 이란으로부터 수입했고, 그것도 부족해 면허 생산을 했다. 문제는 152㎜ 포탄과 122㎜ 방사포탄 등 러시아가 전통적으로 즐겨 사용해 온 탄약이 절망적으로 부족했다는 점이다. 이런 전시 물량을 수백만 발 수준으로 제공해 줄 수 있는 나라는 오직 북한뿐이었다.

북·러 군사동맹인가?

쇼이구는 2023년 북한의 무기 전시회와 7·27 열병식에 공식 방문하며, 북·러 간 관계를 과시했다. 서로 무기를 주고받을 만큼 친하다는 과시이자, 2022년 양국 간의 무기 거래를 의혹에서 확신으로 바꾸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약 한 달 반 후에 김정은은 푸틴을 찾았다. 푸틴은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김정은을 맞이하며 우주 기술 개발 협력을 암시했고, 이듬해 푸틴이 북한으로 답방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푸틴의 5선 당선 이후 방북이 예상됐다. 푸틴과 짧은 회담을 마친 김정은은 우글로보예 공군기지와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서 러시아의 최신 무기들을 보며 헤벌쭉한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 방문 이후 북한은 작년 10월부터 올해4월까지 약 7000개 이상의 컨테이너를 러시아로 보냈다. 그래서 이번 푸틴의 방북은 북한에 감사함을 표현하는 자리였다. 정확히는 감사함이 아니라 독재자들끼리의 거래다. 북한이 원한 대가는 당장 버틸 돈과 식량보다 러시아와의 강력한 군사동맹이었다. 그리하여 북한과 러시아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에는, 통상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등장하지 않는 문구가 삽입됐다. 내용은 ‘(북·러) 양국은 전쟁 상태에 돌입하면 서로가 지체 없이 보유한 모든 수단으로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었다. 군사동맹 조약에서나 존재할 전쟁 자동 개입 조항이 등장한 것이다.

해당 조항을 놓고 많은 이가 양국이 군사동맹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한다. 이것이야말로 김정은과 북한이 원하는 바다. 사실 해당 조항의 문구는 1961년 조·소 우호조약 1조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1961년의 북한과 소련처럼, 2024년의 북한과 러시아도 강력한 군사동맹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바람은 러시아의 속내와 다소 달라 보인다. 애초 러시아가 북한을 군사동맹으로 원했다면 ‘전략적 동반자’라는 애매한 문구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통상 국가 관계는 선린·우호, 협력, 전략적 동반자, 동맹의 단계로 심화한다. 양국의 사이가 좋다는 것이 전략적 동반자라는 말로 표현되지만, 의외로 남발된다. 한국과 중국도 전략적 동반자이고, 한국과 러시아는 2008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독재자 간의 동상이몽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동맹을 맺었다고 하더라도 한계는 존재한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며, 동맹조차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하는 러시아의 국가적 성향과 태도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이다. 아르메니아는구소련의 일부였으며, 러시아는 1997년부터 아르메니아의 군사동맹이었다.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과 나고르노카라바흐 지방을 놓고 충돌해 왔는데, 러시아는 동맹으로서 당연히 계속 아르메니아의 편에 서 있었다.

그러나 2020년 양국 간 전쟁이 발발했음에도 러시아는 아르메니아를 도우러 나서지 않았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르메니아의 본토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개입 의무가 없다는 것이 명분이었지만, 실은 패색이 짙어 보이는 전투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2022년 아제르바이잔이 다시 해당 지역으로 진격해 아르메니아를 자극할 때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공세로 병력의 여유가 없다며 도움을 거절했다. 군사동맹 조약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는 말이다. 분노한 아르메니아는 2023년 9월 소규모나마 미국과 군사훈련을 실시하며 러시아의 배신에 보복했다. 요컨대 러시아는 자국 이익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북한을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정부는 북·러 간의 밀착에 주목하며,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재검토, 러시아 독자 제재 및 금수 품목 추가 등으로 보복했다. 이에 러시아는 적반하장 격으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시 북한에 무기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애초에 자국 무기 생산 능력이 부족해 북한에까지 손을 벌린 것이 러시아다. 우리 정부는 러시아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단계적 무기 제공으로 러시아에 보복과 압박을 가해야 한다.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국제법과 질서를 준수하듯, 북·러 조약이 절대적 규범으로 작용할 것인가. 역사는 독재자 사이의 합의는 깨어지는 것임을 입증한다. 애초에 가치와 이상을 위한 만남이 아니라 자기 권력 강화를 위한 만남이 북·러 정상회담과 조약의 본질이다. 그리하여 러시아에 확실한 보복으로 교훈을 남기고, 북·러 협력보다는 북·중 갈등을 부각하면서 북한을 흔드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