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도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머스크는 테슬라 창업 이전 페이팔에서) 쫓겨난 적이 있지 않나. 회사의 혁신과 주주 가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게 (미국 혁신 기업) 이사회의 역할이니까 대주주도 잘못하면 쫓겨날 수 있는 거다. 한국 기업 주식이 이렇게 저렴한 건 그런 견제 장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권욱 안다자산운용 회장은 강방천 전 에셋플러스 회장, 황성택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와 함께 국내 투자자문 업계의 성장을 견인한 1세대 ‘3인방’으로 꼽힌다. 1999년 코스모투자자문을 설립해 업계 1위 자문사로 키웠다. 이후 2011년 안다투자자문(2014년에 운용사로 전환)을 설립하면서 해외투자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안다’는 몽골어로 ‘의형제’라는 의미다.
7월 3일 중구 남대문로에 있는 안다자산운용 사무실에서 만난 최 회장은 대한민국의 제조업 기술과 소프트파워가 전 세계적으로 높은 위상을 누리고 있는데도 유독 주가는 주요국 중 ‘바닥’ 수준의 저평가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정부의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혁신을 이룬 모든 국가가 그 길로 가고 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환영했다. 하지만 미흡한 주주 환원과 후진적 지배구조 등을 덮어두고 상속세 인하를 주요 해결책으로 보는 일부 의견에는 우려를 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해외 시장에서 느끼는 한국 주식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
“해외 투자자들을 만나보면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관심이 매우 적다는 걸 알게 된다. 예전에도 저평가가 심했는데 지금은 거의 관심이 없다. 저가품이었던 한국 자동차가 이제는 프리미엄 시장에서 주목받을 만큼 한국이 제조업과 소프트 파워를 비롯해 전 분야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유독 주식은 저평가가 심하다.”
정부 차원에서 밸류업에 힘을 싣고 있으니,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밸류업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보긴 하는데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미국은 철저하게 ROE(자기자본이익률) 중심의 경영을 한다. 주주 자본을 빌린 돈이라고 생각해 이익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데 우린 그런 인식이 부족하다. 투자금도 타인의 자본인데 이자 없이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문제다.불필요한 유보 자금을 배당하거나 순이익을 높여 ROE를 높여야 한다.”
일본의 경우는 어떤지.
“일본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에서도 ROE 중심의 ROESG를 도입해 ROE도 높이고 ESG도 개선하고 있다. 가족 중심 경영이 한국보다 많이 줄어들면서 주주 분산이충분히 이뤄져 정부 주도로 밸류업이 가능했다. 그런데 과연 한국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회의적인 시선으로 보는 외국인 투자자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7월 6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시가총액(시총) 10조엔(약 85조원)이 넘는 일본 기업은 19개로 집계됐다. 작년 연말 10개보다 두 배가량 늘어난 것. 정보통신(IT)붐이 일었던 2000년 말에도 시총 10조엔을 넘는 기업은 세 개뿐이었다. 시총 10조엔 이상 기업이 최근 급증한 것은 일본 기업들이 이익 능력이 커진 데다 주주 가치를 높이는 이른바 밸류업 프로그램의 효과로 풀이된다.
ESG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 못한 것 같다.
“ESG 경영은 기업도 사회·환경의 일부라는 인식을 근간으로 한다. 기업은 주주뿐 아니라 이해관계자 모두의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 전 세계가 다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한국 기업만 지배구조나 환경에 관심 없이 제품만 잘 만들어 팔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이라면 더더욱 ESG를 무시하고 살아남을 수 없다.”
상장 기업의 낮은 배당 성향은 여러 전문가가 지적하는 공통적인 문제이긴 하다.
“우리 증시는 지난 10년 동안 평균 2%대수익밖에 못 돌려줬다. 2012~2022년 기준으로 미국은 12.6%, 대만은 10%, 인도는 7.6%, 일본은 5.9%였는데 같은 기간 한국은 1.9%였다. 경영에 참여해 월급을 받는 대주주는 괜찮겠지만 주가 수익률과 배당을 기대하고 투자한 소액주주는 물먹은 셈이다. 국내 증시 가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시총은 다른 선진국과 다를 바가 없다. 공급(증자와 상장 등)만 크게 늘렸지, 주주에게 돌려주는 건 없었다는 이야기다. 자본시장의 혈액순환이 꽉 막혔다. 성장 기업의 자금 조달을 위해서도 성숙 기업이 돈을 돌려줘야 한다.”
대주주의 이익만 대변하는 이사회도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51% 지분을 가진 대주주라고 해도 소액주주의 이익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51% 대주주가 경영을 잘해서 수익을 내고, 배당하거나 주가 수익을 올려달라고 소액주주가 투자금을 위탁한 것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도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난 적이 있지 않나. 회사의 혁신과 주주 가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게 (미국 혁신 기업) 이사회의 역할이니까 대주주도 잘못하면 쫓겨날 수 있는 거다. 한국 기업 주식이 이렇게 저렴한 건 그런 견제 장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도적으로 뭔가 바꿀 수 없을까.
“예를 들어 대주주 지분이 30%라면 이사회의 30%만 추천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다양한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향으로 이사회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ROESG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소액주주의 이익도 대주주의 이익과 동일 선상에 놓고 혁신하려는 기업만 상장하는 거래소를 하나 더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 채찍이 아닌 당근을 통해 변화를 유도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 투자자)도 많이 돌아올 것이다.”
최고 세율이 50%에 달하는 상속세 부담을 국내 증시 저평가의 원인으로 보기도 하는데.
“상속세가 높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높은 상속세 때문에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영자의 의무를 다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건 견강부회(牽强附會·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다. 상속세 문제는 별도의 사안으로 다뤄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7월 말 세제개편안 발표를 앞두고 상속세 최고 세율 인하를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7월 3일 정부가 발표한 ‘역동 경제 로드맵 및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따르면 앞으로 배당을 늘린 기업은 증가분에 대한 5% 법인 세액을 공제받을 수 있다.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한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 공격이 증가하는 추세다. 어떻게 봐야 할까.
“모든 걸 잘하는 기업은 물어뜯을 수도 없고 방어할 수 있는 논리가 나온다. 자본시장 개방을 안 했으면 모르겠지만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행동주의 투자로 미국 기업의 경영진을 바꾼 경험이 있다. 경영진은 고액의 연봉을 받으면서 주주 이익에 무관심했다. 로펌을 통해 이사회에 공문을 보냈는데, 자신들이 선임한 경영진을 사퇴하게 만들고 이사회도 새로 구성했다. 새 경영진이 주주 친화적인 경영을 하고 혁신 역량을 집중하면서 이후 주가는 물론 기업 가치가 급등했다. 우리도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 글로벌 펀드로 하여금 이 같은 행동주의를 못 하게 한다면 말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