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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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김모씨는 결혼한 아들에게 11억원을 증여하려다가 증여세만 2억8000만원에 달한다는 점을 알고 세무사를 찾았다. 세무사는 아들 부부가 이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로 아들과 며느리에게 나눠서 증여하는 ‘분산 증여’를 제안했다. 세무사는 분산 증여할 경우 9000만원가량의 증여세를 아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근 시중은행의 프라이빗뱅커(PB)나 세무사는 높은 증여세를 고민하는 고액 자산가에게 분산 증여 방식을 자주 권한다. 부모가 자녀 외에 사위나 며느리, 손주들에게 나눠 증여할 경우 증여세 부담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사위나 며느리는 법정상속인이 아니라 자녀와 별도로 증여세를 책정하고, 짧은 증여세 합산 기간이 적용돼 자녀에게만 증여할 때보다 증여세를 절약할 수 있다. 

김씨 사례의 경우 아들에게 11억원을 단독 증여하면 40%의 증여세율이 적용된다. 누진 공제 6000만원을 제외하면 2억8000만원가량의 증여세가 발생한다. 현행법상 10억원 초과 30억원 이하를 증여하면 40%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세무사는 김씨에게 아들에게 4억9000만원을 증여하고 김씨와 그의 아내가 며느리에게 각각 3억500만원을 증여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이 경우 약 1억9000만원의 증여세만 내면 된다. 9000만원가량의 증여세를 아낄 수 있다. 분산 증여로 높은 증여세율 구간을 피했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증여한 4억9000만원에 대한 증여세율은 20%다. 5억원을 초과하면 30%의 세율이 적용된다. 현행법은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 각자에게 증여받더라도 동일인에게 증여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증여세를 매긴다. 반면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동일인으로 보지 않는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각각 3억500만원을 증여했더라도 6억1000만원이 아닌 3억500만원씩 따로 세금을 부과한다. 6억원은 30%, 3억500만원은 20%의 증여세율이 각각 적용된다. 사위도 마찬가지다. 사위와 며느리는 1000만원 증여세 공제도 받을 수 있다. 사위와 며느리는 증여세 합산 기간도 5년으로 짧다. 증여한 이후 5년이 지나고 추가로 증여나 상속을 하더라도 합산 과세가 적용되지 않는다. 자녀의 경우 이 기간이 10년으로 길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3억원을 증여받아 20%의 증여세율을 적용받은 후 10년 내 3억원을 추가로 증여받았다면 총 6억원을 증여받은 것으로 보고 증여세율을 30%로 다시 적용해 세금을 부과한다.

단 분산 증여 시 주의할 점이 있다.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증여받은 재산을 남편에게 다시 송금할 경우 실질적으로 아들에게 증여한 것으로 보고 증여세가 추징될 수 있다. 아들 부부가 증여받은 돈으로 주택을 구매했을 경우 공동명의로 하는 것이 유리하다. 아들 명의로만 주택을 취득한다면 역시 아들에게만 증여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또 아들 부부가 이혼한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보통 결혼 전에 취득한 자산이나 결혼 후 자신의 명의로 취득한 자산은 특유재산이라고 해서 재산 분할 대상에서 제외된다. 원칙적으로 사위나 며느리에게 증여한 재산은 특유재산으로 인정된다. 당사자는 이혼 소송 시 부모가 배우자에게 증여한 재산은 실질적으로 자신에게 증여하려는 목적이었다는 점을 주장해야 한다. 또 증여받은 재산의 유지 또는 증식에 협력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재산 분할을 요구해야 한다.

가족 법인 설립도 증여세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이다. 자산가들이 수익형 부동산을 구입하면서 자녀의 재산 형성을 돕고 장기적으로 증여까지 할 목적으로 가족 법인을 설립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국세청이 공개한 ‘2023년 사업자 등록 및 부가가치세 신고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영업 중인 ‘가동 사업자’ 는 995만 개로, 이 중 부동산 임대업이 243만1000개(24.4%)로 가장 많았다. 이 중 상당수는 가족 법인으로 추정된다. 최근 몇 년간 금융사 PB들에게도 가족 법인 설립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가족 법인이란 법인의 주주가 가족으로 구성된 법인이다. 가족 법인은 상속 및 증여 효율성을 높이고 세금 부담을 최적화하는 등 다양한 이점이 있다.

60대 김모씨는 아내, 두 자녀와 함께 공동으로 50억원 상당의 상가를 구입하려고 한다. 상가를 가족 4인이 공동으로 구입할 경우 각자 지분에 해당하는 만큼의 자금이 필요하다. 예컨대 자녀 2인이 각각 30%의 지분만큼 투자한다면 1인당 15억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대출 20억원을 받는다면 9억원씩 마련해야 한다. 이를 김씨가 증여한다면 두 자녀는 약 1억9000만원의 증여세를 각각 내야 한다. 자녀가 증여세를 낼 자금이 없다면 김씨는 증여세까지 증여해야 하기 때문에 세금 부담이 늘어난다. 가족 법인으로 투자할 경우 자본금에 대한 자금 출처만 있으면 된다. 김씨와 가족이 자본금 1억원 규모의 가족 법인을 설립한다면 자녀는 지분율 30%에 대한 자금 3000만원만 마련하면 된다. 성인 자녀에게 증여세 없이 5000만원까지 증여할 수 있기 때문에 자본금을 김씨가 자녀에게 주는 것은 문제가 없다.

법인을 설립하면 개인보다 대출금 한도를 늘릴 수 있다. 또 대표이사인 김씨의 자금을 법인에 대여(가수금)할 수 있다. 가수금을 이용할 경우 주의할 점이 있다. 가수금의 세법상 이자율은 연 4.6%를 적용한다. 또 법인의 각각 주주가 얻은 이익이 연간 1억원 이상이 되는 경우 증여로 보고 증여세를 부과한다. 김씨가 구입한 상가가 60억원으로 올라 매도할 경우 양도 차익은 10억원, 법인세는 약 1억7000만원이 발생한다. 세금을 제외한 법인의 순이익은 8억3000만원이 된다. 지분율대로 자녀가 배당을 받는다면 약 2억5000만원(세전) 배당소득이 발생한다. 자본금 3000만원으로 자녀들은 2억5000만원의 소득이 발생한 것이다. 김씨는 장기적으로 부동산 임대 사업을 자녀들에게 물려줄 계획이다. 자녀들은 가족 법인으로 상가에 투자하면서 부동산 임대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체계적인 증여도 받을 수 있다. 자산가들이 가족 법인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가족 간 재산 분쟁을 줄이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법인 자금은 배당이나 급여 등의 목적이 아니라면 대주주라도 인출할 수 없다. 수익이 발생해 배당을 할 때도 지분율대로 배분하고, 계약과 운영 규정에 맞춰 법인을 관리하기 때문에 가족 사이에 재산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작아진다. 

세금 측면에선 가족 법인과 개인 투자 중 어떤 것이 유리한지 따져봐야 한다. 현재 지방소득세를 합한 법인세율은 최소 9.9%에서 최고 26.4%까지다. 개인에게 적용되는 소득세율(6.6~49.5%)보다 낮다. 개인에게만 부과되는 건강보험료까지 고려한다면 법인을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다만 배당 등으로 법인 자금을 인출할 경우 근로소득, 양도소득, 배당소득 등 소득세가 한 번 더 발생한다. 자녀에게 소득이 없다면 괜찮지만, 만약 고소득 직업을 갖고 있다면 배당 시 소득세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또한 서울의 경우 취득세 중과세율(9.4%)이 적용된다. 따라서 법인세 외에 발생할 수 있는 세금을 따져보고 법인 설립을 결정해야 한다. 가족 법인의 가장 큰 문제는 편법 증여나 탈세의 통로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최근 유명 연예인이나 웹툰 작가 등 자산가 중 일부가 가족 법인으로 편법 증여를 하거나 탈세를 해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가족 법인은 세무 당국의 주요 타깃이 되기 때문에 합법적인 가족 법인 운영이 필요하다. 

송기영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