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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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영향은 시차를 두고 증시에 반영된다. 정치의 꽃은 선거이며, 선거철이 되면 여러 가지 정치 상황이 경제와 증시를 파고든다. ‘정치적 경기 변동(PBC·Political Business Cycle)’ 이론은 선거가 있던 해에, 경기가 좋으면 집권당이 이기고, 경기가 부진하면 정권이 바뀔 확률이 높다는 점에 주목했다. 정치가들이 선거 전에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선거 이후에는 다시 정책을 회수함에 따라 경기 변동이 뒤따른다는 가설이다. 

실제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 증시계절성도 뚜렷하다. 1928년부터 대통령 선거의 해에는 3~4월이 상대적으로 부진하고, 6~8월은 75% 상승 확률과 7% 수준의 평균 상승률을 보였다. 2024년 증시도 현재까지 이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9월 이후 선거일까지 주가가 크게 오르면 집권당이 승리할 확률이 높다는 통계도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확률이 높아질수록 여름 이후 미 증시 상승세도 주춤해질 수 있다는 가설도 가능하다.

어쨌든 트럼프가 유리해질수록, 바이든을 지지하는 재닛 옐런 미 재무 장관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뉴케인지언(새 케인스주의 경제학파)으로 분류되는 옐런의 성향으로는 실업률이 불안정해지면 바로 재정과 통화정책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고용 지표 부진을 감안하면, 선거 전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하에 나설 전망이다. 주가 상승이 집권당의 프리미엄이라는 시각에서 선거 전까지 바이든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 행보가 이어질 것으로 봐야 한다.

PBC 이론 외 ‘정당 이론(partisan theory)’ 도 정치와 경제의 연결고리를 강조한다. 진보는 고용을, 보수는 물가를 더 중시한다는 의견이다. 정치 스펙트럼은 진보와 보수를 넘어 더 다양한 색채를 띠고 있고, 정책 결정에 따라 산업의 부침이 결정되면서, 정당 이론은 경제와 증시에 좀 더 직접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가령 기후 위기 또는 이민 정책을 바라보는 정당 정책은 정당의 색깔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고 있고, 2024년 유럽과 미국 선거에서 중요한 쟁점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전쟁·ESG 회의론 부상하는 유럽

유럽 정치 상황은 혼란스럽다. 영국은 진보가 집권하고, 프랑스는 극우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외에도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이탈리아 형제들(FdI)’ 같은 극우의 입지가 유럽연합(EU)에서 전반적으로 커지고 있다. 집권 정당의 정책에 불만이 제기되며, 이를 바꾸고자 하는 힘은 거세다. 친환경, 친이민 정책에 대한 반발이 대표적이지만, 또 한 축은 피로도가 깊어진 러시아와 갈등이다.

2022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 장관이 “러시아의 돈이 유럽 정당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발언했다. 당시 표적이 된 정치인 중에는 이탈리아 우파연합의 마테오 살비니 상원의원 등이 있다. 유럽의회 의장국인 헝가리는 대표적인 친러 세력으로 꼽히고 있으며, 7월 2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휴전과 평화협정을 촉구했다. 2024년 유럽의 정치 지형은 러시아에 유리하다. 유럽 각국 국민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를 선거로 보여주고 있다.

EU와 러시아의 관계 개선은 EU, 특히 독일 경제에 긍정적이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수입이 금지된 후 독일은 물가가 상승하고 침체를 이어왔다. 그간 독일 국민은 탄소 중립에 우호적이었지만,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타이트한 탈탄소 정책은 에너지 전환 비용 부담으로 전이됐고, 전쟁이 가세하면서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제 유럽과 독일에서 기후 위기 대응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회의론이 힘을 얻고, 이는 투자 지형의 변화를 의미한다.

美 정권 교체 이뤄지나

미국의 정치 지형은 더 험난하다. 불확실성의 대명사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이 현실화하고 있다. 박빙의 승부에서 TV 토론을 거치면서 트럼프 측으로 승부의 추가 완연히 기울었다. 토론 후 토론의 승자를 묻는 투표에서 트럼프 지지율은 67%에 달했다. 투자자의 셈법은 복잡해진다. 트럼프 1기 때를 돌려보면, 트럼프는 기존 정치권에서 벗어난 행보를 자주 보였다. 정책 변화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관찰이 필요하지만, 당장 트럼프의 승리를 가정한 자산 시장의 포트폴리오 재편이 이미 시작된 것으로 판단한다.

업종별 희비는 선명하다. 바이든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추진 동력을 잃게 될 것이며, 국내 자동차와 배터리 기업엔 재앙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면 전기차 보조금 폐기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북미 투자를 늘려온 국내 완성차와 배터리 업체 역시 투자 규모를 재조정할 수밖에 없다. 저탄소 정책도 뒤집을 것이다. 트럼프는 친환경 에너지보다 석유 등 화석연료를 선호한다. 소외됐던 에너지 관련주가 최근 들어 반등한 배경이다. 트럼프 시대는 규제 완화와 함께할 것이다. 헬스케어는 공공 의료 및 약가 인하 우려 완화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금융은 규제 완화가 현실화하면, 다시 레버리지를 늘릴 여력이 커진다.

트럼프 2기가 걱정되는 부분은 거시 정책 변화에 있다. 트럼프는 소득세와 법인세 감세를 전면에 내세웠다. 2025년 만료 예정인 소득세 감세를 영구화하고, 법인세도 21%에서 15%로 낮추겠다고 한다. 세수 감소는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으로 늘어날 관세로 충당할 수 있을 거라 주장한다. 하지만 감세를 통한 경제성장 유도 및 정부 지출 강화가 재정적자를 확대할 수 있다.

트럼프의 승리 가능성이 커진 후, 채권시장 흐름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반영하고 있다. 포퓰리즘적 국채 발행으로 다시 금리가 요동칠 거란 우려다. 만일 세수가 줄어 추가적인 국채 발행이 불가피해지면, 채권시장에 문제로 작용할 수 있다. 장·단기 금리 흐름도 우려된다. 투자자는 단기 미국 국채를 매수하고, 장기 국채는 매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재정 적자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재점화 가능성이 커지자 이를 채권 포트폴리오에 반영하고 있다. 트럼프 핵심 정책 중 하나인 이민자 제재 역시 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 노동 공급 감소는 특히 서비스 임금의 상승을 가져올 수 있다.

트럼프 당선,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 이유

그나마 기대 요인은 갈등의 완화 가능성이다. 앞서 언급한 EU의 우파나 트럼프, 둘 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한 발 빼려 한다. 트럼프 2기가 현실화하면, 종전을 종용할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다. 중국과 관계에서도 트럼프의 방향성은 명확하다. 관세 인상과 미국 물품 구입이 이뤄지면 중국을 적대시할 이유는 없다는 시각이다. 중국과 미국의 경제 관계 개선은 한국 경제와 증시에 우호적인 변화다.

윤지호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전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한화증권 투자분석 팀장,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저자
윤지호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전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한화증권 투자분석 팀장,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저자

지금의 트럼프를 있게 한 책, ‘거래의 기술’ 은 다음 문장으로 시작한다. “나는 돈 때문에 거래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거래 자체를 위해서 거래를 한다. 거래는 나에게 일종의 예술이다.” EU에서 우파의 약진과 미국에서 트럼프 2기 가능성을 시나리오에 두고, 그들이 세계를 상대로 어떤 거래를 시작할지 주목해야 한다. 정치의 계절, 거래의 기술이 필요해졌다. EU와 바이든의 친환경이 퇴조하고, 러시아 및 중국과의 갈등이 완화되는 시나리오다. 경제와 증시는 거래의 결과를 예측하고, 미리 반영해 갈 것이다. 트럼프가 글로벌 경기의 활성화 가능성 특히 한국에 기회가 될 여지가 있다. 바이든이 당선된다면 기존의 정책적 연속성은 이어지겠지만 미국만 좋은 환경이 상당히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현 상황에서 트럼프의 지지율 상승을 부정적으로 판단하지 않는 이유다. 

윤지호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