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7일 프랑스 총선 2차 투표에서 여당과 극우 정당을 앞지른 좌파 연합의 장 뤼크 멜랑숑이 연설하고 있다. 그는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대표로 좌파 연합을 이끌고 있다. 사진 EPA연합
7월 7일 프랑스 총선 2차 투표에서 여당과 극우 정당을 앞지른 좌파 연합의 장 뤼크 멜랑숑이 연설하고 있다. 그는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대표로 좌파 연합을 이끌고 있다. 사진 EPA연합

최근 프랑스, 영국의 총선 결과와 미국 대선 전망을 따라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프랑스는 좌파 연합이 약진했고, 영국은 야당인 노동당이 14년 만에 재집권하게 됐다. 미국은 11월 대선에서 야당인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우세가 점쳐진다. 주류 경제학에 의하면 정치적 요인은 경제주체들이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단기적 잡음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경제주체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냉혈한’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이러한 경제학의 기본 전제에 대해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 바 있다. 알고 보면 경제는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제도’와 ‘행태’로 구성된다는 주장이다. 축구에서 오프사이드 룰 변화가 득점, 경기력, 관중 수에 영향을 주듯, 모든 제도 변화는 인간의 행태 변화로 이어진다고 그는 말했다. 1776년 미국 독립 이후 전 세계는 민주주의 제도를 이행했고, 민주주의는 선거 결과에 따라 그 내용이 변한다. 프랑스 총선은 프랑스 의회 구성을 변화시키고, 의회에서 정하는 법률의 내용을 바꾼다. 7월 7일(이하 현지시각) 결선 투표가 치러진 프랑스의 조기 총선은 프랑스 금융시장을 출렁거리게 만들고, 곧이어 유럽연합(EU)과 전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을 미친다.

대통령제, 의원내각제도 아닌 이원정부제 

프랑스의 통치 구조는 ‘이원정부제(bipo-lar executive)’라고 불린다. 이원정부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혼합된 형태로, 행정부의 권한이 총리와 대통령에게 분산돼 있어 이원정부제라는 이름이 붙었다. 행정부의 수장이 두 명이다 보니 이들의 권력관계는 ‘누가 의회 다수파의 지지를 받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의회 다수파가 대통령을 정치적 수장으로 인정하는 경우 프랑스의 대통령은 미국의 대통령보다 더 강력한 통치력을 갖게 된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의 고유한 권한 이외에도 행정부에 대한 지배권을 총리로부터 넘겨받는다. 대통령이 의회 다수파의 수장이므로 입법 과정에도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과거 샤를 드골, 조르주 퐁피두,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대통령은 총리를 허수아비로 만듦으로써 거의 모든 국가권력을 자신의 손에 넣었다.

의회 다수파가 대통령에게 복종할 경우, 대통령은 정부와 국민의회(하원)를 동시에 지배할 수 있다. 프랑스 헌법 제21조에 의하면 ‘총리가 정부의 활동(l’action du gouver-nement)을 지도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 ‘정부’는 대통령, 총리, 내각을 모두 포함하는 정부 전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총리는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전체(gouvernement tout entier)가 내린 결정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야 한다. 대통령은 정부를 통할(統轄)함으로써 대선 공약을 이행한다. 대통령이 헌법상 규정되지 않은 ‘총리 파면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사임할 수밖에 없다. 총리가 사임을 거부한다면 의회 다수파가 대통령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총리를 강제적으로 해임할 것이기 때문이다. 6월 9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 실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가브리엘 아탈 총리가 팔짱을 낀 채 그를 노려보는 사진이 대서특필된 것은 이인자가 일인자의 권위에 노골적으로 도전하는 모습으로 해석됐다.

불완전한 동거 앞둔 프랑스 내각

대통령의 정당이 의회 내 소수파인 경우, 대통령은 의회 내 다수파가 지지하는 총리를 임명할 수밖에 없고, 대통령과 총리는 권력을 둘러싼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된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시절 두 번, 자크 시라크 대통령 시절 한 번의 ‘동거 내각(Cohabitation)’ 이 그것이다. 동거 내각이란 대통령과 의회다수파가 사로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대통령의 권한이 제한되고 총리가 실질적 권력을 갖게 되어 의원내각제와 유사하게 운영된다. 프랑스 총리는 현실적인 정부 수장이 되어 의회를 지배한다. 총리는 자신이 제출한 법률안과 예산안을 가결하도록 의회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 헌법 제21조의 문언 그대로 ‘총리가 정부의 활동을 지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6월 30일 치러진 프랑스 총선 1차 투표에서 극우파 국민연합(RN)이 33.1%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집권 여당을 앞질렀다. 좌파 신민중전선(NFP)도 28%의 표를 얻어, 마크롱의 범여권 앙상블(ENS·득표율 20%)을 앞서자 셈법이 복잡해졌다. 누구도 의회 과반수를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매우 불완전한 동거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7월 1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로화는 장 초반 0.2% 오른 1.0740달러에 거래되며 일주일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의 정국 불안정이 유로화 시장에 안정을 가져온 것이다. 

7월 7일 프랑스 총선 결선(2차)에선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왔다. 정당별로 NFP 182석, ENS 168석, RN과 연대 세력 143석의 의석을 확보했다. 좌파 연합이 1차 투표 결과를 뒤집고 극우 정당을 앞질렀다. 집권 여당을 포함한 범여권이 2위에 머물렀고, 1차 투표에서 선두였던 극우 세력이 3위로 밀려났다.

동거 내각 속 대통령의 힘

동거 내각은 대통령이 의회 다수파의 지지를 받지 못해도, 헌법이 부여한 강력한 권한을 여전히 가질 수 있도록 한다. 과거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 미테랑 전 대통령은 “헌법, 헌법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헌법이 전부다(La Constitution, rien que la Constitution, toute la Constitution.)”라고 말한 바 있다. 헌법상 대통령은 ‘공화국과 프랑스에 대한 최고의 책임’을 진다. 대통령은 헌법의 존중과 국가의 계속성을 유지하고, 공권력의 정상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중재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의회 해산권과 비상 조치권을 가진다. 이 두 가지 권한의 행사에는 각료의 부서가 필요 없다. 의회해산권은 총선 실시 후 1년 이후에만 가능하지만 반복적인 의회 해산으로 의회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 이외에도 대통령은 총리를 견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우선, 대통령은 ‘오르도낭스(ordonnances)’ 에 대한 서명을 거부할 수 있다. 오르도낭스란 법률 영역에 속하는 사항에 대해 국회 허가를 얻어 정부가 발하는 명령을 말한다. 1986년 당시 미테랑 대통령은 시라크 총리가 제안한 민영화, 선거제도 개편, 노동시간단축을 골자로 하는 오르도낭스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다음으로, 대통령은 ‘법규적 데크레(décrets réglementaire)’에 대한 서명을 거부할 수 있다. 데크레는 일반적으로 행정부 수장의 행위 형식을 의미한다. 헌법상 행정부가 대통령과 총리로 이원화돼 있으므로, 대통령과 총리 모두 데크레 발령권을 가진다. 데크레를 내용으로 분류하면 국민 전체 또는 불특정 다수에게 일반적이고 법규적 효력을 가지는 것과 특정 사항에 대해서만 규율하는 것이 있다. 후자를 특히 법규적 데크레라고 하며, 이는 총리만 발령할 수 있다. 이 데크레는 수가 많지는 않지만, 내용에 있어 중요도가 매우 높다. 또 대통령은 총리가 원하는 고위 공무원과 공기업· 공공기관장의 임명을 거부할 수 있다. 절차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은 의회 임시회 소집을 거부할 수도 있다.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 ‘돈의 불장난’ ‘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 ‘돈의 불장난’ ‘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프랑스 재정 적자, 정부 부채가 문제

각 당의 총선 공약을 요약해 보면 △극우파 RN은 국경 통제 강화, 불법 이민자 통제,부가가치세 등 감세를, △좌파 NPF는 연금 개혁 폐지, 정년 단축, 복지 지출 확대, 최저임금 인상을, △중도파 ENS는 정년 연장, 연금 개혁, 정부 지출 감소 등을 내걸었다. 마크롱 정부는 그동안 정년 연장(62→64세) 등을 통한 연금 부담 감축, 실업 급여 축소로 재정 적자를 감축하려 시도했으나 이번 총선에서 역공을 맞으면서 후퇴가 불가피해졌고, 우크라이나 재건 계획(6억5000만유로) 실행도 불투명해졌다. 장래 동거 내각의 형태와 상관없이 이미 프랑스의 재정 적자(GDP의 5.5%)와 정부 부채(GDP의 110.6%)는 EU의 재정 규율(재정 적자 GDP의 3.0%, 정부 부채 GDP의 60%)을 크게 위반하고 있으므로 향후 EU의 정치·경제적 위험 요인도 커지고 있다.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