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김밥, 잡채는 앞으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될 겁니다.” 평소 음식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고(故) 이어령 교수에게 들은 말이다. 그 이유는 맛과 영양분이 고루 담긴 최고의 융합 창조 음식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생전에 비빔밥이 항공기 기내식으로 채택돼 세계로 퍼져나가자 무척 좋아했다. 가수 마이클 잭슨이 기내에서 한국 비빔밥을 먹고 극찬했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는 나도 감동했다. 이 교수는 열렬한 비빔밥 예찬론자였다. “비빔밥은 산과 들과 바다에서 나오는 온갖 식자재를 융합할 수 있다. 이걸 발효식품인 고추장으로 비벼 먹으니, 맛도 좋고 몸에 좋을 수밖에 없다.”
비빔밥 다음은 김밥 차례라고 했는데, 이제 김과 김밥이 세계로 거침없이 진격하고 있다. 김 수출이 급증하면서 김의 별명이 ‘검은 반도체’가 됐다. 미국, 유럽, 동남아 대형마트에는 한국산 김이 비치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가끔 품절 사태가 생기기도 한다. 맛있고 영양가 높고 살이 찌지 않는 신비한 ‘꿈의 식품’이라며 조미김을 간식으로 먹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요즘 김밥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덕분이다. “앞으로 불러도 우영우, 거꾸로 불러도 우영우입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우 변호사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김밥이다. 많은 외국인 시청자가 ‘드라마 주인공이 수시로 맛있게 먹는 저 음식이 뭘까’ 하는 호기심을 갖게 됐다.
둘째, 먹방과 숏폼 영향이다. 방송과 유튜브를 보면 먹방이 유행이다. 여기에도 김밥이 단골 메뉴다. 특히 짧은 동영상인 숏폼에서 김밥을 한입에 쏙 집어 먹는 장면이 수없이 쏟아져서 세계 젊은이들의 호기심이 고조됐다.
셋째는 냉동 김밥의 등장이다. 김밥을 급속 냉동해 신선한 맛을 유지한 채 전 세계 어느 곳으로든 퍼져나갈 수 있는 유통 혁명을 맞이한 것이다. 소비자는 마트에 가서 한국 냉동 김밥을 사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넷째, 비건 열풍과 연결돼 있다. 해외로 수출되는 냉동 김밥은 고기 대신 온갖 야채가 들어간다. 고기를 넣으면 수출에 검역상 규제를 받기 때문에 식물성 식자재만 넣은 것이 오히려 인기를 끈 비결이다. 특히 채식주의자나 다이어트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김밥에 열광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자문회의에 참석했다. aT는 우리 농수산식품 수출의 최전방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특히 미국 대도시를 비롯해 동남아와 중남미 국가까지 김치를 홍보하고 있고, ‘김치의 날’ 제정을 확산시키고 있다. ‘저탄소 식생활’을 내걸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실천하며 여러 국제기구와도 협업하고 있다. 일단 김치가 들어가면 모든 한국 음식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 aT의 김춘진 사장의 생각이다.
최근 세계로 진격하는 한국 냉동 김밥의 폭풍 성장 비결을 더 파고들면 ‘대·중소기업 협업’과 ‘민관 협업’이 있다. aT, 관광공사, 코트라, 현지 대사관, 대기업, 중소기업, 생산자가 가로세로 협업으로 연결돼 거대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 냉동 김밥 바람을 일으킨 ‘올곧김밥’이나 ‘우양’ 등 중소기업은 미국 대형 마트인 ‘트레이더 조’나 한인 마트인 ‘H마트’에 납품하고 있다. 이들은 CJ제일제당, 사조씨푸드, 롯데웰푸드, 동원F&B, 풀무원 등과 긴밀히 협업하고 있다. 대기업 간 과당 경쟁으로 제 살 깎아 먹기라는 비난을 받고, 중소기업을 비틀어 갑질 소리를 듣던 일은 과거사가 됐다. 이제는 협업을 통해 상생과 동반 성장을 추구한다. 정부도 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외교부·문화체육관광부·중소벤처기업부 등 관련 부처가 지원하고 산하기관이 민관 협업으로 참여하고 있다. 거대한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 사안에 따라 긴밀히 대응해 K푸드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 김밥이 K푸드 물결을 이끌며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을 본다면 이어령 교수는 무슨 말을 할까. “다음에는 잡채야”라고 할까. 역시 선견지명이 있는 융합 창조 지식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