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전의 야경. 사진 셔터스톡
중국 선전의 야경. 사진 셔터스톡

수십 년 동안 미국 실리콘밸리는 세계의 대표적인 기술 허브였다. 하지만 인도 방갈로르, 말레이시아 페낭, 중국 선전, 대만 타이베이, 싱가포르 같은 많은 아시아 도시도 유사한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중에서도 중국 남부 광둥성에 있는 선전이 특히 성공적이었다. 1979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중국의 개혁 개방을 시작하던 당시 선전은 GDP가 2800만달러(약 386억원)에 불과했고, 그중 37%가 일차산업에서 발생했다. 

오늘날 선전은 중국의 주요 혁신 허브로, GDP는 거의 5000억달러(약 690조원)에 이르며, 그중 40% 이상이 첨단 기술 산업에서 발생한다. 작년만 해도 선전의 수출액 3484억달러(약 481조원) 중 50% 이상이 첨단 기술 제품이었으며, 글로벌 도시 경쟁력 지수에서 선전은 전체 7위, 중국 내 1위를 차지했다.

앤드루 셩 홍콩대 아시아 글로벌  연구소 명예 연구원전 홍콩 증권선물위원회 회장
앤드루 셩 홍콩대 아시아 글로벌 연구소 명예 연구원
전 홍콩 증권선물위원회 회장

선전의 변혁은 1980년 덩샤오핑이 선전을 중국 최초의 ‘특별 경제 구역’으로 선정하면서 시작됐다. 인근 홍콩의 기업들은 저렴한 토지와 노동력을 찾아 선전으로 제조업을 이전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이른바 ① ‘프런트 숍, 백 팩토리(front shop, back factory)’ 모델이 형성됐고, 이는 외국인직접투자(FDI)와 기술 및 노하우의 유입을 촉진했다. 1994년까지 홍콩 기반 기업을 통해 선전에 유입된 FDI는 광둥성 전체 FDI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으며, 2005년까지 제조업이 선전 GDP의 53%를 차지했다.

그러나 선전의 변혁은 이제 막 시작된 상태였다. 2006년 중국 정부가 선전의 첨단 기술 산업과 자생적 혁신을 촉진하기로 한 이후, 연구개발(R&D) 투자는 GDP 대비 비중이 2007년 3.3%에서 작년에는 5.8%로 급증했다. 이는 세계에서 GDP 대비 R&D 지출이 가장 높은 이스라엘의 5.6%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R&D 외에도, 선전은 인적 자본 구축에 많은 투자를 했다. 홍콩과 근접성을 활용해,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역동적인 혁신 및 비즈니스 문화를 개발해 중국과 해외의 인재들을 끌어들였다. 1780만 명에 이르는 선전의 상주인구 중 65% 이상이 외부에서 왔다.

선전은 또한 번창하는 지역 연구 생태계를 조성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영감을 받아, 세계적 수준의 중국 대학들에 토지와 보조금을 제공해 현지 캠퍼스를 설립하도록 했다. 베이징대, 칭화대, 홍콩중문대는 모두 선전에 캠퍼스를 두고 있으며, 이들 대학의 학생 중 절반 정도가 졸업 후 선전에 남아 일하고 있다.

선전의 또 다른 강점은 새로운 아이디어나 발명의 실현 가능성을 테스트하는 데 중요한 프로토타입을 제작할 자원과 역량을 갖춘 제조 업체가 많다는 점이다. 이는 화웨이, 중국 자오상은행, 핑안금융그룹, BYD, 텐센트 등 혁신적인 기업들을 끌어들였다. 이들 다섯 개 기업은 현재 국가에서 시가총액 상위 20위 안에 들며, 그 잠재력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텐센트를 예로 들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리는 모바일 게임을 보유한 회사이며, 중국 최대의 혁신적인 소셜미디어(SNS) 플랫폼인 위챗을 개발 및 운영하고 있다. 텐센트는 또한 800개 이상의 국내외 기업을 인수하거나 투자한 선도적인 벤처캐피털(VC) 회사다. 텐센트는 테슬라에서 엔플레임과 AI 칩 스타트업 ‘지푸’에 이르는 혁신적인 기술 기업에 지분을 투자해 AI 분야에서 입지도 다졌다. 2020년에는 클라우드 컴퓨팅, AI, 블록체인 기술에 700억달러(약 97조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샤오 겅 홍콩대 국제금융 연구소 이사장현 홍콩중문대 선전금융연구원 정책 및 실천 연구소 소장
샤오 겅 홍콩대 국제금융 연구소 이사장
현 홍콩중문대 선전금융연구원 정책 및 실천 연구소 소장

이들 대기업 외에도 선전에는 약 30개의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이 있으며, 이는 세계 5위 국가인 독일(36개)과 거의 맞먹는다. 그중 인터넷 은행인 ‘위뱅크(WeBank)’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유니콘 10위 안에 든다. 따라서 선전이 시가총액 규모가 4조2900억달러(약 5918조원)로 홍콩보다 큰 중국의 두 번째로 큰 증권시장을 자랑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전자상거래액은 1조3900억달러(약 1918조원)에 이른다.

선전의 경제적 미래는 밝을 것으로 보인다. 연간 GDP 성장률이 6%(2023년)로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보다 앞서고 있다. 그러나 성장과 역동성을 유지하려면 선전은 중국의 기술 부문을 겨냥한 지정학적 제재가 확산하고,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효과적인 적응은 충분히 가능하다. ② 세계적인 전기차 제조 업체 BYD는 미국과 유럽의 높은 관세에 직면해 있지만, 첨단 배터리 기술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화웨이는 자체 마이크로칩과 운영체제(OS)를 구축함으로써 가혹한 미국 제재를 어느 정도 극복했다. 선전의 풍부하고 유연하며 기업 친화적인 혁신 생태계는 더 많은 기업이 직면한 도전에 적응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선전이 광둥·홍콩·마카오를 아우르는 ③ 웨강아오 다완취라는 통합 경제 구역 내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도 도움이 된다. 인근 도시들과 협력을 통해 선전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와의 연결을 심화시켰다. 그러나 이제 선전의 제조 및 혁신 허브로서의 회복력은 가장 큰 시험대에 올라 있으며, 이러한 연결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① 선전의 초기 경제 발전 전략 중 하나. 홍콩의 판매 및 마케팅 역량을 선전의 제조 능력과 결합한 것이다. 홍콩은 국제무역과 금융의 중심지로서 ‘프런트 숍’ 역할을, 선전은 저렴한 토지와 노동력을 바탕으로 ‘백 팩토리’ 역할을 담당하도록 했다. 이 모델은 FDI와 기술 이전을 촉진해 선전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② 미국과 유럽은 BYD를 비롯한 중국산 전기차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당장 미국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현행 25%에서 100%로 인상하기로 했으며, 유럽연합(EU)은 중국산 전기차에 최고 47.6%의 잠정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중국 정부가 자국 전기차 산업에 상당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는 게 서방 국가의 주장이다. 

③ 선전, 홍콩, 마카오 등 광둥성 9개 도시를 연결해 거대 광역 도시권을 만드는 중국의 발전 계획. 웨강아오의 웨(粤)는 광둥성, 강(港)은 홍콩, 아오(澳)는 마카오를 뜻한다. 다완취(大灣區)는 대형 연안 지역(Great Bay Area)이라는 뜻이다. 웨강아오 다완취는이 지역을 아우르는 대규모 통합 경제 구역을 의미하며, 중국 정부는 이곳을 혁신, 금융, 무역의 중심지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배경 설명|

중국 ‘개혁 개방’ 초기 광둥성의 선전(深圳)은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그러다 1980년 중국 정부가 선전을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하면서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차이나테크의 약진을 대표하는 도시가 됐다. 정보통신기술(ICT) 및 첨단 제조업 기반의 혁신 도시로 탈바꿈한 상태다.

텐센트, 화웨이, 비야디(BYD) 등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혁신 기업과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인 지푸를 비롯한 혁신 스타트업들이 선전의 신산업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선전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이미 2018년 홍콩을 뛰어넘었고, 2023년 GDP 성장률은 6%로 베이징(5.2%), 상하이(5%), 광저우(4.6%)보다도 앞서고 있다. 필자들은 지금 중국의 기술 부문이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의 견제를 받고 있지만, 선전 특유의 풍부하고 유연하며 기업 친화적인 혁신 생태계를 통해 충분히 극복하고 적응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리=김우영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

이수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