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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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은 2023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로 프랑스 파리를 꼽았다. 평가 지표는 경제적 성과, 관광, 인프라, 정책, 보건·안전, 지속 가능성 등 55개에 이른다. 도시 평가에 이렇게 많은 지수를 고려하는 이유는 도시가 매력적으로 유지될 수 있으려면 다양한 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파리는 이 조사가 시작된 이래 1등을 가장 많이 차지했다.

파리가 처음부터 아름다운 도시였던 것은 아니다. 1830년대 파리 모습은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볼 수 있다. 어린 코제트가 빨래한 물을 그냥 길에다 버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상하수도가 제대로 구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을 긷는 것이나 오수를 처리하는 것이 쉽지 않아 골목은 오물과 생활하수로 질척했다. 더럽고 음습한 파리의 좁은 골목들은 지저분하고 오수가 지하수를 오염시켜 전염병이 횡행했고 1848년에 발생한 콜레라로 2만여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파리를 근본적으로 개조한 사람은 나폴레옹 3세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1세의 조카다. 그는 1848년 프랑스 초대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4년 단임제 임기에 불만을 품어 1851년 12월 친위 쿠데타를 통해 공화정을 중단시켰다. 이듬해 프랑스 제이제국의 황제로 등극해 1870년까지 프랑스를 통치했다. 그는 젊은 시절 영국 런던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현대화된 도시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새로운 제국의 수도에 걸맞도록 파리를 개조하고 싶었다. 그의 소망을 실현해 준 사람이 오스만 남작이다. 나폴레옹 3세는 알자스 지방 출신 독일계 이민자의 2세로 출중한 행정 능력을 인정받은 오스만을 파리 시장에 해당하는 세느 지역 지사로 임명했다. 그리고 파리 개조 사업의 전권을 부여했다. 널찍한 도로, 근대적 하수 시설, 넓은 주거 환경 그리고 수풀이 우거진 녹지공간 등을 구체적으로 주문했다고 알려진다. 

오스만의 개조 방식은 도시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통 개발형’이었다. 도시의 기준은 교통로였다. 그는 도시를 관통하는 50개의 넓은 직선 대로를 건설했다. 이를 중심으로 주요 공공건물인 개선문, 루브르박물관, 콩코르드광장 등을 연결했고 학교, 병원, 관공서 등 인프라를 배치했다. 도심에는 대형 숲을 조성하고 크고 작은 공원을 만들었다. 상수도 설비를 확충해 1850년대 주민 1인당 하루 26갤런이던 식수 공급량은 1870년에 50갤런으로 늘었다. 하수처리 설비도 개선해 1854년 163㎞에 불과했던 파리의 하수도 망 길이가 1870년 536㎞까지 늘어났다. 넓은 주거 공간을 확보하되 거리의 경관을 통일성 있게 유지하기 위해 ‘오스만식 건물’ 을 세웠다. 높이 20m를 상한으로 이어 지은 5~6층 건물들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 

17년간 계속된 파리 개조 사업에는 막대한 자금이 들었다. 사업비는 25억프랑이 들었다. 이를 위해 발행한 채권 이자까지 합하면 40억프랑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년치 정부 예산에 맞먹는다. 파리시는 20세기에 와서야 이때 발생한 부채를 모두 갚았다. 오스만은 당시 파리 주민이 100만여 명이었지만 300만 명의 시민이 살 수 있는 도시를 상정하고 파리 개조 작업을 진행했다. 2021년 파리 인구는 213만 명이다. 파리가 여전히 쾌적하고 매력적인 이유다. 

윤덕룡 경기도 일자리재단 대표이사
윤덕룡 경기도 일자리재단 대표이사

2021년 우리나라 도시화율은 90.7%다. 1960년대 경제개발 시기에 형성된 주요 도시의 구도심은 이미 재개발 수요가 높다. 서울과 같이 경제성이 높은 지역은 민간의 재개발 사업을 통해 많은 지역이 재건축과 정비가 이뤄졌다. 경제성이 높지 않은 지방에서는 구도심을 재개발하기보다는 신도심을 건설하는 방식을 선택한 곳도 많다. 정부 예산을 들이지 않고 민간 기업의 사업화를 통해 시행한 서울의 재건축이나 지방 신도심 건설은 결국 주택 가격 상승으로 시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지역 불균형이나 주택 가격이 야기하는 새로운 양극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더구나 100년 후 후손들이 쾌적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도 못했다. 올여름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린다. 150년 전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의 파리 개조 사업을 진심으로 부러워하게 될 것 같다. 


윤덕룡 경기도 일자리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