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건 하우절의 ‘불변의 법칙’을 읽었다. ‘절대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23가지 이야기’ 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이 책은 전혀 새롭지 않았으나 엄청난 흡입력으로 읽혔다.
예컨대 ‘겪어봐야 안다’ ‘행복의 1원칙은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모든 여정은 원래 힘들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확실성이다’ 등등 우리가 어렴풋이 아는 일상의 진리를 짧고 강렬한 이야기(스토리)로 재배치해서 뇌에 ‘꽂아주는’ 쾌감이 대단했다.
모건 하우절은 급변하는 기술 사회와 불안정한 주식시장, 그럼에도 36억 년간 이어진 진화의 방향, 인간의 변하지 않는 방어기제와 욕망에 주목해 23가지 ‘불변의 다이제스트’를 뽑아냈다.
변하는 것만 바라보며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에게 변하지 않는 것을 바라볼 때 생기는 안정된 시야를 선물하며. 모든 리스크를 통제하기에 세상은 너무 크고 아슬아슬하기에, 미래에 관해서는 적당히 예측하고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그 본질이란 무엇일까.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스토리와 들어야 할 스토리의 황금률을 아는 우리 시대의 금융 스토리텔러, 돈과 심리 분야의 글로벌 ‘일타 강사’ 모건 하우절을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돈의 심리학'에서 시작해서 '불변의 법칙'으로, 더 넓은 세계관에 이르렀군. 어떤 고민이 있었나.
“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았다. 대개는 돈과 관련된 심리다. 그런데 돈과 관련된 대중의 심리를 파고들수록, 돈 자체를 뛰어넘는 더 넓은 시각이 필요했다. 돈과 관련해 중요한 포인트는 ‘사람들은 리스크와 탐욕, 두려움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같은 오히려 넓은 질문이다. 그런데 경제 미디어가 금융과 주식이라는 렌즈로만 세상을 보여준 탓에, 사람들의 시선이 좁아졌다. ‘불변의 법칙’에서 나는 성급한 예측보다 굵직한 패턴을 보기로 했다.”
변하지 않는 패턴을 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중요하다. 당장의 변화에만 집중하면 큰 그림이 안 보인다. 중요한 건 변하지 않는 것이다. 아마존은 저렴한 가격과 빠른 배송이라는 불변의 욕구에 집중한 덕에 성공했다. 내년에 주식시장이 어떻게 될지, 향후 10년간 어떤 기업이 시장을 장악할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이 탐욕과 두려움에 쉽게 빠지고, 특권의식에 빠진 자만한 리더가 기업을 망칠 거라는 건 장담할 수 있다. 분명한 건 두 가지다. 하나는 특정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토대로 예측해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인간은 변함없이 탐욕과 두려움에 지배당하고 기회와 리스크, 불확실성, 집단 소속감, 사회적 설득력에 반응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저렴한 가격과 빠른 배송이라는 변하지 않는 욕구에 집중해 성공했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10년간 무엇이 변할 것 같으냐”는 질문만 한다고 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변하지 않는 감정을 읽어야하는군.
“그렇다.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모든 사건 뒤에서는 핵심적인 몇 가지 감정이 작동하고 있다. 아무리 기술이 변화하고 정치가 발전한다 해도 몇 가지 주요 감정이 인간의 행동 대부분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갈수록 스토리가 중요해지는 건 그 때문인가.
“맞다. 세상은 정보로 넘쳐나고 사람들은 늘 바쁘고 감정에 쉽게 좌우된다. 대중은 복잡한 정보가 한 장면처럼 쉽게 이해되길 원한다. 훌륭한 스토리 혹은 훌륭한 스토리 안에서도 빛나는 한 개의 문장이 이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것은 기존의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때 훨씬 더 큰 혁신이 탄생한다는 거다. 다윈이 진화론을 처음 주장한 인물은 아니지만, 진화에 관한 설득력 있는 책을 처음 펴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도 이미 알려진 지식을 아름다운 글쓰기로 전달한 책이다. 낡은 아이디어도 설득력 있게 전달하면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 반면 탁월한 아이디어도 형편없이 전달하면 실패한다.”
당신이 준수하는 좋은 스토리의 '불변의 법칙'은 무엇인가.
“나만의 철칙은 내가 독자라 해도 읽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이다. 글쓰기는 일종의 예술이다. 모든 예술이 으레 그렇듯 누군가에게는 사랑받고 누군가에게는 사랑받지 못한다. 쓸 때는 두 가지를 생각한다. 첫째, 불필요한 디테일이나 설명으로 장황하게 글을 이어가지 말고 효율적이고 간결하게 쓰자. 즉 ‘내가 말하려는 요지는 이거다’라는 태도로 쓰는 거다. 둘째, 독자가 스토리 안에서 만난 감정을 자기 삶의 경험과 연결하게 만든다. 훌륭한 스토리를 읽을 때 우리는 그 속의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통계보다 감정에 더 예민하게 움직인다는 게 사실인가? 로버트 그린은 '확실성에 대한 욕구는 정신이 겪는 가장 커다란 질병'이라고 했다고 들었다.
“사실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정확한 통계와 정보가 아니다. 불확실성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욕구 탓에 우리는 이 세계가 엑셀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일례로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의 건전성은 양호해 보였다. 하지만 72시간 뒤 파산했다. 3일 동안 변한 유일한 것은 투자자의 신뢰였다. 게임스톱은 그와 반대였다. 2020년 시장에서 퇴출 직전이었지만 투자자의 관심이 폭증했고 주가가 폭등했다. 머릿속 스토리가 변할 때 펀더멘털의 지표는 무의미해졌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이 세상이 불합리와 불완전한 인간으로 들끓는 곳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통계보다 스토리의 힘이 세다는 걸 아는 사람이다. 늘 그래왔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을 움직인다.”
큰 숫자를 이해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하루 중 8시간을 깨어 활동하며 1초에 한 번꼴로 뭔가를 보거나 듣는다. 따라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의 수는 하루에 3만 개이고, 한 달로 치면 약 100만 개다. 만약 기적이 일어날 확률이 100만분의 1이라면,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표본이 더 커지고 80억 명이 상호작용하는 세상에서는 어느 날 사기꾼, 천재, 악당이 나타나서 상황이 변화될 확률이 매우 높다. 요는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뒤엉켜서 계속 일어난다는 거다. 패턴에 따르면 주식시장은 3~5년에 한 번씩 폭락한다. 큰 숫자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필연적인 리스크에 과도하게 민감해진다. 반면 큰 숫자를 이해하면 바깥에서 먼 곳을 볼 수 있다. 무엇이든 크게 만들려면 시간이 걸린다. 때로는 수십 년이 걸린다. 그것이 복리 효과다. 38억 년 진화의 과정을 보자. 단기간에 일어나는 마법은 없다. 결국 관건은 작은 변화가 아니라 축적의 시간이다.”
기술 네트워크 시대에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고 부자가 되는 사람이 많다. 그럼에도 여전히 축적의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지구력이다. 한 번의 전성기 후 폭락하는 것보다 장기간 평범한 성과를 내는 것이 더 낫다. 한 투자자는 연간 수익률이 상위 25%에 든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14년 동안 전체 투자자의 상위 4%에 속했다. 큰 숫자의 의미를 알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 바뀐다. ‘올해 어떻게 하면 최고 수익률을 달성할까’가 아니라 ‘내가 장기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수익률은 얼마일까’라고 말이다.”
가장 좋은 때를 알아차리는 기준이 있을까.
“제리 사인필드가 한창 잘나가던 시트콤을 중단하면서 밝힌 이유는 의미심장하다. ‘정상이 어딘지 아는 유일한 방법은 추락을 경험하는 것뿐인데, 나는 그럴 생각이 없기 때문에 더 오를지 내릴지 모르는 상태로 그냥 떠나겠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크리스 록의 뺨을 때린 윌 스미스에게 덴젤 워싱턴은 이런 조언을 했다. ‘최고의 순간을 조심해야 해. 그때 악마가 너를 찾아오니까.’
자산 가격이 높아진 상태는 풍전등화와 같다. 아주 작은 사건이나 변화로도 무너질 수 있다. 높아진 자산 가격이 불안정성을 초래한다. 주식시장 과열은 정상이다. 시장은 늘 그래왔다. 버블이 터져 시장이 폭락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사인필드처럼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충분함의 미학을 깨닫고 행동해야 한다. ‘나는 딱 이만큼의 리스크만 감수하겠다 그리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봐야지’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적의 투자 기간이 있나.
“알맞은 투자 기간은 약 10년 혹은 그 이상이다. 기간을 압축할수록 운에 더 의존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투자 실패의 90%는 알맞은 투자 기간을 압축하려고 한 탓에 일어났다.”
진실은 그렇게 단순한데 우리는 왜 복잡한 것을 선호할까. 적게 쓰고 저축하고 인내하는 것이 돈 관리의 최선인데, 대학에서는 파생상품을 가르친다고 당신도 성토했었다.
“어려운 책을 읽을수록 통제감이 생기고, 인지적 벤치프레스를 하는 기분이 들지 않던가. 복잡한 가르침은 다음을 안내해 주는 완벽한 답이 있다는 착각을 안겨준다. 반면 단순한 답변은 우리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인정한다. 세상은 불확실하고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지만, 사람들은 그 답을 듣기 싫어한다. 그래서 8시간 숙면하고 많이 움직이고 과식을 피하는 것이 건강에 관한 전부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온갖 보조제와 신약을 찾아다닌다. 이 모두가 우리가 확실성을 원하기 때문에 치르는 감동적인 시간 낭비다.”
완벽해지려고 할수록 취약해진다는 것도 의미심장했다. 모든 종은 조금씩 불완전하다는 말이 왠지 안심이 됐다.
“나무는 키가 크면 햇빛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더 커지지 않는다. 역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몸집이 커지면 더 많은 먹잇감을 사냥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사냥꾼의 눈에 더 쉽게 띄는 목표물이 된다. 생존에 필요한 적당 수준의 특성이 세계를 지탱한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수익과 완벽한 결과를 얻으려고 애쓰면 오히려 더 취약해진다. 완벽한 예견이 아니라 적당 수준의 예측 모델을 갖고 있는 것이 좋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시장은 투자자들에게 그 결과를 배분해 줄 것이다. 실수와 사고, 호황과 불황은 늘 있다. 이 정도만 예측하면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조차 '보기보다 힘들고 보이는 것만큼 즐겁지 않다'는 사실은 언제 체감했나.
“엄청난 성공을 이뤘지만, 남들이 상상하는 것만큼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을 나는 거의 만나본 적이 없다. 호화 저택에 사는 사람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자식 문제로 괴로워하고 소송에 휘말리더라. 배우 짐 캐리가 그랬다.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고 꿈꾸던 걸 이루면 좋겠다고. 그래야 그게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거라고. 여러분이 생각한 것보다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하다.”
책을 다 쓰고 나서 무엇을 깨달았나. 남는 질문은 무엇인가.
“책에는 변하지 않은 행동과 특성 23가지가 담겨 있지만, 사실 더 깊이 들어가면 수천가지는 된다. 아직 공부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당신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 세 가지를 얘기해줄 수 있나.
“내 아내를 만난 것, 그녀와 결혼한 것 그리고 아빠가 된 것이다.”
나 또한 변하는 세계와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오랫동안 '계획'과 '통제감' 속에 머물렀지만, 막상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살아보니 적당히 앞날을 열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불확실성에는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은가.
“나는 합리적 낙관론자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썼다. 내가 말하는 합리적 낙관론자란, 자신이 지향하는 장기적 목표에 대한 확신을 갖고 낙관적 시각을 유지하되 그 목표에 이르는 길에서 만날 역경과 실패에 관해서는 현실적 시각을 갖는 사람이다. 나는 그것이 불확실성을 대하는 최선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세상을 흑백 이분법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예측 가능하다 혹은 예측 불가능하다는 식의 시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장기적인 목표와 현실의 어려움을 다 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한결같이 조언한다. 비관론자처럼 저축하고 낙관론자처럼 투자하라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높은 집값, 시선 경쟁 등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세계를 통과 중인 한국인을 위해 조언을 부탁드린다.
“합리적인 기대치를 갖고 결과가 좋든 나쁘든 평정심을 유지하라. 정확한 미래란 없다. 확실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유의미한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쏟아라. 혹 여러분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나 미래로 갈 수 있다고 해도, 그 당시의 삶과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들여다본다면, 겸손한 마음으로 지금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