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 수 아래로 여기던 일본 여자 골프가 달라졌다. 

지난 6월 여자 골프 최고 권위 메이저 대회 US여자오픈에서 일본 선수 5명이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아버지가 일본인, 어머니가 필리핀인인 사소 유카(23)는 2021년 필리핀 국적으로 역대 이 대회 최연소 우승 타이기록(만 19세)을 세운 데 이어, 올해 대회는 일본 국적으로 나서 역대 최연소 2승(만 22세) 기록을 세웠다. 

2019년 메이저 대회 AIG 여자오픈(옛 브리티시 여자오픈) 챔피언 시부노 히나코(26)가 준우승, 후루에 아야카(24) 공동 6위,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소속 다케다 리오(21)와 고이와이 사쿠라(26)가 공동 9위에 올랐다. 

1998년 박세리 이후 11번이나 한국 선수가 우승컵을 들어 올려 ‘US 코리아오픈’이란별명까지 붙었던 US여자오픈이 일본 무대가 된 것이다. 10위 안에 한국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6월 24일 발표된 세계 랭킹을 통해 파리 올림픽 골프 여자부에 출전하는 일본 대표로 US여자오픈 챔피언 세계 랭킹 10위 사소 유카와 위민스 PGA 챔피언십 공동 2위로 세계 랭킹을 19위까지 끌어 올린 야마시타 미유(23)가 출전권을 따냈다. JLPGA투어 2022-2023시즌 상금왕 야마시타는 올해 세 차례 열린 미 LPGA투어 메이저 대회에 모두 출전해 세계 랭킹 포인트를 쌓았다. 국내파 야마시타는 미 LPGA투어에서 뛰는 세계 20위 후루에 아야카와 24위 하타오카 나사(25)를 제쳤다. 

신지애의 매니지먼트 회사 KPS의 김애숙 대표는 1985년부터 JLPGA투어에서 뛴 경험을 바탕으로 신지애를 비롯해 많은 한국 선수의 일본 정착을 도왔다. 프로 선수 생활을 거쳐 레슨과 골프 관련 매니지먼트를 하며 일본 생활 40년째인 그에게 일본 여자 골프의 약진 비결을 들어보았다. 

1 2024년 6월 2일 일본의 사소 유카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US여자오픈 골프 대회 최종 라운드 18번 그린에서 칩샷을 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2 사소 유카가 US여자오픈 우승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3 2024년 6월 3일 월요일 도쿄에서 한 신문 판매원이 사소 유카의 US여자오픈 골프 대회 우승을 보도한 요미우리신문 특별판을 배포하고 있다. 일본어 제목은 ‘사소, 두 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AP연합
1 2024년 6월 2일 일본의 사소 유카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US여자오픈 골프 대회 최종 라운드 18번 그린에서 칩샷을 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2 사소 유카가 US여자오픈 우승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3 2024년 6월 3일 월요일 도쿄에서 한 신문 판매원이 사소 유카의 US여자오픈 골프 대회 우승을 보도한 요미우리신문 특별판을 배포하고 있다. 일본어 제목은 ‘사소, 두 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AP연합

예전에는 일본 골프가 국내 무대에 안주하고 도전 의식이 없다는 평이 많았다.

“일본이 무언가를 빨리 바꾸는 나라는 아니다. 하지만 원칙을 정하면 거창해 보이지 않더라도 실효성 있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추구한다. JLPGA투어가 발전하면서 선수들이 국내 무대에 안주하고 국제 경쟁력이 뚝 떨어진 경험을 먼저 했다. 일본 골프계는 이래서는 장기적으로 골프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일본 여자 골프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지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레전드 핀 포지션’이다. 국내외 무대에서 훌륭한 성적을 올린 레전드가 JLPGA투어 대회의 코스 세팅에 직접 관여하는 방식이다. 그린의 어느 곳에 핀을 꽂을 때 후배의 기량 향상에 도움이 될지 등을 고려해서 한다. 이런 디테일이 쌓여서 변화가 나온 것이다.”

일본 여자 골프가 강해진 터닝 포인트가 있었나.

“고바야시 히로미 JLPGA 회장이 2010년 취임하면서 글로벌 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선수를 키우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다. 고바야시 회장은 1985년 JLPGA투어 데뷔해 11승을 거두었고, 미 LPGA투어에 1990년 데뷔해 신인상을 받고 2003년까지 뛰면서 4승을 거둔 일본의 스타 선수 출신이다. 유럽투어에서도 1997년 에비앙 마스터스를 우승했다.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춘 선수가 나오려면 일본의 시스템을 국제 무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JLPGA투어에서 비중이 높았던 3라운드 대회를 상당수 4라운드 대회로 바꾸도록 했다. 해외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려면 4일 경기의 생활 리듬부터 갖춰야 한다고 본 것이다. 레전드 선수를 통해 대회 코스 세팅을 하도록 했다. 예를 들면 핀의 위치를 그린의 사각지대(페어웨이에서 보면 그린 형태가 경사로 인해 거리 계산이 어려운 곳)에 꼽는 식으로 상상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도록 했다. 2부 투어의 2일짜리 경기를 3일로 늘리는 등 2부 투어 강화에도 힘을 쏟았다. 2부 투어에서 대만 스폰서와 함께하는 공동 주관 대회를 늘려 어린 선수들이 외국에서 대회 경험을 갖도록 했다. 이렇게 선수들 실력이 늘고 국제 대회 성적이 좋아지면서 일본 1부 투어 대회 수는 연간 35~39개에 이를 정도로 더 발전했다. 워낙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대회 적응이 빠르다.”

미 LPGA투어 진출 등 국제 대회 경쟁력 향상을 위한 제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미 LPGA투어 5대 메이저 대회의 성적은 일본 JLPGA투어의 메르세데스 순위에 포함한다. 시차가 있는 해외 대회를 다녀올 경우 2년 연속 같은 대회를 쉬는 규정에 예외를 둔다. 산토리 대회는 우승과 준우승 선수에게 AIG 여자오픈 출전권을 준다. 엄마 선수들을 위해 2023년부터 적극적으로 탁아소를 설치하고 있다. 퀄리파잉 스쿨 결승전에도 설치한다.”

신지애의 매니지먼트 회사 KPS의 대표인 김애숙(왼쪽)씨는 1985년부터 JLPGA투어에서 뛴 경험을 바탕으로
신지애를 비롯해 많은 한국 선수의 일본 정착을 도왔다. 사진 KPS
신지애의 매니지먼트 회사 KPS의 대표인 김애숙(왼쪽)씨는 1985년부터 JLPGA투어에서 뛴 경험을 바탕으로 신지애를 비롯해 많은 한국 선수의 일본 정착을 도왔다. 사진 KPS

20년 이상 한국 선수들의 일본 진출을 도왔다. 어떤 차이가 있나.

“KLPGA투어가 발전하면서 한국 선수들이 도전보다 안정을 위주로 한다. 전에는 일본이 그런 편이었다. 일본과 한국 선수들의 마인드 세트가 바뀌었다. 올해 US여자오픈에서 일본이 강했던 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미 LPGA투어에 갈 때도 배우려는 마음이 강해야 한다. 자신이 세계 무대에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고 싶다는 도전 의식이 강해야 한다. 최근 일본 선수들 특징은 미 LPGA투어에 출전하면 현지에서 자신이 부족한 것을 찾아 연습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냥 한번 경험해 보자는 마음으로 가는 선수가 거의 없다. 일본골프협회(JGA)가 2015년부터 일본 아마추어 국가대표팀을 총괄하는 감독으로 호주 출신 지도자 가레스 존스에게 맡겨 일본 선수들이 어려서부터 국제 경쟁력을 높이도록 한 것도 ‘황금 세대(1998년생)’ ‘플래티넘 세대(2000년생)’가 나오는 발판이 됐다.”

한국 여자 골프의 국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국제 대회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 일본과 대만, 태국, 호주 등지의 작은 투어라도 나가서 경험을 쌓으면 좋겠다. 

전혀 다른 잔디와 환경에서 경쟁하는 경험이 중요하다. 일본 선수 40명 정도가 대만 퀄리파잉 테스트에 나간다. 일본 골프 환경이 좋다지만 다양한 곳에서 서로 다른 잔디의 성질을 배우고 쇼트게임의 정교함을 키워서 온다. KLPGA도 어린 선수를 위한 글로벌 마인드의 대회 운영이 절실하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