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 배우
러트거스대 경제학, MBC 연기대상(2001년),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오늘 예보’‘인어 사냥’ 저자
차인표 배우
러트거스대 경제학, MBC 연기대상(2001년),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오늘 예보’‘인어 사냥’ 저자

“일제강점기는 우리 역사 중 가장 아픈 시대다. 이 시대 (일본군 위안부로 고초를 겪으신) 할머니들의 아픔에 공감했고, 많은 사람이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다면 똑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잘 가요 언덕)’ 저자인 배우 차인표는 7월 9일 인터뷰에서 소설을 집필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일제강점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지난 6월 영국 옥스퍼드대 아시아중동학부 한국학 필수 도서로 선정됐다. 이 책은 이번 가을 학기부터 한국학 3~4학년 학부생과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 수업 교재로 사용된다. 차 배우는 2009년 ‘잘 가요 언덕’을 시작으로 ‘오늘 예보(2011년)’ ‘인어 사냥(2021년)’ 등 세 편의 소설을 쓴 베테랑 작가다. 차 배우는 6월 28일(현지시각) 제1회 ‘옥스퍼드 한국문학 페스티벌’ 연사로 초청돼 옥스퍼드대에서 자신이 쓴 책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할머니들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주고 싶었고 (일본에서) 받지 못한 사과를 내 소설에서나마 받게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생명과 공감이 가장 소중한 가치

배우와 작가의 차이점은.

“배우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다른 사람의 세계에 나를 맞춰 그 세계를 표현해야 한다. 물론 그 인물을 표현할 때 내가 어느 정도 창작할 순 있지만 누군가 만든 정해진 틀 안에 갇혀 있다. 나도 좀 이런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스토리를 표현하는 배우에서, 스토리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스토리텔러가 되면 내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설정할 수 있고,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소재를 발굴해서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생명과 공감이다. 사람은 각박한 세상에서 바쁘게 살다 보면 생명의 가치, 자신의 소중함과 생명의 가치를 잊고 사는데, 이를 일깨워주는 게 문학가나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상을 살면서 각자가 처한 처지가 저마다 다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공감하는 게 살면서 제일 중요한 가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작가로 변신한 이유도 공감 때문이다. 고귀한 생명의 가치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어떤 공감이 작가로 이끌었나.

“1997년 8월 신혼여행 때였다. 당시 뉴스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캄보디아의 훈 할머니(한국명 이남이)가 55년 만에 한국에 입국하는 모습을 보고 슬픔과 분노 등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됐다. 할머니가 오랜 세월 고국 땅을 밟지 못해 한국말은 거의 잊어버렸지만 죽기 전에 한국에 가고 싶다며 ‘아리랑’을 부르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이 할머니가 만약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았더라면 그 하나의 생명으로서 고귀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에 일본군 장교 중에 ‘이런 짓은 하지 말자’ 고 한 양심적인 장교가 있었다면, 자기 목숨을 바쳐서라도 한국의 여인을 구하려는 용맹한 남자가 있었더라면, 이런 왓 이프(What if)란 생각이 많아졌고, 이걸 소설로 써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소설을 쓰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

“1998년 처음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찼었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폐허만 남듯이 내 글이 그랬던 것 같다. 일본군에 대한 분노, 당시 여인들을 지키지 못했던 한국 남성에 대한 원망이 폭풍처럼 나를 휩쓸었다. 공감이 아닌 분노로는 글을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7~8년간 글쓰기를 쉬었던 이유다. 그러던 중 2006년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시기 어머니의 조언이 나를 다시 일으켰다. ‘소설가에게 상상력은 매우 중요하지만,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상상은 모래로 성을 만든 것처럼 쉽게 무너진다’는 어머니의 조언은 나를 각성시켰다. 내가 소설을 쓰기 위해 리서치를 하게 된 계기였다.”

리서치를 어떤 식으로 했나.

“우선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2006년 3월 백두산을 찾아가 내 소설 속 주인공인 ‘순이’가 살았던 산골 마을 풍경을 마음에 새겼다. 허구의 인물이지만 이런 곳에서 살았을 것이라고 상상을 하니 뭔가 방향이 잡히는 듯했다. 백두산은 외지의 소란스러움이나 제국주의 폭력이 침투하지 못한 깊은 마을이 존재하는 장소라는 상징성 때문에 찾아간 것이었다. 그해 4월 한국으로 돌아와선 ‘나눔의 집’을 찾아 할머니들을 만나 생생한 과거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들을 만나 어떤 점을 느꼈나.

“2006년 4월 꽃이 만개한 따뜻한 봄날이었다.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 아홉 명을 만났는데 모두 다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고 일렬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유명한 사진작가가 와서 할머니들의 영정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마음 한편이 북받쳐 올랐다. ‘할머니들이 이제 돌아가실 날을 기다리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본이 사과하기를 원하는데 왜 사과를 원하실지 생각해 보면, 돌아가시기 전에 용서해 주고 싶은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소설에 일본인이 사과하는 장면을 꼭 넣고 싶었다. 내 책에 일본군 장교 ‘가즈오’가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게 하려고 여주인공 순이를 데리고 도망치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장면을 넣게 된 배경이다.”

그렇게 집필한 책이 최근 옥스퍼드대 한국학 필수 도서로 선정됐다.

“처음에 연락을 받고, ‘왜 내 책을요?’라고 물었다. 내 책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복수를 하려거나 폭력적이지도 않으면서 화해와 용서에 대해 재해석하는 이런 시각이 새롭다고 했다. 유럽에도 난민 문제가 있고 이를 바라보는 여러 대립되는 시각이 있는데, 유럽의 학생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뜻 밖이었지만 매우 기쁘고 감사했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번역해 출판할 예정이다.”

옥스퍼드대 중국학, 일본학 연구소…한국 기업도 나서줬으면

옥스퍼드대에서 최근 강연도 하고 왔다고.

“옥스퍼드대 아시아중동학부에 조지은 교수가 유럽에서 한국문학을 알리기 위해 ‘옥스퍼드 한국문학 페스티벌’을 열었고, 내게 특강을 부탁했다. 특강이 끝나고 한 영국 할아버지는 내게 한국과 일본 간 위안부 문제가 있었는지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영국인도 집에 가서 한국 역사를 자세히 찾아봐야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위안부 문제를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모르는 외국인이 많다. 한국문학을 알리는 것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영국에 알려진 아시아 문학 중 대부분이 일본 문학이라고 한다. 옥스퍼드대에는 중국학을 지원하는 차이나센터와 일본 닛산 자동차가 세운 일본학연구소인 닛산인스티튜트가 있다. 유럽에서 한국문학과 한국학의 지속 발전을 위해 옥스퍼드대에 한국학연구소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뜻 있는 한국 기업이 좀 나서줬으면 좋겠다.”

같은 날 옥스퍼드대에 일본 천왕이 왔었다고.

내가 강의하던 날이 마침 일본 천왕 부부가 옥스퍼드대를 방문한 날이었다. 방문한시각도 내가 강의하는 같은 시간대였다. 나는 특강에서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옥스퍼드대 한편에서는 일장기를 든 일본인이 일본 천왕을 환영하고 있었다.”

배우로서는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나. 일제 침략에 고뇌했던 조선 지도자의 역할은 어떤가.

“열심히 하는 많은 사람에 비해서 나는 한 시대에 좋은 작품을 잘 만나서 많은 걸 누렸다. 감사하게도 만약에 배역을 맡는다면, 이제는 내가 누렸던 것을 후배들이 하는 데 좀 도움이 되는 그 정도 역할이면 만족한다. 굳이 내가 또 주인공을 하기보다는 조금씩 후배들을 돕는 그럴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배우, 작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나.

“안 불려도 된다. 그냥 뭐 아무거나 상관없다. 그냥 나쁜 사람으로만 안 남으면 좋겠다.” 

심민관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

이수진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