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누 브래드퍼드 컬럼비아대 법학 교수 헬싱키대 법학 석사, 하버드대 법학 석·박사,  현 컬럼비아대 유럽법률연구센터 소장, ‘The Brussels Effect’‘Digital Empires’저자
아누 브래드퍼드 컬럼비아대 법학 교수
헬싱키대 법학 석사, 하버드대 법학 석·박사, 현 컬럼비아대 유럽법률연구센터 소장, ‘The Brussels Effect’‘Digital Empires’저자

“최근 유럽에서 자유주의 질서가 퇴조하면서, 더 많은 국가가 자국 내 데이터를 통제하려 들 것이다. ‘브뤼셀 효과(Brussels Ef-fect)’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아누 브래드퍼드(Anu Bradford) 컬럼비아대 법학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극우 세력이 득세하는 유럽의 정치 지형이 브뤼셀 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브래드퍼드 교수가 2012년 처음 주창한 브뤼셀 효과는 유럽연합(EU)이 만든 규칙을 전 세계가 따라가는 현상을 말한다. 일반데이터보호규정(GDPR)이 대표적인 사례다. 2018년 GDPR이 발효된 후 한국을 비롯해 많은 국가가 개인정보보호법을 개정한 바 있다. 특히 브래드퍼드 교수는 최근 미국이 ‘틱톡 금지법’을 내놓은 것처럼 데이터를 국가 안보의 핵심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한국의 데이터 보호법이 엄격할수록 한국 기업이 데이터를 안전하게 사용할 것이라는 신뢰를 다른 나라에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브뤼셀 효과의 원리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 왜 EU가 만든 규제를 다른 나라가 따르게 된다고 보는가.

“브뤼셀 효과는 EU가 세계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뜻한다. EU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소비 시장 중 하나다. 글로벌 기업은 수익성 높은 EU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 EU 규제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업 입장에서 볼 때, 여러 나라의 다양한 규제를 일일이 따르기엔 비용이 많이 든다. EU 규제를 전 세계적으로 적용하는 게 더 유리한 셈이다. 즉, 기업은 가장 엄격한 규제인 EU 규제를 표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EU는 EU 시장을 규제하지만, 시장의 힘과 기업의 비즈니스 이익 때문에 EU 규제가 글로벌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EU가 만든 규제를 따르는 이유 중 하나는 EU 규범이 역내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믿음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유럽 내 선거 결과를 보면 자유주의가 퇴조하고 점점 더 보호주의적 색채를 띠는 것으로 보인다. 브뤼셀 효과엔 어떤 영향을 줄까.

“EU가 만든 규제가 종종 공공의 이익을 반영한다고 여겨져 전 세계적으로 지지를 받는 건 사실이다. 동시에 자유주의 질서가 퇴조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동의한다. 최근 들어 데이터 전송, 반도체, 전략 기술 등 다양한 무역 분야에서 제한이 많아지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각국 정부는 디지털 시장을 더 철저하게 관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기술 발전과 배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데이터 프라이버시를 강화하고, 인공지능(AI) 부작용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규제를 도입한다. 이런 점에서 많은 나라가 EU처럼 디지털 규제를 강화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오히려 브뤼셀 효과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실제로 EU의 GDPR 같은 데이터 규제는 브뤼셀 효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EU의 GDPR은 EU 외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먼저 애플, 구글, 메타(옛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글로벌 기업이 GDPR에 맞춰 전 세계적인 개인 정보 보호 정책을 따르게 했다. 아울러 100개 이상의 국가가 GDPR과 유사한 데이터 보호법을 제정했다. GDPR이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와 기업이 따르는 ‘골드 스탠더드(Gold Standard)’ 가 된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벌어지는 이유도 궁금하다.

“오늘날 소비자와 인터넷 사용자가 데이터 보호의 중요성을 점점 더 인식하게 된 결과다. 수많은 데이터 유출 사건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면서 이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웠다. 또한 소셜미디어(SNS)를 운영하는 일부 민간 기업이 금전적 이익을 위해 사용자의 개인 데이터를 활용하는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에 불편을 느끼고 있다. 이에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개인 데이터를 기업이 사용하는 데 제한받기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과거 자유로운 데이터 흐름을 옹호했던 미국도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은 2015년부터 모든 국제 협정에 데이터 자유 이전 원칙을 포함해 왔지만, 작년 말 이 원칙을 폐기했다. 그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첫째, 미국은 이제 데이터를 국가 안보의 핵심으로 간주하고 있다. 틱톡 같은 기업을 통해 중국 정부 같은 적국에 데이터가 전송되는 것을 제한하고자 한다. 둘째, 미국 정부는 자국 내 데이터 보호에 대한 지지가 증가하는 현상을 인식하고 있다. 이에 국제 데이터 전송에 제한을 둘 수 있는 방식으로 데이터 보호를 규제할 권리를 갖고자 한다. 즉, 미국은 데이터 보안과 관련된 입장을 재검토 중이며, 과거처럼 국제 협정에 손이 묶이길 원치 않는다.”

미국이 앞으로 틱톡 금지법 같은 규제를 계속 만들 것으로 예상하는가. 한국 같은 동맹국들도 우려해야 하는가.

“미국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틱톡을 금지하거나 자국 내 기업에 매각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틱톡이 중국 공산당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물론 틱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 정부는 주로 중국을 규제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미국이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에 중국 관련 데이터 및 기술 이동을 제한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라고 요구할 경우 (한국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데이터 규제가 자칫 자국 내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나 다른 글로벌 IT 기업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데 악영향을 주진 않을까.

“너무 엄격한 데이터 보호 정책은 혁신을 방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국가 안보와 경제를 지키려면 일부 데이터 수집과 전송을 제한할 필요는 있다. 예를 들어, EU는 중국 전기차가 유럽으로 들어오면서 차량에 장착된 센서와 카메라를 통해 다량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이유로 외국의 스파이 활동을 경계하고, 앞으로 몇 년간 일부 데이터 정책을 강화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정책이 기업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럼 미국에 진출할 예정이거나 이미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기업 입장에서 최선의 전략은 자국 정부가 데이터를 안전하게 전송할 수 있도록 (미국과) 특혜무역협정(PTA) 같은 양자 또는 다자 협정을 체결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의 데이터보호법이 엄격할수록 한국 기업이 데이터를 안전하게 사용할 것이라는 신뢰를 줄 수 있다. 기업이 내부적으로 데이터를 잘 관리하고, 그 나라의 데이터 보호 체제가 강할수록, 다른 나라와 데이터를 주고받는 데 있어 더 나은 합의를 이룰 가능성이 커진다.”

2021년 중국은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가입을 신청했다. 중국이 데이터 이동에 있어 점점 더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뜻일까.

“중국이 국경간 데이터 이동을 자유화하는 DEPA에 가입하게 된다면 중국 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에 도움이 될 거다. 그러나 중국이 자국 데이터 정책을 얼마나 개방할 준비가 돼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데이터 제한 정책을 가진 국가다. 이를 급격하게 바꿀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는 없었다. 중국은 민감한 데이터를 자국의 국가 안보에 중요한 전략 자산으로 계속 간주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중국이 데이터 정책을 개방할 경우, 모든 데이터를 일괄적으로 개방하는 게 아니라 민감하다고 판단한 데이터는 제한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특정 데이터 유형이나 범주만 선택적으로 개방할 것으로 전망한다.” 

전 세계가 EU 규칙 따르는 ‘브뤼셀 효과’…왜 브뤼셀일까

브래드퍼드 교수의 브뤼셀 효과는 EU가 만든 규제가 27개 회원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도 적용되는 현상을 말한다. “EU가 만든 법이 인도네시아에서 목재가 어떻게 수확되는지, 브라질에서 어떻게 꿀이 생산되는지, 중국의 유제품 공장에 어떤 장비가 설치돼 있는지를 결정한다”는 게 브래드퍼드 교수의 주장이다. 브뤼셀 효과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GDPR과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 유해물질제한지침(RoHS), 에코디자인 규정이 꼽힌다. 실제로 많은 글로벌 기업이 유럽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이러한 규제를 따르고 있고, 다른 국가들도 유사한 법률을 도입하게 됐다. 그렇다면 브뤼셀 효과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이 EU 본부가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EU의 규제와 법안은 모두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김우영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