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빌렐라
아르헨티나 바이오경제부 장관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대(UBA) 농공학,  전 UBA 농학부 학장,  
전 아르헨티나 옥수수협회(MAIZAR) 회장
페르난도 빌렐라 아르헨티나 바이오경제부 장관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대(UBA) 농공학, 전 UBA 농학부 학장, 전 아르헨티나 옥수수협회(MAIZAR) 회장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경제구조는 상호 보완적이다. 아르헨티나의 국토 면적은 한국의 25배에 달할 만큼 크지만 인구는 4700만 명 수준으로 한국(약 5100만 명)보다 적다.” 

‘아르헨티나’라는 국가명은 라틴어로 은(銀)을 뜻하는 아르겐툼(argentum)에서 나왔다. 풍부한 광물자원 때문에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스페인어 ‘라 플라타(La Plata· 은)’로 불리다가 독립 후 지금 이름을 택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 상황이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반도 면적의 두 배가 넘는 비옥한 곡창 ‘팜파스’를 기반으로 한 농업과 축산업 경쟁력은 여전히 세계적이다. 우리나라로 수입되는 옥수수와 대두유도 아르헨티나산(産)이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 아르헨티나에서는 인구보다 많은 약 5400만 마리의 소를 사육하고 있어 ‘가난한 사람도 소고기는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2019년 기준 아르헨티나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소고기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에 달했다.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간 페르난도 빌렐라 아르헨티나 바이오경제부(한국의 농림축산식품부에 해당) 장관을 7월 9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주한 아르헨티나 대사관에서 독점 인터뷰했다. 그는 각각 연간 8000만t, 600만t을 넘어서는 아르헨티나의 곡물과 육류 생산량을 언급하며 “(한국처럼) 식량자급률이 낮은 국가와 협력해 도움을 주는 게 우리의 비전”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곡물 생산량은 2021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집계 기준으로 540만t 정도다. 우리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022년 기준 49.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반면, 농산물 물가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빌렐라 장관은 7월 7~9일 사흘간의 방한 동안 박범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과 만나 그린 바이오, 스마트농업 등 한·아르헨티나 간 농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아르헨티나는 동물용 의약품 등 그린 바이오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을 보유하고 있어 우리나라와 기술 협력 잠재력도 높다. 다음은 빌렐라 장관과 일문일답.

이번 방한의 목적은.

“아르헨티나 정부의 농·축산업 분야 관계자가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지난해(2023년) 연말 취임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생산과 수출을 늘리는 것을 국정 운영의 주요 목표로 잡았다. 결국 (아르헨티나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농·축산업 성장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위해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중국, 일본을 차례로 방문하게 됐다.” 

농·축산업 등 일차산업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 이름을 ‘바이오경제부’로 정한 것이 이채롭다.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

“전통적인 농·축산, 수산업에 더해 ‘친환경’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물 사용과 탄소 배출을 대폭 줄인 친환경 농법이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예를 들어 밀과 옥수수 경우에는 경쟁국에 비해 탄소 배출을 60% 가까이 줄였다. 땅을 인위적으로 갈아엎지 않는 ‘무경작 농법’이 큰 역할을 했다. 연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고, 토양 속 미생물이 다치지 않기 때문에 생산성을 증대할 수 있다.”

생산을 늘리는 것 못지않게 생산 방법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렇다. 먹거리 생산에 머물지 않고 친환경 에너지와 비료 등으로 화학제품을 대체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여기에 이력 추적과 인증 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더 체계적으로 품질을 관리하고자 한다.”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 중 하나인 카파야테 지역에서 포도를 수확하는 모습. 사진 블룸버그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 중 하나인 카파야테 지역에서 포도를 수확하는 모습. 사진 블룸버그

인구 대비 토지 면적이 넓다는 건 농업 분야 수익성이 좋다는 의미도 될 것 같다.

“생산의 75%는 수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농가 수에 비해 생산량이 많아 가구당 돌아가는 몫이 크다. 가격 경쟁력도 클 수밖에 없다. 일차산업 소득이 높지 않은 나라가 많지만, 아르헨티나는 그렇지 않다. 농·축산업이 사실상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상황이라면 농업에 관심 있는 젊은이가 적지 않을 것 같다.

“유럽이나 북미에 비해 확실히 농·축산업종사자의 평균연령이 낮다. 대학을 졸업하고 농업에 종사하는 경우도 많다. 젊은이와 고학력자가 많다 보니 앞선 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다. 요즘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인공위성 기반으로 수확 현황을 모니터링할 수도 있고, 다음 해에 비료를 얼마나 사용해야 할지 미리 가늠해 볼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남미 공동시장(메르코수르·Mercosur) 4개국과 한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진행 중이다. 농축산물 분야에서 입장 차가 큰 것으로 알고 있다.

“협상은 매우 길고 복잡하다. 아르헨티나산 소고기를 한국에 수출하기 위한 협상에서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지만, 뚜렷한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가금류 수출 협상은 마지막 단계에 있는데, 조속한 시일 안에 한국에 닭고기를 수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방문 중에 아르헨티나산 소고기와 와인에 관심 있는 한국 기업 관계자를 만났다. 그에게 ‘거기에 탱고만 추가하면 완벽한 아르헨티나 조합이 될 것’이라고 했다(웃음).” 

메르코수르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로 결성된 중남미 최대 경제 연합체다. 한국은 2021년 7차 협상을 끝으로 메르코수르와 FTA 타결에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중남미는 인구 6억4000만 명, 경제 규모 5조8000억달러(약 8006조9000억원)로 전 세계 GDP의 6.7%를 차지하는 신흥 경제 지역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무역 흑자 지역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산 소고기가 다른 나라 소고기보다 특별히 품질이 좋을 이유가 있을까.

“아르헨티나산 소고기는 우수한 품질을인정받아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으로 수출되고 있다. 광활한 남부 팜파스 초원 덕에 아르헨티나 소는 대부분 자연 상태의 풀을 먹고 자란다. 또, 물을 마시기 위해 늘 적잖은 거리를 이동하기 때문에 품질이 매우 좋고 건강에도 좋은 고기 공급원 역할을 한다. 지방이 적고 콜레스테롤 함량도 낮다. 이렇게 신선하고 품질 좋은 아르헨티나산 소고기를 한국에서 맛볼 수 없다니, 아쉽다.”

한국에서 아르헨티나 와인의 인지도가 부쩍 높아졌다. 특히 대표 품종인 ‘말벡(Malbec)’은 육류와 잘 어울리는 와인으로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도 인기 많다.

“아르헨티나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2위는 안데스산맥 기슭에 있는 최대 와인 생산지인 멘도사다. 풍경이 좋아 와이너리 투어에 관광객이 몰린다. 말벡 와인은 생산 지역의 토양과 물, 일조량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아 서로 다른 독특한 맛과 향을 낸다. 한 가지 말벡만 있는 게 아니다.”

포도 품종 중 하나인 말벡은 프랑스에서 탄생했지만, 재배에 더 적합한 멘도사로 넘어와 아르헨티나 와인을 대표하는 품종으로 자리 잡았다. 습기에 약해 프랑스에선 병충해에 시달렸던 말벡이 아르헨티나 멘도사 지역에서 꼭 맞게 생장한 것. 지금은 아르헨티나가 전 세계 말벡 와인의 75%를 생산한다.

아르헨티나에서 한국 음식이 인기가 있나.

“K팝과 K드라마의 인기가 촉발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이제 식문화로 옮겨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만 60~70곳의 한식당이 성업 중이다. 아르헨티나는 김치가 한국을 대표하는 중요한 음식이라고 생각해 ‘김치의 날’도 제정했다.”

2021년 10월 아르헨티나 상원은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공식 제정했다. 11월 22일은 한국김치협회가 주도해 세워진 김치의 날로, 한국에서도 2020년 법정 기념일로 지정됐다. 아르헨티나 김치의 날 제정을 주도한 마그달레나 솔라리 킨타나 상원의원은 당시 진행한 연설에서 “김치는 한국을 대표하는 보물이자 상징”이라며 한국과 우호 강화를 위해 김치의 날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성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