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힐스 컨트리크럽 김준성 코스관리팀장이 그린에 생장 조정제를 뿌리고 있다. 사진 우정힐스
우정힐스 컨트리크럽 김준성 코스관리팀장이 그린에 생장 조정제를 뿌리고 있다. 사진 우정힐스

국내 최고 권위의 골프 대회인 코오롱 제66회 한국오픈 골프선수권대회(총상금 14억원·우승 상금 5억원·이하 한국오픈)는 6월 20일부터 23일까지 대회 기간 그린 스피드 4m 시대를 열었다. 대회 2라운드에서 대회 사상 가장 빠른 그린 스피드 4.2m를 기록했다. 폭우가 쏟아져 두 차례나 경기가 중단됐던 3라운드에도 4.0m를 유지했고 마지막 날 4.1m로 그린을 세팅했다. 1라운드는 PGA투어 평균 수준인 3.8m였다.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US오픈의 평균 그린 스피드가 4.27~4.42m인데 한국오픈에서 이와 비슷한 수준의 그린 스피드가 나온 것이다.

이번 대회 기간 충남 천안 우정힐스 컨트리클럽(파 71)은 그린에서 많은 선수가 국내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빠른 그린 스피드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라운드가 거듭할수록 선수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베테랑 허인회(37)는 “무조건 빠르다고 좋은 게 아니라 코스가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뛰어났다”고 말했다. 그린 스피드는 스팀프미터라는 홈이 파인 알루미늄 막대(91㎝)를 그린과 20도로 만들고 그 위에 볼을 놓아 그린에서 굴러간 거리로 표시한다. 

선수와 팬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우정힐스 컨트리클럽의 김준성 코스관리팀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린 스피드 차이는 어떻게 생기나.

"마스터스처럼 흔히 잘 구르는 그린을 유리알 그린이라고 한다. 실제 유리면에 공을 굴러보면 잔디 위에 구르는 것보다 훨씬 잘 구르는 걸 볼 수 있다. 공이 구르는 면의 마찰력이 줄면 그만큼 공이 구르는 속도가 빨라진다. 잔디 면의 마찰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인은 잎의 길이, 잎의 폭, 잎의 밀도 등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잎 길이가 짧을수록, 잎의 폭은 좁으면서도 밀도가 적당히 높은 그린이 빠르게 구른다. 반대로 잎이 길수록, 잎이 넓을수록, 잎의 밀도가 떨어질수록 그린 스피드가 느려진다.”

빠르고 단단한 그린은 US오픈의 트레이드 마크다. 이런 그린이 좋은 것인가.

“내셔널 타이틀 대회인 한국오픈에서 최고의 챔피언을 뽑기 위해선 빠르고 단단한 그린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 선수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를 줄 수 있고 국제 무대에 나가서도 실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모든 홀의 그린이 같은 수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건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다. 한국오픈을 주관하는 대한골프협회는 합리적인 코스 세팅을 통해 선수 기량을 정확하게 평가하기를 원한다. 한국오픈이 열리는 우정힐스 컨트리클럽은 파 3홀의 아일랜드 그린이 유명하다. 공을 정확히 세울 수 있는 아이언 거리에 맞춰 티잉 구역을 다양하게 가져가려고 한다. 선수의 기량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홀의 비중도 늘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합리적으로 최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노력을 계속하면 선수들 기량 또한 더 향상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국오픈은 도전하는 무대가 됐으면 한다.” 

마스터스는 1년간 대회 준비를 한다고 들었다. 우정힐스도 오랫동안 한국오픈을 열면서 비결이 있을 것이다.

“잔디는 식물이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좋아질 수 없다. 사계절의 자연환경에 잘 적응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노력하는 가운데 대회 기간과 대회 이후 생장의 선순환이 이뤄지도록 대회를 준비한다. 특별한 비결보다는 봄에는 대회를 견딜 수 있게 최대한 생장을 끌어내고 여름 무더위와 장마에 생리 활동이 떨어지는 시기에는 잘 버틸 수 있게 도와주며 가을에는 여름에 손상된 잔디를 최대한 회복시키고 겨울에는 다음 봄에 잔디가 잘 올라올 수 있도록 충분한 수분과 영양분을 주려고 노력한다.”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하나.

“그린 스피드는 잔디 길이와 그린의 단단함, 수분 함량 등을 조절해 올린다. 그린 스피드를 내려면 잔디의 폭(예엽)을 좁히고 높이(예고)를 짧게 해야 한다. 평소 3.1~3.2㎜인 잔디 길이를 대회를 앞두고 서서히 낮추기 시작해 대회 기간 2.4㎜ 안팎을 유지한다. 대회 10일 전부터 질소 성분 비료를 주지 않아 잔디가 잘 자라지 않도록 관리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대회 기간에는 하루 두 번 잔디를 깎고(더블 커팅) 그린 표면을 단단하게 눌러주는 롤링 작업(500㎏ 장비)을 한다. 잔디 표면 경도를 유지하기 위해 수분 비율도 평소 10~12%에서 7~8%로 줄인다.”

그린의 단단함도 빠르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린 경도는 토양 내 수분과 관계 있다. 토양에 물이 많을수록 잔디 면은 부드럽고, 없으면 딱딱한데, 토양에 너무 물이 없으면 잔디는 말라 죽기 때문에 토양도 딱딱하면서 잔디는 살아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골프장마다 생육 환경이 다르므로 거기에 맞는 수분 상태를 찾아야 한다. 부드러운 잔디 면과 딱딱한 잔디 면에서 공을 굴려보면 딱딱한 잔디 면의 그린 스피드가 더 좋다.”

예전 한국 골프장은 그린 스피드 3.0m를 넘기는 것이 목표였다.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진 원동력은.

“잔디를 깎거나 보호하는 장비, 비료나 작물 보호제의 발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잔디연구소 부설 그린키퍼학교 등 잔디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국내 교육기관이 늘면서 관리자들의 잔디 생육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나도 그린키퍼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나와서도 소장과 연구원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린 스피드를 높이려면 잔디의 길이나 폭을 꾸준히 일정하게 만드는 평탄성 작업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US오픈이나 마스터스 그린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그린으로 알려졌다. 한국오픈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오전 빠르기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오후 6시까지 끌고 가는 스피드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그런 이유는 충분한 휴장 기간을 거쳐 잔디의 모든 상태를 최상으로 맞추고 대회를 시작하는 것과 대회 기간 도중 만드는 잔디 품질은 크게 비슷하다고 해도 세부적으로는 다르다. 코스의 모든 잔디를 같게 만드는 작업은 힘든 과정이다. 투입되는 인력과 품질을 내기 위한 돈 자체가 사실 비교가 안 된다.” 

그린 스피드 4m를 만든 경험이 남다를 것 같다.

“정말 뿌듯하고 기쁘다. 작업을 위해 장비와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 같은 회사인 라비에벨 CC 직원과 장비의 도움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내년에는 더 다양한 작업을 통해 더 좋은 품질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