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이 향후 10년간 중국의 경제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제20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300여 개의 개혁과제를 쏟아냈다. 낮아지는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단기 처방을 쓰기보다는 ‘고품질 발전’을 통해 질적 성장에 힘쓰겠다는 시진핑( 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복안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2029년까지 이번에 제시된 개혁 임무를 완성하겠다고 밝혀, 시 주석의 집권 연장을 암시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제조업 고급화·지능화·녹색화
7월 18일 신화통신을 통해 공개된 공보에 따르면,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는 7월 15일부터 베이징 징시호텔에서 열린 나흘간의 3중전회를 마치며 ‘진일보한 전면 개혁 심화와 중국식 현대화 추진에 관한 당 중앙의 결정(이하 결정문)’을 통과시켰다. 3중전회는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중앙위의 세 번째 전체회의다. 당 중앙위는 5년 주기로 일곱 번의 전체회의를 여는데, 1중전회와 2중전회에서 구성된 지도부가 1년간 국정을 운영해 본 뒤 3중전회를 열어 청사진을 제시한다. 현대 중국 경제의 기틀이 된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노선(1978년)과 장쩌민(江澤民)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1993년) 모두 3중전회에서 발표됐다. 3중전회가 굵직한 경제정책 운영 방향을 설정하면, 이후 각종 회의에서 이에 맞춘 세부 정책이 만들어진다.
7월 21일 공개된 결정문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선·발전시키고, 국가 통치 체계와 역량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중국식 현대화 국가 건설은 이른바 ‘고품질 발전’을 통해 이뤄진다. 고품질 발전에 대해 블룸버그통신은 “이 모호한 슬로건은 일반적으로 중국이 미국의 무역 규제에 대한 회복력을 가질 수 있도록 첨단 기술 기반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열망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고 했다.
실제 결정문은 기술혁신을 기반으로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신품질 생산력’을 현지 실정에 맞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중 육성 분야로는 전기차·배터리·태양광 등 ‘3대 신성장 동력’을 비롯해 인공지능(AI) 등 미래 첨단산업이 꼽힌다.
고품질 발전을 성장 수단으로 내세웠다는 것은 당장 대규모 재정을 쏟아부어 성장률을 끌어올리지 않겠다는 것을 뜻한다.
“부동산 발전 신모델 구축”
중국 경제성장률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부동산 침체 역시 구조적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계획이다. 결정문에선 “부동산, 지방정부 부채, 중소 금융기관 등 핵심 분야의 위험을 예방 및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해야 한다”라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회의 폐막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한원슈(韓文秀) 공산당 중앙재경위원회판공실 일상공작 담당 부주임은 “부동산 발전 신모델 구축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과거 ‘고(高)부채·고회전율·고레버리지’ 모델의 폐단을 없애고 인민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는 좋은 집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을 털어내고 가겠다는 의미다.
중국 경제의 또 다른 뇌관인 지방정부 부채 해결을 위해선 중앙정부로 집중된 세수· 재정 권한을 지방에 일부 이양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장기 침체의 길로 들어선 내수 회복 방안으로는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고 중산층 규모를 확대해 인민의 소비 능력과 의지를 향상하겠다고 했고, 대외 무역 시스템 개혁과 외국인 투자 유치를 확대한다는 의지도 재확인했다.
이 같은 방침에 대해 성균중국연구소는 3중전회 분석 특별 리포트를 통해 “전반적으로 해외 투자자의 기대에 못 미치고 구체적인 정책 방안, 특히 민영 경제 방안, 각종 세제 도입 등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다”라며 “미래 지향적 어젠다 설정보다는 보수적인 경제 관리와 현상 유지에 주력했다”라고 평가했다.
이번 3중전회가 시 주석의 4연임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결정문은 총 60개 조항, 300여 개 개혁 과제로 이뤄졌는데, 중국 지도부는 이 과제를 2029년까지 모두 완료하겠다고 못 박았다. 궁극적 목표는 2035년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건설하는 것이다. 시 주석의 3연임이 끝나는 2027년 이후 시간표가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이다. 성균중국연구소는 “2029년을 개혁 임무 완성 시점으로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시 주석이 연임해야 개혁도 완수할 수 있다는 논리적 연관을 추론할 수는 있다”라고 했다.
2분기 성장률 급락에 경제 위기 인정한 中
이번 3중전회에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중국 공산당이 경제 위기를 인정했다는 점이다. 한원슈 부주임은 “주요 거시 지표가 기대에 부합하고 있지만, 동시에 일부 어려운 도전에도 직면해 있다”라고 했다. 실제 3중전회 첫날 발표된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4.7%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 예상치인 5.1%에 못 미치는 것은 물론, 지난해 1분기(4.5%)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로써 상반기 누적 GDP 성장률은 5.0%로 1분기(5.3%) 깜짝 성장분을 일부 반납하게 됐다.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5.0% 안팎) 달성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내수 부진과 부동산 침체가 심화했다. 산업 생산과 수출은 선방했지만, 이마저도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무역 장벽 강화로 하반기엔 장담할 수 없다.
중국은 3중전회 직후 즉시 행동에 나섰다. 7월 22일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5개월 만에 인하한 것이다. 이로써 일반 대출 기준인 1년물 LPR과 주택 담보대출 기준인 5년물 LPR은 각각 연 3.35%, 3.85%로 0.1%포인트씩 낮아졌다. 미국과 금리 차가 확대돼 환율 불안이 커질 수 있지만, 그보다는 2분기 경제성장률 쇼크가 연말까지 이어지는 것을 빠르게 차단해야 한다는 시급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친강은 조용한 퇴장, 리상푸는 사형 위기
중국 공산당은 이번 3중전회 공보를 통해 친강 (秦剛) 전 외교부장(장관)의 중앙위원(서열 상위 205명) 직무의 사직 신청이 수용됐다고 밝혔다. 당이 파면하는 것이 아닌, 제 발로 나간 형식인 만큼 별도 처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친강에 대해 ‘동지’란 호칭을 유지한 점 역시 조용한 퇴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지점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동지란 호칭은) 그가 여전히 당원이며, 형사 수사를 받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라고 했다.
이로써 친강은 지난해 7월 장관직, 올해 2월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직에 이어 남은 고위 당직인 중앙위원직까지 모두 반납했다. 친강은 중국의 ‘전랑(늑대 전사)’ 외교를 상징하는 인물로, 56세 때인 2022년 말 외교부장에 파격 발탁됐고, 이듬해 3월 국무위원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돌연 자취를 감췄고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번 회의 결론으로 미뤄볼 때 최소한 당을 배신하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인민해방군 로켓군사령부의 납품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리상푸(李尙福) 전 국방부장에 대한 처벌 역시 이번에 마무리됐는데, 그는 친강과 달리 사법 절차를 밟게 됐다. 현지에서는 그가 사형선고를 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