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취업 정보 사이트 마이나비와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최근 발표한 취직 기업 인기 순위(문과·2025년 기준)에서 ‘니토리(NITORI)’가 2년 연속 1위에 올랐다. 이직 사이트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직원의 생생한 목소리가 실시간으로 알려지는 투명한 시대에 취준생들로부터 입사 선호도가 높다는 것은 그 회사에 매력이 많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니토리는 보통 ‘일본판 이케아’로 불리는 곳이다. 가구 및 인테리어 제품을 제조해 판매하는 일본 대표 유통 기업이다.
니토리는 1967년 홋카이도에서 ‘니토리가구점(似鳥家具店)’으로 출발했다. 이후 1998년 이름을 ‘홈패션 니토리’로 바꿨고, 2002년에는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니토리는 1988년부터 2022년까지 35년간 매출과 영업이익이 매년 늘어났다. 장기 저성장과 15년 이상 인구가 줄어드는 일본의 사업 환경에서 세운 대기록이다.
니토리는 소비 시장 변화 대응→실적 호전→기업 인지도 상승→인기 급등→우수한 인재 집결의 선순환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3년 11월 한국 시장에도 진출해 우리나라 소비자에게도 익숙하다. 판매 상품의 90%를 수입해서 판매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니토리는 역사적인 ‘엔저(엔화 약세)’ 악재에 직면했다. 엔저는 니토리의 수입 상품 가격을 올려 니토리에는 악재다. 니토리가 이런 상황을 뚫고 계속 성장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취업 인기 순위, 2년 연속 1위
니토리가 취준생들로부터 인기를 끄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니토리홀딩스(HD)의 연평균 임금은 780만엔|(약 6860만원)이다. 이는 일본 상장 기업 평균치(638만엔·약 5610만원)보다 100만엔 이상 많다. 직원의 업무 의욕을 끌어올리는 독특한 인사 제도도 운용 중이다. 니토리는 해외 업무, 다양한 직종, 인턴 제도 등에서 대외 평판도가 높다. 회사 내부에서 상품 원자재 조달부터 제조, 재고관리, 배송, 판매까지 모든 업무를 총괄한다. 제조 부문과 함께 종합상사, 해외 사업 전개, 점포 개발, 정보통신(IT) 등 다양한 부서를 두고 있어 사원들이 입사 후 선택지가 많다. 신입 사원들은 입사 10년 후 자신의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거기에 맞춰 필요한 업무를 익힐 수 있다.
니토리는 1988년부터 2022년까지 35년 연속 매출과 영업이익이 늘었지만 2023년 매출이 전년 대비 5.5% 줄었다. 영업이익도 1년새 8.8% 감소했다. 35년째 이어진 매출, 영업이익 신기록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하지만 실적을 뜯어 보면 수입 상품이 주요 매출원인 기업이 역사적인 엔저 속에 선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엔화 가치 급락 여파로 경상이익(영업이익에서 영업 외 수익을 더하고 영업 외 비용을 뺀 것·자금 조달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경상이익률이 15% 선을 유지하면서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저성장, 인구 감소에도 35년 매출·이익 증가
니토리의 실적 신기록 행진이 멈췄지만, 수익 구조는 여전히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엔화 가치가 최근 3년 새 달러 대비 30% 이상 떨어졌음에도 높은 이익률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단순히 ‘엔고(엔화 강세)’를 이용해 돈을 버는 기업이 아니라는 의미다.
2023년 니토리의 실적 신기록 행진에 제동이 걸린 가장 큰 원인은 글로벌 공급망 영향 때문이다. 다양한 가구 상품의 원재료가 되는 목재 등의 국제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엔화 약세, 해상 운송비 증가 등으로 생산 비용이 전방위적으로 늘었다. 국내외에서 발생한 구조적인 원가 상승이 수익 구조를 압박한 것이다. 니토리는 원자재 조달처를 다변화하고, 물류 효율화로 대응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기간에 나타났던 특수도 사라졌다. 팬데믹 기간인 2020~2021년에는 사람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구와 홈패션 상품 판매가 급증했다. 2022년부터 이런 수요가 줄었고, 물가 상승으로 매장을 찾는 고객이 감소하는 추세다. 2022년 말부터 니토리가 ‘생활 응원 가격 인하 캠페인’을 시작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물가 상승으로 구매력이 떨어진 소비자를 다시 불러오자는 전략이었다. 이런 노력에도 매장 평균 매출은 10%가량 떨어졌다.
역사적인 엔저발 악재 극복 가능할까
니토리는 2000년대 들어 높은 수익성을 자랑해 왔다. 판매 상품의 90% 이상을 중국, 베트남, 태국 등 해외에서 생산해 수입하는 모델로 성장했다. 하지만 엔화 가치가 40여 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주요 상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니토리의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졌다. 엔화 가치가 달러당 1엔 떨어질 경우 약 20억엔(약 176억원) 정도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물품 구매 기본 환율이 달러당 132.23엔(약 1160원)에서 146.60엔(약 1290원)으로 오르면서 영업이익이 약 380억엔(약 3340억원) 줄었다. 니토리아키오(似鳥昭雄·79) 니토리홀딩스(HD) 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최대 위기”라며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 엔화 초약세, 코로나19 팬데믹 특수 종결이 겹쳐 사업 환경이 매우 악화됐다”고 말했다.
니토리는 올해 매출은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3월 말 끝나는 이번 회계연도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7.2%, 1.5% 늘어날 것이라는 게 니토리 측 예상이다. 니토리는 올해 공격적인 가격 인하 정책과 고객 확대 전략에 힘을 쏟고 있다.
10년 만의 복귀 창업주, 약일까 독일까
니토리의 창업자인 니토리 아키오 회장은 올해 2월 10년 만에 최고경영자(CEO)로 돌아왔다. 니토리그룹의 주력 기업인 니토리 사장을 겸임한 니토리 회장은 경영 일선 복귀 후 공격적인 해외시장 진출을 주문했다. 포화 상태에 이른 일본 내수 시장에만 의지해서는 회사의 지속 성장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니토리는 2007년 대만 해외 1호점을 시작으로 올해 3월 기준 170여 개의 해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가정용 가구와 인테리어 제품 수요가 늘고 있는 중국, 동남아 등 아시아 시장에 특히 공을 들이고 있다. 2023년 한국 시장에 진출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니토리는 지난해 11월 이마트 서울 하월곡점에 첫 점포를 냈고 올해 8월까지 6호점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니토리 관계자는 “10년 이내에 한국에 200개 점포를 출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32년 장기 비전, 달성 가능할까
니토리의 장기 비전은 ‘세계인에게 풍요로운 생활을 제안하는 기업’이다. 이를 위해 30년 단위로 장기 비전을 내걸었다. 1973년에 시작한 1기(1973~2002년) 비전은 무난히 달성했다. 제2기 비전은 2003년부터 2032년까지다. 국내외에 3000개 점포를 열고 매출 3조엔(약 26조4000억원)을 목표로 한다. 지난해 신기록 행진에 브레이크가 걸린 니토리가 8년 뒤 장기 비전을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0년 만에 경영 사령탑을 다시 맡은 80세 창업자가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 속에 새로운 역사를 써갈 수 있을까.
최상철 간사이대 (상학부) 교수는 “미국 시장 진출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한국, 말레이시아 등에 신규 진출하는 등 신시장에 승부를 거는 분위기”라며 “아시아 시장 확대가 현실적 대안이지만 불확실성이 많아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80세 창업자가 다시 경영 전면에 등장했는데, 신세대 임직원들과 호흡을 맞춰 새로운 시장 창출에 성공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