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인간처럼 사회를 이루고 산다. 그러다 보니 개미를 보면 영화 장면이 자주 떠오른다. 개미는 사냥 중에 동료가 다치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힘들게 집으로 데려오는 희생을 한다. 다친 동료는 집으로 후송되고 치료를 받았다.

과학자들이 개미 사회에서 또 다른 영화를 찾아냈다. 개미는 다리에 생긴 상처가 심해지면 다리를 절단했다. ‘월드워Z’에서 주인공 브래드 피트가 좀비에게 물린 군인의 손을 잘라 감염을 막았던 것과 같다. 다친 동료를 치료하는 동물은 더러 있지만,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사지 절단까지 감행하는 동물은 처음이다.

다리 잘라 병원균 감염 막아

로랑 켈러(Laurent Keller) 스위스 로잔대 생태진화학과 교수 연구진은 최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미국 플로리다주에 흔한 목수개미(학명 Camponotus flori-danus)가 상처를 입은 동료 개미의 다리를 치료하다가 심하면 절단까지 하는 모습을 관찰했다”고 밝혔다.

로잔대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플로리다 목수개미 군집을 관찰하던 중 한 개미가 동료의 상처 난 다리를 씹는 모습을 목격했다. 누가 봐도 동료를 공격하는 장면이었다. 연구진은 개미가 동료를 적이라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개미 군집을 촬영한 비디오를 분석했다.

놀랍게도 개미가 동료의 다리를 자른 사례는 더 있었다. 그때마다 절단된 동료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특이하게 절단은 다리 윗부분에 상처가 생겼을 때만 일어났다. 연구진은 개미가 동료의 상처가 심해지지 않도록 한 수술이 아닌지 알아보기로 했다.

먼저 목수개미 72마리의 다리 윗부분에 상처를 내서 감염을 유발했다. 다리가 잘린 개미는 90%가 살아남았다. 개미의 다리 절단 수술이 병원균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막았다는 의미다. 반면 상처가 다리 아래쪽에 생기면 동료가 다리를 자르지 않았다. 연구진은 일부러 아래쪽에 상처를 내고 다리를 잘랐다. 이 경우 생존율은 20%에 그쳤다.

연구진은 이 같은 차이는 개미의 생리학적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곤충은 사람처럼 온몸에 피를 보내는 심장이 없다. 대신 여러 근육이 펌프처럼 움직여 몸 전체에 피를 보낸다. 마이크로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을 보니 심장 역할을 하는 근육 중 상당수가 목수개미의 다리 넓적다리뼈에 모여 있었다. 즉 다리 윗부분을 잘라내면 심장 역할을 하는 근육이 손상돼 피를 통한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다. 다리 아래쪽에는 이러한 근육이 없으므로 절단해도 확산을 막지 못한다.

흰개미 굴 공격 도중 다친 동료를 물고 옮기는 군대개미. 집으로 데려와 치료한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흰개미 굴 공격 도중 다친 동료를 물고 옮기는 군대개미. 집으로 데려와 치료한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상처를 입어 감염된 동료의 다리를 잘라내는 플로리다 목수개미. 감염 확산을 차단해 목숨을 구한다. /스위스 로잔대
상처를 입어 감염된 동료의 다리를 잘라내는 플로리다 목수개미. 감염 확산을 차단해 목숨을 구한다. /스위스 로잔대
고동털개미(Lasius niger)의 거리 두기와 자가 격리. 태그를 부착하고 접촉 여부를 파악했다(A, B). 여왕개미(보라색), 보육개미(녹색), 채집개미(노란색)를 각각 다른 색으로 표시하고 이동 경로를 표시했다(C). C의 왼쪽은 병원성 곰팡이에 노출되기 전이고 오른쪽은 노출 후다. 개미는 곰팡이에 감염된 채집개미(노란색 가운데 검은점)와 거리를 뒀으며, 감염된 개미는 스스로 무리에서 떨어졌다. /사이언스
고동털개미(Lasius niger)의 거리 두기와 자가 격리. 태그를 부착하고 접촉 여부를 파악했다(A, B). 여왕개미(보라색), 보육개미(녹색), 채집개미(노란색)를 각각 다른 색으로 표시하고 이동 경로를 표시했다(C). C의 왼쪽은 병원성 곰팡이에 노출되기 전이고 오른쪽은 노출 후다. 개미는 곰팡이에 감염된 채집개미(노란색 가운데 검은점)와 거리를 뒀으며, 감염된 개미는 스스로 무리에서 떨어졌다.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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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일병 구하기’ 개미도 한다

개미가 다친 동료를 구하는 행동은 이전에도 목격됐다. 미국 록펠러대의 다니엘 크로나우어(Daniel Kronauer) 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해 “개미처럼 단순한 동물이 그렇게 복잡한 행동을 진화시킨 게 이상해 보이지만 다른 개미 종도 비슷하다”며 “부상당한 개미를 치료하는 개미도 있다”고 말했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연구진은 2017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군대개미(Megaponera analis)가 사냥 도중 다치면 같은 무리만 아는 구조 페로몬을 분비하고 동료가 이 화학 신호에 자동 반응한다”고 발표했다.

군대개미는 흰개미를 사냥한다. 굴에 들어가 애벌레를 물고 나오다가 흰개미의 저항에부딪혀 더듬이나 다리가 잘리는 중상을 입기도 한다. 그러면 동료가 물고 탈출한다. 군대개미는 동료의 구조 신호에만 반응했다. 페로몬이 다른 이웃집 개미가 다치면 모르는 체하거나 공격했다.

당시 연구진은 “부상병 구조는 집단 이익을 위해 진화한 행동”이라며 “부상병을 돌보면 그러지 않을 때보다 무리의 숫자가 29% 더 늘어나 흰개미 굴을 공격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고 밝혔다. 크로나우어 교수도 “사냥을 나간 개미의 약 10~20%는 부상을 입는다”며 “상처 입은 개미를 구조함으로써 군집이 그만큼 더 개미를 낳고 키우는 에너지를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거리 두기, 격리 치료 방역도 개미가 원조

개미는 더는 치료하기 힘들면 냉혹하게 밀어낸다. 인간보다 먼저 거리 두기, 격리 치료 같은 방역법을 실천하고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다친 개미가 스스로 집을 나가기도 한다. 영국 브리스톨대 연구진은 2018년 ‘사이언스’에 고동털개미(Lasius niger)가 병에 걸리면 건강한 동료와 접촉을 꺼리고 심지어 스스로 집을 떠나기도 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개미 등에 일일이 자동 인식 태그를 달고 채집개미와 보육개미, 여왕개미의 이동 경로를 분석했다. 채집개미에게 곰팡이를 감염시키자 동료들이 먹이를 나누는 행동을 중단하고 거리를 뒀다. 감염된 개미는 죽음에 이르자 스스로 다른 개미와 접촉하지 못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자가 격리를 한 것이다. 흰개미도 독성 곰팡이에 감염되면 몸을 떨어 감염 신호를 보내 동료가 다가오지 못하게 거리 두기를 실천한다.

개미는 사회적 면역도 한다. 사회적 면역은 군집 전체에 병원체가 퍼지지 않도록 하는 위생과 건강 관리를 의미한다. 오스트리아 과학기술연구원(ISTA)은 지난해 국제 학술지 ‘네이처 생태학과 진화’에 아르헨티나 개미(Linepithema humile)가 병원성 곰팡이를 이겨내는 사회적 면역 행동을 발표했다. 채집개미는 밖에서 먹이를 찾다가 곰팡이에 감염된다. 곰팡이는 개미 몸 안으로 침투해 자란다. 보육개미는 채집개미가 돌아오면 몸에 붙은 곰팡이 포자를 제거한다. 코로나19 감염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약물 치료도 한다. 미국 농업과학연구소(ARS)는 2022년 ‘곤충생리학 저널’에 불개미가 독으로 사회적 면역 행동을 한다고 발표했다. 불개미는 산성용액인 개미산을 분비해 천적을 물리치고 먹잇감을 마비시킨다. 때로 동료에게도 개미산을 쏜다. 개미산의 항균 특성을 이용해 감염을 막는 것이다.

ARS 연구진은 불개미가 동료의 입에 먹이를 전해주는 영양교환에서 개미산도 함께 전달하는 것을 확인했다. 덕분에 항균 물질이 소화기관까지 들어가 병원균을 없앨 수 있다. 여왕개미는 처음 알에서 깬 일개미에게 먼저 항균 물질을 전해준다. 일개미는 다시 애벌레에게 전달하고 결국 군집 전체로 항균 물질이 퍼진다. 아무리 작아도 무시하지 말고 배울 점부터 찾아야 할 일이다. 

이영완 조선비즈 사이언스조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