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트럼프가 냉소적인 멍청이거나 미국의 히틀러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11월 대선을 위해 자신의 러닝메이트로지명한 J.D. 밴스(James David Vance) 상원의원이 지인에게 2016년 보낸 페이스북 메시지이다. 8년은 긴 시간이고, 사람의 생각은 바뀔 수 있으며, 정치권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지만 살짝 놀랍긴 하다. 밴스는 2016년 공화당 당원으로 활동한 초기에는 트럼프를 이렇게 비판하였지만 2018년부터 친트럼프로 돌아섰고, 그 이후에 러스트 벨트의 경합 주에서 트럼프의 핵심 의제인 ‘미국 우선주의(MAGA)’를 적극 전파해 왔다. 트럼프의 선택은 펜실베이니아·미시간주 등 러스트 벨트에 걸쳐있는 중북부 경합 주에서의 승리를 위한 포석인 것으로, 정치평론가는 평가한다.
트럼프 러닝메이트 밴스 부통령 후보도 화석연료 옹호자
미국 역사상 최연소 부통령이 될 수도 있는 39세의 밴스는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진 정치인이다. 오하이오주 출신의 흙수저, 마약 중독자 어머니, 고등학교 졸업 후 해병대 복무, 오하이오 주립대와 예일대 로스쿨 졸업, 영화로도 만들어진 베스트셀러 ‘힐빌리의 노래’ 저자, 성공한 벤처캐피털리스트 그리고 상원의원 당선. 그는 불법 이민 차단, 대중국 견제, 이스라엘 적극 지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조기 종식 등 트럼프와 대부분 견해를 같이하는 강경 매파다.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기후변화의 위협은 과장되었다고 말하고, 전기자동차를 ‘사기(scam)’라고 부르는 등 트럼프와 비슷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2020년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행한 연설에서는 태양광을 ‘배출량을 가장 크게 줄일 수 있는 에너지원’이라고 하였으며, 천연가스가 석유보다 더 깨끗한 대안이라는 생각에는 의문을 표하였다. 하지만 어떤 계기 때문인지 생각은 바뀌었고 2022년 상원 예비선거 공화당 후보 포럼에서는 “기후변화가 인간 때문에 발생한다는 생각에 회의적” 이라고 말했다. 오픈 시크릿(open secrets)에 따르면, 밴스는 2022년에 석유, 가스 업계에서 31만2000달러(약 4억3300만원)의 기부금을 받았는데, 이는 해당 업계 기부금 수령자 중 19위였다.
내년 1월 백악관에 입성할 가능성이 큰 두 사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미국의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 우위(energy dominance)’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트럼프는 민주당의 재생에너지 정책이 미국을 나약하게 만들고 있으며, 연방 정책에서 ‘기후’를 배제하고 화석연료를 장려하여 미국의 에너지 우위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방향은 지난 4월 발간된 보고서 ‘프로젝트 2025(Project 2025)’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해당 보고서는 미국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이 준비한 것으로 트럼프 측근이 지난해 말부터 참여한 ‘공화당 재집권 준비 계획’이다. 발간 이후 해당 보고서의 극단적인 정책이 중도 성향 유권자를 이탈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7월 5일(이하 현지시각) 트럼프는 보고서가 자신과 무관하다며 선을 긋기도 하였다. 하지만 적어도 기후변화, 에너지 정책에서는 보고서의 입장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폭스뉴스 진행자 숀 해니티와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자신은 ‘취임 첫날에만 독재자’가 되어 두 가지 일을 할 것인데. 첫 번째는 남쪽 국경을 바로 폐쇄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석유와 가스 시추를 확대(“drill, drill, drill”)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트럼프 캠페인 웹사이트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연방 시추와 파쇄 가스 파이프라인을 신속히 승인하고, 공공 토지에서 화석연료 개발을 적극 장려할 것이다. 또한 차량 연비 규제,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 표준, 발전소 규제 등 조 바이든 행정부가 제정했던 모든 에너지 및 기후 관련 규제를 폐지한다. 동시에 모든 재생에너지 보조금을 없애고 화석연료 업체에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한다. 그리고 미국은 다시 한번 기후변화협약(파리협정)에서 탈퇴한다.
IRA 폐기는 어려울 듯, 그렇지만⋯
그렇지만 트럼프 2기가 실현되더라도, 미국의 에너지 시장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꾸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석유, 가스 생산은 일차적으로 국제 유가의 영향을 받으며, 이는 미국 대통령이라도 행정명령으로는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트럼프가 시행하려는 화석연료 산업 지원 조치는 오히려 재생에너지 산업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석유나 가스 파이프라인 같은 시설이 수월하게 건설될 수 있도록 환경 규제가완화된다면, 풍력, 태양광 프로젝트 추진도 빨라질 수 있다.
시장의 힘도 재생에너지에 살짝 힘을 실어주고 있다. 넥스트에라(NextErA)에너지 최고경영자(CEO) 존 케첨(John Ketchum)은 지난 6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이 천연가스 발전 비용보다 저렴하며,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반도체 때문에 향후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 전력 수요는 재생에너지가 담당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넥스트에라에너지는 작년에 자사가 공급하는 전력의 약 4분의 3을 천연가스로 발전하였지만, 태양광·풍력발전량 세계 1위이며 2020년 10월 한때 시가총액이 석유 기업 엑손모빌을 추월한 적이 있다.
프로젝트 2025는 바이든의 기후변화 핵심 정책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폐기를 강력히 권고하지만, 실제로 의회가 해당 법을 폐지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공화당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개혁법을 뒤집으려다 실패했던 것은 한 번 입법화된 정책을 폐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절차적 어려움 외에도 IRA 혜택의 상당 부분이 공화당 우세 지역(red state)에 흘러들어가고 있어서 정치적으로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텍사스에서는 삼성전자가, 애리조나에서는 TSMC가 공장을 짓고 있으며, 사우스캐롤라이나·조지아·테네시주에서는 전기차 공장이 지어질 예정이다.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는 포퓰리스트인 트럼프가 이를 막는 데 자신의 정치적 자본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재선과 그가 꿈꾸는 화석연료를 통한 에너지 우위는 간신히 유지해 오고 있는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 협력을 무력화할 가능성이 크다. 유엔의 틀에서 이뤄지고 있는 파리협정은 물론, 주요 7개국(G7)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후클럽(climate club), 바이든 행정부 주도로 이뤄진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의 공급망·청정경제·공정경제 협정은 적어도 4년 동안은 유명무실하거나 논의가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 기후 평가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토머스 암스트롱은 2021년 1월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를 평가하면서 “다행히 그들은 정부를 운영하는 방법을 몰랐으며…사실 더 나쁠 수도 있었다”며 안도한 바 있다. 이제 트럼프는 4년 동안 대통령을 하였고, 정부를 운영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동시에 우리도 이전보다는 트럼프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그가 선택할 정책 방향이 무엇이 될지 파악하고 있다.
트럼프 2기가 실현되더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다행히 그들은 정부를 운영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며…사실 더 나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