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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기 솔브릿지 국제경영대학 교수고려대, 한국외국어대 경영학 박사, 전 IGM 세계경영연구원 전임교수, 전 성균관대 글로벌 MBA 스쿨 겸임교수, 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인사총괄임원
한준기 솔브릿지 국제경영대학 교수
고려대, 한국외국어대 경영학 박사, 전 IGM 세계경영연구원 전임교수, 전 성균관대 글로벌 MBA 스쿨 겸임교수, 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인사총괄임원

‘어·글·경’이란 무엇일까. 본래 글로벌 경영을 지향하지 않았지만 어찌하다 보니 글로벌 경영을 하는 기업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 인적자원관리(HR) 부문 채용 해법으로 어· 글·경이란 키워드가 심심치 않게 언급된다. 목표로 하지 않았던 글로벌 경영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 이는 우리가 피해 갈 수 없는 현실이요, 중소·중견·스타트업 기업의 구인난 해결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속도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식당이나 가사도우미 영역에서 외국인 노동자 고용은 오래전 보편화됐다. 지방의 농장 등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부족한 일손을 메꾸는 것도, 지방 제조 업체 생산 라인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자리를 지키는 것도 더 이상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런데 이제는 기업의 경영 지원 분야, 세일즈, 고객 관리, 연구개발(R&D) 등 소위 화이트칼라 자리도 외국인 노동자가 불가피한 ‘대체재’로 부상하고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이렇다. 우선 세계 최저 수준 출산율로 인한 인구 절벽으로 생산 가능 인구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의 젊은 구직자와 기업 사이에는 ‘미스 매칭’이 이뤄지고 있다. 서로 눈높이와 기대치가 다르다. 설상가상으로 통계 수치에 제대로 잡히지 않지만 ‘취준생(취업 준비생)’ 가운데는 무기력한 ‘취포자(취업 포기자)’가 늘어나고 있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직무 중심, 경력직 중심 채용으로 인재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상대적으로 중소기업 구인난은 더 악화됐다. 거기에 세계 무대에서 높아진 한국 위상과 위기의 지방대학 생존 전략으로 등장한 외국인 유학생의 적극적 유치가 맞물려 이전보다 더 많은 화이트칼라 외국인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국내로 계속 유입되고 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더라도 쉽사리 완성되지 않는 것이 글로벌 경영이다. 이 글로벌 경영에는 기업, 대학, 그리고 정부 등 세 개의 이해 관계자 그룹이 서로 연결돼 있다. 그런데 제대로 된 협업이 없다고 서로를 가리키며 원망하기에 앞서 자신들의 청사진을 먼저 다시 그려보고 현실적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작업이 선행돼야만 한다.

외국 유학생 취업 데이터 공시 의무화해야

먼저, 외국인 화이트칼라의 산실 역할을 해야 할 국내 대학을 살펴보자.

궁극적으로는 국내 대학이 외국인 유학생이 연착륙(soft landing)해서 돌아갈 때까지관리와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급격히 줄어든 학령인구로 인해 충원이 어려워진 국내 대학 신입생에 대한 대체재 정도 개념으로 외국인 유학생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자세다. 외국인 유학생의 취업이나 창업 등에 있어서 체계적인 교육 훈련 프로그램 제공이 필요하다. 공통의 프로그램이 전제돼야 하지만, 소수 정예 인력에 대한 별도 관리를 고민해 봐야 한다. 이들에게 환상을 심어줘서도 안 된다. 한국 문화 이해와 언어 마스터에 대한 그들의 책임도 냉정하게 강조해 줘야 한다. 한국 학생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유학생의 취업률, 창업 실적 등을 관리하고, 그 결과는 교육부를 통해 공시할 필요가 있다. 대학이 이들을 유치하는 데는 적극적이지만, 입학 후에 소홀해지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외국인 유학생의 취업과 창업 실적에 대한 현실적인 핵심 지표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외국 유학생 확보 위해 기업 유연성 필요

다음으로 외국인 유학생을 직접적으로 수용해야 할 국내 기업을 살펴보자. 무엇보다도 외국인 유학생 출신 화이트칼라는 괜찮은 백업 요원이요, ‘와일드카드’가 될 수 있다는 마인드로 전환해서 이들을 더 면밀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 역시 현실을 이해하고 이들에 대한 기대 수준을 조정해야 한다. 외국인 유학생을 받아들이기 위한 조직의 다양성과 수용성을 강화해야 한다. 조직 구성원의 글로벌 감각이나 외국 문화에 대한 이해 노력도 필요하다. 아직 국내에서 취업해 정착하기를 원하는 유학생은 많지만, 원어민 수준의 우리말을 구사하는 사람은 적다. 또 기업이 선호하는 미국이나 유럽 국적 학생을 중심으로 인력 풀을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유연성을 갖고 초기에는 중간 지점에서 타협점을 찾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병원 운영 정보 시스템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A사는 외국인 노동자가 회사에서 요구하는 언어 능력 요건을 갖추는 데 1년의 유예 기간을 부여했다. 충청권의 바이오 헬스 기업 B사는 지역 대학의 우수 외국인 인력을 그들의 해외 영업망에 정규직으로 투입해 활용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유망 인재를 대학 방문 행사를 통해 눈여겨 보고, 단기 인턴십 등의 기회를 통해 외국인 유학생을 인재로 확보하려는 노력이다.

외국인 유치 위한 정부 역할도 중요

정부 역할도 중요하다. 정부는 현실성 있는 정책이나 법령 개정, 지자체 프로그램 설계 촉진 등을 통해 기업과 대학이 좀 더 가까이 연결될 수 있는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정부는 최근 2027년까지 30만 명의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세계 10대 유학생 유치 강국이 되겠다는 비전을 밝힌 것이다. 2023년 기준 국내 외국인 유학생은 약 19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한국은 D10비자(구직비자)를 받아 구직 활동한 외국인의 E7비자(전문인력비자)로의 전환율은 10% 이하 수준이다. 국내에서 화이트칼라 직종에 취업하려면 E7비자가 필요하다. 정부가 F2R비자(지역 특화형 비자⋅해당 지역에서 5년간 근무한다는 조건으로 발급)를 도입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이것이 유학생과 지역 기업의 요구를 감안했을 때의 가장 현실적인 최적의 방안인지는 계속 고민을 해봐야 한다.

지난해 필자가 몸담고 있는 국제경영대학의 외국인 유학생을 위해 대학가에서 시도해 보지 않았던 ‘맞춤형’ 잡 페어를 진행했다. 수도권과 지역 소재 30개 경쟁력 있는 국내 및 다국적기업이 초청에 응했고 이 행사를 통해 10명의 학생이 국내외에 취업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필자도 깨우친 교훈이 있었다. 기꺼이 관심을 두고 외국인 유학생에게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국내 기업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또한, 약 30명의 정예 학생을 한 학기 동안 체계적으로 기업 연구를 시키고 기업 눈높이에서 훈련하고 준비시키면 기업이 만족하고 감동하는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결국 변해버린 노동시장 지형을 재인식하고 남다른 준비와 노력과 투자를 하니까 더딜지라도 성과는 나온다. 이제 이러한 ‘정말 다른 접근 방식’이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 정부와 대학 모두 전문 인력 충원과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제대로 해야 한다. 우수한 외국인 인력은 분명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영을 위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지구촌 슈퍼 파워 국가인 미국의 오늘을 이민자 출신의 제삼세계 수재들이 건설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도 어쩌면 그 옵션을 잘 발전시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준기 솔브릿지 국제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