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국의 반덤핑·상계관세 신규 조사 개시 건수가 많이 증가했다. 대선 정국을 틈타 더욱 강경한 보호주의 조치를 요구하는 미 산업계의 입김이 미국의 무역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3년 10월~2024년 5월 8개월 동안 미국의 반덤핑·상계관세 신규 조사는 반덤핑 46건, 상계관세 26건으로 총 72건 집계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첫해인 2021년 35건, 2022년 30건과 비교해 급증한 수치다. 미국의 반덤핑·상계관세 신규 조사 개시 건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16년 53건에서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 임기 첫해인 2017년 79건으로 증가했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 마지막 해인 2020년에는 119건으로 급격히 늘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 상무부는 지난해 10월 미국 알루미늄압출연합 등이 중국, 한국을 포함한 15개국산 알루미늄 압출재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청원하자 조사에 들어갔다. 바이든 정부가 세이프가드, 통상법 301조 등 잊혔던 낡은 보호무역 장치까지 꺼내 든 것. 세이프가드는 특정 상품의 수입이 급증해 현지 제조 업체가 피해를 봤을 경우 발동되는 긴급수입제한 조치다. 미국에서는 2001년 이후 사라졌다가 16년 만인 2017년 트럼프 행정부 때 수입 세탁기와 태양광 전지·모듈 등에 대해 조사가 재개된 바 있다. 필자는 미국의 이 같은 무역 제한 조치가 한국 등과의 전략적 동맹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있는 현대차 공장의 조업 모습. /블룸버그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있는 현대차 공장의 조업 모습. /블룸버그
앤 크루거 스탠퍼드대 석좌교수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전 세계은행 및 IMF 수석 부총재, 전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교수 사진 프로젝트신디케이트
앤 크루거 스탠퍼드대 석좌교수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전 세계은행 및 IMF 수석 부총재, 전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교수 사진 프로젝트신디케이트

한국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동맹국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가장 큰 무역 파트너 중 하나다. 특히 2012년 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이후중요성이 커졌다. 

실제로, 미국은 중국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로 큰 수출 시장이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은 현재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1조7000억달러(약 2360조1100억원)로 세계 14위, 아시아 4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지정학적 지형의 변화, 특히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한국의 경제 기적은 시간이 지날수록 위태로워지고 있다.

한국의 경제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이해하려면 한국전쟁 말기에 한국의 1인당 GDP가 가나의 40% 수준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3년간의 잔혹한 전투로 대부분의 인프라가 파괴된 한국은 천연자원도 거의 없고 저축률도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수출도 사실상 전무했다.

1950년대 중반까지, 해외 원조가 한국 수입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졌다. 해외 원조는 거의 전적으로 식량과 섬유 및 기타 필수품 확보에 사용되었고 투자 여력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 한국이 금융 및 무역자유화를 포함한 일련의 급진적인 경제개혁을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후 30년 동안 한국의 연간 GDP 성장률은 평균 10%에 육박했다.

한국, 심각한 인구·경제 문제에 직면

오늘날 한국은 무역에 크게 의존하며 번영하는 시장경제 국가다. 1960년에는 3%에 불과했던 GDP 대비 수출 비중이 2023년에는 44%를 차지했다. 2012~2022년에는 경상수지 흑자가 GDP 대비 평균 4.9%를 차지했지만 2023년에는 2.1%에 머물렀다. 또한 ② 올해 1인당 GDP는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1960년 일본의 1인당 GDP(구매력 평가 기준)가 508달러(약 70만5200원)였던 반면 한국은 158.3달러(약 21만9800원)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다.

확실히 한국은 심각한 인구학적, 경제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출산율은 여성 1인당 0.7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며, 세계 평균인 2.4명에 훨씬 못 미친다. 출산율을 2.1명까지 끌어올리지 못하거나 보다 개방적인 이민정책을 채택하지 않는다면 2100년에는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인구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부부가 더 많은 자녀를 갖도록 장려하는 프로그램에 2700억원 이상을 지출했다. 2050년까지 노동 가능 인구가 25%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에 걱정이 커진 기업들도 자체적인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은 직원들에게 신생아 한 명당 7만5000달러(약 1억원)의 보너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이 효과를 봤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험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정책 입안자에게 귀중한 교훈을 준다. 무엇보다도 충분한 의지와 올바른 경제정책만 있다면 극심한 빈곤조차도 빠른 경제성장과 생활 수준 향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없으며, 해외 원조와 개방형 무역 제도가 두 가지를 모두 달성하는 데 중요하다는 점이다.  

해외 원조는 경제 발전 지원 외에도 미국의 국가 안보 관련 이익을 증진시킨다. 미국의 지원은 한국을 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 강국이자 중요한 전략적 동맹국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 약 2만8000명의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으며,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은 한국 정부가 부담한다. 특히 한국은 2022년 GDP의 2.7%를 국방비로 지출해 대부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을 능가하면서 나토의 목표치인 2%를 초과 달성했다.

유감스럽게도 미국의 관세와 무역 제한 조치는 이 중요한 전략적 동맹을 약화시킬 수 있다. 한미 FTA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알루미늄, 철강, 반도체, 태양광 패널, 세탁기 등 한국의 주요 수출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했다. 또한 미국은 중국에 반도체와 칩 제조 장비를 수출하는 한국 기업에 대해 2차 제재를 가했다. 이러한 제재는 한국 기업에 악영향을 미쳐 코로나19 충격에서 회복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의 제조 업체들은 관세를 넘어 세계무역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접근 방식에 적응하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바이든 대통령의 ③ 인플레이션 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 Act)은 미국에서 생산한 전기자동차(EV)에 대해 대당 7500달러(약 104만1200원)의 세금 공제를 제공한다.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차량이나 배터리는 이 세금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한국의 전기차 및 배터리 제조 업체는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제약을 ‘배신’ 행위로 묘사한 한국고위 관리들의 비난에 대한 대응으로 바이든 행정부는 몇몇 한국 제조 업체의 중국 내 운영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2차 제재의 피해와 미국 무역정책을 둘러싼 기타 불확실성이 부분적으로 완화되었지만, 이로 인해 한국 기업은 투자 계획과 중국 사업 운영을 재평가하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조치가 아시아 파트너들과 관계를 강화해야 하는 시기에 미국의 경제 및 군사 협력을 오히려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국가 안보 이익을 보호하고 녹색 전환을 촉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요 동맹국에 해를 끼치지 않고 이러한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다. 

Tip

한국과 미국이 양국 간 무역 및 투자를 자유화하고 확대할 목적으로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이다. 또한 1989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의 보고서 ‘아·태 지역 국가들과의 FTA 체결에 대한 검토 보고서’에서는 미국에 바람직한 FTA 대상 국가로 싱가포르, 대한민국, 중화민국을 꼽으면서 한미 FTA 체결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2006년 2월 3일, 양국이 한미 FTA 협상 개시를 공식 선언한 후 2007년 4월 2일, 14개월간의 긴 협상을 마치고 최종 타결했다. 이후 2007년 5월 25일 협정문 내용이 공개됐다. 2011년 11월 22일 한미 FTA 비준안이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월 2024년 한국의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앞설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의 1인당 GDP가 일본을 추월하는 것은 IMF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IMF의 당시 전망치를 보면, 한국은 올해 1인당 GDP 3만4653달러로 조사 대상국 가운데 32위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일본은 3만4554달러로 한 단계 아래인 33위에 머물 것으로 관측됐다. 구매력을 기준으로 한 1인당 GDP는 2017년부터 한국이 이미 일본을 앞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구매력평가(PPP·Purchasing-Power Parity)를 기준으로 한 한국의 1인당 GDP는 2017년 기준 4만1001달러를 기록했다. 일본은 4만827달러였다. PPP를 기준으로 한 GDP는 물가와 통화가치를 반영해 산출한다.

2022년 8월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법안. 기후변화 대응 및 의료보험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인플레이션이 가팔라진 상황에서 미국 국민 생활 안정이 명분으로 작용했다. IRA는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세액공제 적용 기간을 연장하거나 항목을 신설하는 등 세제 혜택의 범위를 확대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태양광 패널, 전기차, 배터리 등에서 중국의 ‘기술 굴기’를 막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 반드시 미국에서 생산해야 하고, 중국산 핵심 광물과 부품을 사용하지 않아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IRA는 한국 자동차·배터리 기업에 위기이자 기회다. IRA는 미국 및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된 핵심 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해 만든 배터리를 탑재하고, 북미 지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세제 혜택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배터리 업체와 전기차 업체는 아직 중국산 원료와 소재를 사용하고 있어 대체 공급망을 빨리 찾아야 하는 실정이다.

앤 크루거 스탠퍼드대 석좌교수

정리=이용성 기자

정리=이수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