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중동 지역의 정세마저 불안정해지면서 지정학 리스크가 재부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2022년 2월 이후 2년 5개월째 지속되고 있고,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헤즈볼라와 이란 등 무장 단체와 인근 국가로 전이되는 양상이다. 결국,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안정화되던 국제 원자재 가격과 글로벌 공급망이 다시 불안정해지면서 세계 경기 회복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배럴당 70달러대로 안정화되던 국제 유가는 80달러대를 훌쩍 넘어 버렸고, 천연가스 가격도 올해 들어서만 50% 이상 상승하는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단기 급등세다. 글로벌 공급망 압력 지수와 글로벌 경제정책 불확실성 지수도 반등하면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현상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세계는 물론 우리나라도 인플레이션 현상의 장기화, 통화정책 전환 지연, 금융시장 불안정, 경기 회복력 약화 등과 같은 부정적인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리스크가 급부상해 혹시라도 우리 경제가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까 염려해야 할 지경이다. 미국 정부의 자국 물자 우선 구매 정책인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이 강화될 경우를 살펴보자. 배터리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부문은 이미 시행 중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국내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미국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어서 부연 필요성이 크지 않지만, 반도체 부문은 바이 아메리칸 정책뿐 아니라 미·중 갈등 심화로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더군다나 국내 수출 1위 산업으로 외수 회복을 견인하면서 국내 경기 버팀목이 되고 있는 것이 반도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염려된다. 전쟁 등으로 반사이익을 얻으며 급성장하고 있는 방위산업도 긴장해야 한다. 물론, 트럼프 전 대통령 재선 시 미국 국방비 증액 등으로 시장 규모가 확대되면서 국내 방위산업 진출 기회도 증가할 가능성은 있다. 다만, 미국 방위산업 재건 추진에 따르는 한미 협력 약화, 바이 아메리칸 정책 강화와 우크라이나 지원 축소 또는 중단에 따르는 수출 기회 약화 등과 같은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더군다나 미국의 우방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증대 요구가 강해질 경우, 각국의 무기 수입 예산 축소가 국내 방위산업 수출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한 달러(Strong Dollar) 선호 현상에도 주의해야 한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부담 완화, 통화정책 운용 효율화, 투자 유입 가속에 따르는 금융시장 활황 및 경기 확장세 지속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정반대다. 당장 원화 약세와 물가 불안 및 고금리 현상 장기화로 인한 금융시장 리스크 확대와 경기 회복력 약화 우려가 커질 수 있고, 국내 기업이나 개인의 미국에 대한 투자 유출 현상 가속화 가능성도 있는 등 걱정거리가 한둘이 아니다. 지정학 리스크는 언제 끝날지 모를 일이고, 비록 많은 변수가 남아 있다고는 하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큰 만큼 시나리오별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임은 틀림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