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이하 90년대)에 혜성처럼 등장해 지금까지 패션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올 타임 아이콘, 케이트 모스. ‘제니 스니커즈’라 불리는 아디다스 가젤과 플랫 슈즈, 패션 아이템이 된 레인 부츠 등 수많은 유행의 원조가 케이트 모스다.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케이트 모스의 90년대 스타일은 지금도 수많은 디자이너, 아티스트와 인플루언서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열악한 신체 조건 극복한 카리스마
케이트 모스는 이름 그 자체가 스타일이며 트렌드다. 패션의 영역에서 영국 출신 슈퍼 모델 케이트 모스만큼 90년대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얼굴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케이트 모스는 모델로서 신체 조건이 열악하다. 모델로서는 작은 167㎝의 키, 약간 사시를 띤 눈,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주근깨, 안짱다리를 지녔지만, 놀랍게도 남다른 카리스마와 독특한 분위기로 그녀의 모든 단점은 오히려 다른 모델과 차별화되는 그녀만의 개성이 됐다.
케이트 모스는 슈퍼 모델의 시대를 연 신디 크로퍼드, 린다 에반젤리스타, 나오미 캠벨 등이 지닌 타고난 유전자의 비현실적인 모델의 신체 조건을 반전시켰다. 큰 키와 쭉 뻗은 다리, 글래머러스한 몸매의 이전 모델들과 달리, 케이트 모스는 젠더리스의 모호한 매력을 발산했다. 깡마른 몸매에 주근깨를 그대로 드러내는 화장기 없는 얼굴이 패션 화보의 ‘쿨’한 콘셉트로 퍼져 나갔고, 중성적인 이미지의 깡마른 모델들이 패션 메인 스트림에서 환영받기 시작했다.
1988년 케이트 모스는 바하마로 가족 휴가를 갔다가 영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머문 뉴욕 JFK 국제공항에서 캐스팅됐다. 모델 에이전시 스톰의 창립자인 사라 듀카스의 눈에 띄어 데뷔했다. 그때 그녀는 겨우 14세였다. 그리고 1992년 18세가 된 그녀는 마크 월버그와 함께 캘빈 클라인 속옷 광고에 캐스팅됐다. 상의를 탈의한 채 언더웨어와 청바지만 입고 마크 월버그와 함께 포즈를 취한 흑백 광고는 전 세계 패션 스트리트와 패션지 광고를 휩쓸며 케이트 모스 열풍을 일으켰다. 세기의 전설적인 모델이자 슈퍼 아이콘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케이트 모스의 광고 이후, 남성 언더웨어처럼 보이는 캘빈 클라인의 젠더리스 언더웨어와 데님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흥행을 일으켰다. 그때부터 케이트 모스의 모든 스타일은 바로 90년대 트렌드가 됐다. 브래지어 없이 깡마른 몸에 툭 걸쳐 입는 미니멀한 슬립드레스, 크롭 톱(cropped top·배꼽티)과 심플한 청바지의 매치, 삭스와 메리제인 슈즈의 매치, 글래디에이터 샌들(gladiator san-dal·고대 검투사가 신던 스타일의 샌들) 등이다. 지금 그대로 패션 스트리트에서 입어도 세련된 스타일이다. 케이트 모스로부터 시작된 유행은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헤로인 시크’의 창시자
특히 케이트 모스만의 자유로운 패션 감각을 통해 하이 패션 트렌드로 거듭난 아이템은 스니커즈와 어그 부츠, 레인 부츠다. 1990년 케이트 모스는 16세였을 때 회색 슈트에 흰 티셔츠와 아디다스 가젤을 매치했다. 지금 블랙핑크 제니는 아디다스 모델로서, 아디다스의 대표 라인인 가젤의 다양한 스타일링을 일상과 공식 석상에서 즐기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아디다스 가젤은 ‘제니 스니커즈’라는 닉네임을 지니게 됐다. 그러나 아디다스 가젤을 패션계에 입문시킨 원조는 케이트 모스다. 슈트부터 슬립 드레스 등 당시 스니커즈와 매치가 금기시됐던 패션 아이템들과 아디다스 가젤을 스타일링했다.
케이트 모스의 파격적인 스타일링은 패션계의 아웃사이더, 못난이 슈즈라 불리던 어그와 레인 부츠를 하이 패션계의 트렌드로 점프시켰다. 케이트 모스는 진흙탕 속에서 펼쳐지는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록 페스티벌에 헌터(Hunter)의 검정 웰링턴 부츠(Wel-lington Boots·영국 웰링턴 공작 이름에서 유래한 고무 작업 장화)를 신고 나타났는데, 이 사진이 전 세계에 퍼지며 헌터의 고무 소재 레인 부츠는 순식간에 핫 아이템으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비 오는 날 어린아이들이 신거나 가드닝이나 흙 위에서 작업할 때 신는다고 여겼던 고무장화에 럭셔리 패션 하우스들의 로고가 찍히기 시작했다.
또한 케이트 모스는 ‘헤로인 시크(Heroin Chic)’의 창조자다. 중성적인 깡마른 몸, 광대뼈가 나와 푹 파인 볼, 검은 스모키 아이, 흐트러진 머리, 공허한 눈동자와 무심한 표정의 퇴폐미로 90년대 패션 화보를 점령했다. 헤로인 시크의 이미지처럼 사생활 논란도 많았다. 조니 뎁과 연인 관계를 마감한 후, 케이트 모스는 담배를 물고 살다시피 하며 파티에 빠져 지냈고, 마약 스캔들로 잠시 패션계에서 퇴출당하기도 했다.
수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케이트 모스는 모델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사업가이자 모델로서, 패션 하우스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레전드 모델로 사랑받고 있다. 그녀는 딸 릴라 그레이스 모스의 모델 활동을 위해 직접 모델 에이전시를 시작했다. 최근에는 딸과 함께 펜디의 피카부 백 캠페인에 등장하기도 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아온, 인생 자체가 패션 필름인 케이트 모스. 패션 트렌드의 시계가 90년대에 맞춰져 있는 지금, 케이트 모스의 레전드 스타일이 다시 추앙받고 있다. 케이트 모스는 90년대 패션의 시작이자 끝이며, 또한 영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