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겨울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어두웠던 탓에 내장돼 있던 플래시가 자동으로 터졌다. 사진을 인화해 보니 밤하늘의 눈송이가 작은 하얀 공처럼 담겨 있었다. 내가 직접 본 눈 내리는 광경과 사뭇 다르게 묘사된 장면이었다.
이는 플래시의 강한 빛이 눈송이에 반사돼 카메라 렌즈로 돌아온 결과였다. 배경 또는 더 멀리 있는 물체에 비해 카메라 가까이에 있던 눈송이는 더 많은 양의 빛을 받고 이를 반사했다. 그리고 카메라 렌즈는 눈송이가 아닌 더 먼 장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에, 눈송이는 초점이 맞춰지지 않은 채 흐릿하게 담겼다. 과다 노출과 흐림 현상이 눈송이가 실제보다 더 크고 둥글게 나타나도록 한 것이다.
요시노리 미즈타니(Yoshinori Mizutani)의 ‘유수리카(Yusurika, amana·2015)’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눈 오는 날 플래시를 터트려 찍은 사진을 떠올리며, 사진에 무수한 하얀 점을 눈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겨울이라기엔 나뭇가지에 초록 잎이 가득했고 들판도 푸르렀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 사진이 겨울이 아닌 여름에 촬영되었다는 점 그리고 하얀 공 같은 존재는 눈이 아니라 유수리카라는 곤충이라는 점이었다.
유수리카는 파리목 깔따구과 곤충으로, 모기를 닮았지만, 모기와 달리 인간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강이나 연못 같은 담수 지역에 무리 지어 서식하며 날아다니는 것이 특징이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태어나 자연을 가까이하며 자란 미즈타니는 대도시인 도쿄로 이사해 살면서도 도쿄의 자연을 계속해서 탐구했다. 그러던 중 강가에 무리 지어 서식하며 날아다니는 곤충 유수리카를 발견했다.
“자연은 항상 내 어린 시절의 일부였다. 산에 둘러싸여 있고, 나무에는 어린잎과 꽃이 피고, 개울 주변에는 반딧불이가 있고, 논 위로는 붉은 잠자리가 날고, 눈이 내리면 은빛 세상이 되는 곳, 풍부한 자연이 있는 곳, 바로 내가 자란 곳이다. 열여덟 살 때 도쿄로 이사했고, 그 이후로 거의 10년 동안 진심으로 자연을 찾았다. 공원과 강을 찾아다녔다. 어쩌면 나는 자연을 마주하면서 어린 시절의 풍경을 무의식적으로 보았을지도 모른다.”


미즈타니는 유수리카가 보이는 풍경을 플래시를 사용해 개성 있는 시각적 콘셉트로 풀어낸다. 플래시를 터트려 찍은 이 시리즈에서 유수리카는 하얀 작은 공처럼 표현된다. 이는 눈이 내리는 겨울 풍경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여름의 푸르름과 어우러져 한 장의 사진 속에 독특한 대비를 이룬다. 푸르른 여름에 내리는 하얀 눈처럼 도시가 비현실적이고 마법 같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카메라 플래시를 반사한 유수리카는 작은 흰 빛의 공으로 변하고, 자연 세계에 존재하는 요정처럼 환상적인 무언가로 변신한다.”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현상, 즉 처음 플래시를 터트려 눈을 찍은 경우나 의도를 통해 표현된 장면, 즉 미즈타니가 플래시를 사용해 유수리카를 찍은 경우 모두 종종 우리의 인식을 넘어서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눈 내리는 광경이나 날아다니는 작은 곤충을 바라보는 경험과는 다르다. 두 경우 모두 우리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며, 오로지 사진으로만 표현되는 장면이다. 이는 카메라의 특성과 빛의 물리적인 반사 효과에 의해 발생하는 독특한 결과물인 것이다.
책은 유수리카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장면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도시에서 발견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함께 담겨 있다. 미즈타니는 작은 거울을 손에 들고, 거울에 비친 머리 위 나무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그가 찍은 나무는 도쿄가 아닌 어느 이국적인 섬의 나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생경하다.
미즈타니는 도쿄라는 대도시에서 계속해서 자연의 존재를 기억하고, 경이로움을 발견하고자 한다. “나는 자연이 하는 말을 듣고 이를 사진으로 포착한다. 앞으로도 나는 자연 속에서 자연의 말을 찾을 것이다. 이 작업에 자연으로부터 얻은 순수한 감정을 담았다.” 도시 한가운데서도 자연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전달한다.
미즈타니는 또한 그의 작품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한다. 대도시인 도쿄에 살면서도 그는 어린 시절 자연에서 보낸 시간을 되새기며, 도시의 자연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기록한다. 그의 사진에서 유수리카는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기억과 자연에 대한 동경을 담은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