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복 출시는 ‘송지오(SONGZIO)’ 의류의 아방가르드(혁신적인 예술 경향)한 디자인 한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남성복과 여성복 디자인이 상호작용하고 시너지를 내면서 디자인적인 발전을 만들 것이다.”
패션 브랜드 송지오를 만든 송지오 ‘송지오인터내셔널’ 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여성복 출시 의미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송 회장은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파리 패션위크’에서 2025년 SS(봄⋅여름) 시즌에 출시할 여성복을 최초로 공개했다. 송 회장은 여성복 디자이너로 처음 패션 업계에 입문했지만, 1993년 브랜드 송지오를 론칭하면서 줄곧 남성복만 만들었다. 여성복을 디자인한 건 브랜드 론칭 이후 31년 만이다. 여성복 추가로 종합 패션 회사로 변모 중인 송지오는 10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건물을 통째로 매장으로 쓰는 단독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할 예정이다. 국내 남성 디자이너 중 파리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단독 매장을 여는 건 송 회장이 최초다. 송지오는 2006년부터 세계 4대 패션쇼 중 하나인 파리 패션위크에 꾸준히 참가하며 글로벌 무대에서 영향력을 키웠다. 송지오는 프랑스 파리 프렝탕, 홍콩 하비 니콜스 같은 세계 유명 백화점에 입점하는 등 해외 판로를 넓히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여성복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다던데.
“디자인 공부를 하면서 처음에 목표를 여성복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남자이고 남성복을 접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남성복은 아주 자연스럽게 나의 일상이었다. 내가 남성복을 만들게 된 이유다.”
남성복과 여성복은 어떤 차이가 있나.
“여성복은 상당히 창의적인 디자인이 필요한 영역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창의적인 디자인적 색채가 여성복에서 더 풍부하다고 생각한다. 여성복은 작품 세계의 한계가 남성복보다 넓고 크다. 그래서 여성복을 디자인하는 것은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여성복은 디자인할 때 감성적인 부분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10월 파리에 단독 매장을 열고, 내년에는 여성복도 출시할 예정이다. 다음 행보는 파리 의상조합 가입이 아닌가.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같은 명품 브랜드사로 구성된 파리 의상조합 정회원으로 가입하면 럭셔리 명품 브랜드로 인정받는다던데.
“분명 (파리의상조합에) 가입한다면 장점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파리의상조합 가입에 대한 생각보다는 한국의 의상조합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하다. 파리뿐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 일본, 한국 등 각국의 의상조합이 서로 경쟁력을 키우고 발전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옷을 만들 때 블랙(검정) 색상을 주로 써서 '송지오는 블랙'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블랙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블랙은 사람을 빛나게 해주는 색상이다. 밤하늘의 별이 어둠 속에서 빛나듯이 모든 것을 빛나게 해주는 게 블랙이다. 내 옷에 블랙을 많이 쓰는 이유다. 지난 6월 파리 패션위크에서 선보인 25 SS컬렉션 주제도 ‘빛나는 별(BRIGHT STAR)’이었다. 별은 어둠 속에서 가장 빛이 난다. 여성복에서도 블랙이 메인 색상이 될 것이다.”
자수가 들어간 옷은 송지오의 시그니처 아이템이다. 판매가 시작되면 바로 품절되던데.
“한땀 한땀 자수가 들어가다 보니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 프린트로 찍어내는 방식으로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면 생산비도 적게 들고 여러 가지 장점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옷을 만들 때 진정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디자이너 브랜드 정체성은 진정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나는 직원과 회식할 때도 ‘우리는 크리에이터(creator)’라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30년 넘게 디자인하면서 슬럼프는 없었나.
“계속 (트렌드는) 바뀌는데 백지에서 다시 새롭게 뭔가를 찾아내고 디자인해 나가는 그 시작점이, 그때가 제일 힘들다. 패션쇼를 할 때마다 겪는 일이다. 나는 이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이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오랜 세월 디자인했지만 좀 나태해지거나 게을러질 수도 있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항상 자신을 채찍질한다.”
패션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즐기고 기쁨을 얻는 것이 패션의 본질이다. 패션을 통해 인생도 훨씬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 럭셔리 명품 브랜드의 본질도 화려함이나 고급스러움이 아니라, 기쁨이다.”
한국의 역사를 통틀어서 옷이 가장 멋있었던 시대는.
“조선시대다. 왕족이나 사대부 양반이 입던 화려한 한복이 멋스러웠던 것 같다. 당시 양반 자제도 어릴 때 대부분 색동옷을 입고 자랐다. 조선의 도령은 한국의 프린스(왕자)를 상징하는 멋진 아이콘이다. 내가 남성복을 만들 때 도령이 입을 옷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회장보다는 선생님으로 불리고 싶다고.
“나는 디자이너다. 회장님보다는 선생님으로 불리는 게 더 좋다.”
송지오 폭풍 성장 이끈 90년대생 송재우 대표
아버지는 디자인, 아들은 회사 경영 '투 트랙' 체제
패션 브랜드 송지오의 변화가 시작된 건 2018년이었다. 송지오 회장은 2018년 아들인 송재우(30) 대표를 송지오인터내셔널 최고경영자(CEO)로 임명, 회사 경영을 맡기고 자신은 디자인 업무에 집중했다. 컬럼비아대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송 대표가 CEO가 된 나이는 24세였다. 송 대표가 취임한 2018년 회사 순 매출(총매출액에서 환입품액 등을 공제한 값)은 50억원에 불과했지만 2023년 순 매출은 600억원으로 12배 증가했다. 송 대표는 ①브랜드 세분화 ② 온·오프라인 매장 확대 ③해외 직접 판매 확대 ④컬래버레이션(협업) 전략을 통해 사업 혁신을 주도했다.
우선 송 대표는 송지오옴므, 지제로, 송지오로 브랜드를 세분화했다. 패션쇼용으로 만든 디자이너 옷을 좀 더 대중적인 생활복으로 변화시킨 송지오옴므를 시작으로, 20~30대 젊은 층을 겨냥한 지제로를 론칭했다. 회사 사정으로 매각했던 중가 브랜드 ‘지오송지오’를 2022년 20년 만에 인수하면서 중⋅고가를 아우르는 4개 브랜드 체제를 구축했다.
송 대표는 또 2018년 9개에 불과했던 국내 오프라인 매장을 2024년 42개로 늘렸다. 2020년 온라인 판매를 시작해 현재 파페치 등 9개 온라인몰에서 옷을 판매 중이다. 송 대표는 최근 자사 홈페이지에서만 판매하는 온라인 전용 상품을 기획하기도 했다.
송 대표는 해외 패션 전문점(편집숍)에 홀세일(도매) 형태로 제품을 입점하던 기존 사업 방식에서 벗어나 해외 판로 직접 확대를 위해 프랑스 파리 프렝탕,홍콩 하비 니콜스 같은 해외 유명 백화점 입점을 성사시켰다. 10월에는 프랑스 파리에 단독 매장을 오픈한다. 디즈니, 워너 브러더스 등과 협업을 성사시킨 것도 송 대표의 실적이다. 송 대표는 2021년 팀버튼, 2022년 ‘토이스토리’와 스누피, 2023년 디즈니(100주년 기념)와 협업 제품을 출시했다. 올해는 워너 브러더스와 협업한 제품을 출시해 인기를 끌었다. 송 대표는 2023년 스포츠 브랜드 리복과 협업해 의류 상품을 내놓은 데 이어, 7월 31일 슈즈 협업 제품을 출시했다.
송 대표는 “과거에 회사가 아트적인 성숙도를 높이는 부분에 집중했다면 내가 CEO에 취임한 이후에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상업화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상업적인) 협업 추진뿐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직하면서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하고, 대중에게 보다 친숙한 옷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