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가상자산 산업에 매우 진지한 것 같다. 일본을 대표하는 많은 대기업이 블록체인 관련 행사에 참여하는데, 관계자들 명함에 웹 3.0(블록체인 이용 탈중앙화 웹서비스)이라고 적혀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반면 한국 대기업 명함에서 웹 3.0 관련 직함을 거의 보지 못했다. 블록체인 비즈니스 에너지가 일본에 더 많다는 걸 느낀다.”

한국을 대표하는 블록체인 투자사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는 7월 24일 일본 도쿄 핫포엔(八芳園)에서 열린 ‘블록체인 리더스 서밋 도쿄 2024’에서 이같이 말했다. 한국의 많은 기업이 가상자산 산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일본 정도의 적극성은 없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 블록체인 행사에 참여하면 국내 기업은 기회가 있을지 탐색하는 쪽에 그친다”며 “일본은 직접 담당하는 사업부가 존재하고 성과를 내는 책임자가 (행사에)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러한 관심의 차이는 산업에 대한 규제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야 모두 가상자산 공약을 냈지만, 아직 기업이 가상자산 계좌 신설조차 하지 못해 관련 사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반면 일본은 2021년 기시다 후미오 총리 취임 이후 경제산업성 산하에 웹 3.0 전담 사무처를 신설하고, ‘웹 3.0 백서’를 발행하며 체제 전환을 선언했다. 기시다 총리는 블록체인 행사에 여러 차례 참여해 웹 3.0이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라고 연설하는 등 업계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 IT·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했던 것을 반면교사 삼아 미래 새로운 혁신 플랫폼인 웹 3.0은꼭 선점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 가상자산과 관련한 유효한 정책이 만들어지지 못했다”며 “블록체인 산업을 왜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조차 마련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김 대표와 일문일답.

김서준 해시드 대표 포항공대 컴퓨터공학, 현 교육부 미래교육위원회 위원,  전 국회 4차 산업혁명 특별위원회 자문위원, 
전 소프트뱅크벤처스 벤처파트너 사진 해시드
김서준 해시드 대표
포항공대 컴퓨터공학, 현 교육부 미래교육위원회 위원, 전 국회 4차 산업혁명 특별위원회 자문위원, 전 소프트뱅크벤처스 벤처파트너 사진 해시드

블록체인 리더스 서밋 행사를 개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블록체인이라는 산업이 오픈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이기 때문에 회사끼리 협업이 손쉽게 일어난다. 반면 전통 산업의 경우 행사장에서 만난 관계자끼리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지만, 비즈니스로 이어지는 것은 극히 드물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한국과 일본 회사가 블록체인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비즈니스로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본 기업을 만나보니 어떤가.

“한국의 많은 기업은 조심스럽게 테스트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에 비해 행사에 참여한 일본 기업은 이미 명함에 웹 3.0이라고 적혀 있다. 그래서 행사에 임하는 태도 자체가 학구적인 데다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내기 위한 에너지가 훨씬 더 많다는 걸 느낀다. 한국 기업은 호기심 때문에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면, 일본은 비즈니스 기회를 찾기 위한 중요한 업무의 일환으로 참여한다는 느낌이다.”

적극성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인가.

“정부의 규제가 크다. 블록체인 개발자는 가이드라인이 불분명한 상태를 싫어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도 되는지 명확하지 않다. 자신들의 활동이 사후에 법적·세무적으로 문제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확실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자본도 투자될 수 있고 열정 있는 창업자가 자신 있게 사업을 한다.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방향성을 가르쳐줬지만, 한국은 아직 아쉬운 부분이 많다. 한국이 만든 규제도 투자자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례로 한국의 금융기관이 발행하는 스테이블 코인이 요원한데, 일본은 미쓰비시은행 등 많은 기관이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위한 컨소시엄을 만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자 시절 가상자산 관련 공약을 냈고, 지난 총선 때도 여야 가릴 것 없이 가상자산 공약을 발표했다. 아직 부족하다는 뜻인가.

“너무 더디다. 한국 기업은 현재 가상자산 계좌를 열 수 없다. 기업이 가상자산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 놓은 것이다. 기관투자자 활동도 막혀 있어 가상자산을 펀드에 담을 수 없다. 일본은 다 열려있다. 한국과 비교해 제도적으로 더 개방된 것이다. 블록체인이 만드는 경제 생태계는 국경이 없다. 현재넷플릭스·유튜브에 콘텐츠 산업이 집중되는 것처럼 금융 산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한국이 큰 산업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본다.”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기업이 가상자산 관련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계좌를 열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기관투자자가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가상자산 시장이 투기적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주식시장에서 기관을 빼고 개미만 활동하라고 하면 얼마나 투기적이겠나. 기관투자자는 책임감을 가지고 활동하면서 시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관투자자 활동을 막아 놓고 가상자산 시장이 투기적이라고 이야기해선 안 된다. 기관투자자 활동이 가능한 미국·일본은 비트코인 등 ‘블루칩’ 거래량이 상위권이지만, 한국은 시가총액이 작은 토큰을 중심으로 투기적 거래가 일어나고 있다. 기관투자자 활동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여야의 공약에 있지만, 실행이 늦어지고 있는 게 안타깝다.”

여전히 가상자산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많은 사람이 비트코인은 이미 증명됐다고 이야기한다. 올해 2분기 스테이블 코인 거래량이 비자 결제액보다 많아졌다. 페이팔도 스테이블 코인을 자체적으로 발행해 가상자산 산업군에 들어가 있다. 결제 영역에서는 이미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일반 대중이 가상자산 효과를 느낄 수 있는 분야가 게임 등 콘텐츠인데, 조만간 증명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한국의 강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일본에서 블록체인과 궁합이 잘 맞는 분야는 게임과 만화, 애니메이션, 엔터테인먼트 등이다. 이러한 지식재산권(IP)은 글로벌하게 디지털 자산화하기 좋다. 반면 한국은 일본보다 개발 역량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빠른 인터넷망을 갖추고 스마트폰 보급률도 높다. 가상 세계에 가장 빨리 접근해 축적한 경험을 봤을 때 많은 혁신적인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게임 회사가 이미 웹 3.0 콘텐츠를 만들며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협력 포인트가 있다면.

“벤처캐피털(VC) 회사가 일본 시장에 투자하기 위한 움직임이 많은 상황이다. 일본에서 새로운 스타트업 붐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시장은 이미 포화됐다.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 수가 일본이 더 적다. 그만큼 일본 시장에 많은 기회가 남아있다는 뜻이다. 시장 규모도 한국보다 훨씬 커 한국 기업이 진출하기에 용이하다. 일본에서 구축된 다양한 IP를 통해 블록체인화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

“일본 시장의 어려운 점 중 하나가 언어 장벽이라고 생각한다. 언어와 지역적 특성 때문에 글로벌 블록체인 커뮤니티와 동반 성장하기보다는 고립된 채 성장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 해시드는 글로벌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어 전 세계에 일본이라는 큰 시장을 소개해 줄 수 있다. 이런 기회를 많이 만들어보려고 계획하고 있다.” 

도쿄(일본)=이학준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