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예가7월 30일 이란 테헤란 의회에서 열린 신임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서 의원들에게 둘러싸여 승리의 손짓을 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예가7월 30일 이란 테헤란 의회에서 열린 신임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서 의원들에게 둘러싸여 승리의 손짓을 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최고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62) 정치국장이 살해됐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10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하마스 일인자가 암살되면서 5차 중동전쟁 발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국 수도 한복판에서 ‘귀빈’이 살해된 이란은 이스라엘에 보복을 천명했고, 이스라엘은 “위협에 단호히 맞서겠다”며 대응 의지를 드러냈다. 하마스는 지난해 10월 이스라엘 기습(알아크사 홍수 작전)을 주도한 강경파 인물 야히야 신와르(62)를 새 지도자로 선출했고, 가자지구에는 연일 이스라엘군의 공세가 이어져 수십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숨졌다.

헤즈볼라 수장 암살 6시간 만의 하마스 타격

로이터, 알자지라 등 외신에 따르면 하마스와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7월 31일(이하 현지시각) 성명을 내고 하니예가 전날(7월 30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됐다고 밝혔다. 성명에 따르면 하니예는 같은 날 열린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테헤란을 찾았다. 그는 취임식 후 숙소에 머무르던 중 이스라엘군의 급습을 받아 살해됐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헤즈볼라(레바논 무장 정파)의 군사 지도자 푸아드 슈르크가 이스라엘군에 암살된 지 6시간여 만이었다. 이날 취임식에는 하마스뿐만 아니라 헤즈볼라, 후티(예멘 반군) 등 중동의 친(親)이란 무장 세력의 핵심 관계자가 다수 참석했다. 하마스는 “다양한 대가를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며 이스라엘을 향한 보복을 예고했다.

하마스는 앞서 하니예의 가족도 이스라엘군의 표적이 됐다고 주장했다. 하마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최근까지 하니예의 아들 3명, 손주 4명을 비롯해 하니예 일가 60여 명이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지난 6월에도 누나와 조카 등 가족 10명을 이스라엘 공습으로 잃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1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이스마일 하니예 하마스 정치국장 장례식에서 기도하는 모습. 사진 UPI연합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1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이스마일 하니예 하마스 정치국장 장례식에서 기도하는 모습. 사진 UPI연합

하마스, 새 수장에 '1순위 표적' 신와르 선출

하마스는 하니예 사망 6일 만인 8월 6일, 야히야 신와르를 새 정치국장으로 선출했다. 신와르는 하니예보다 강경하고 폭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7년부터 하니예의 뒤를 이어 가자지구를 이끌어 왔다. 이스라엘의 1순위 표적으로,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을 설계하고 주도했다. 당시 하마스는 약 1200명을 살해하고 250명을 납치했다. 이스라엘군은 신와르에 대해 현상금 40만달러(약 5억5308만원)를 내걸었으나. 그간 그를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외신에 따르면 신와르는 1962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난민촌에서 태어났다. 가자 이슬람대에서 아랍어를 전공했고, 1987년 인티파다(intifada·팔레스타인 주민의 반이스라엘 투쟁)에 참여, 하마스 창립에 참여했다. 신와르는 당시 이스라엘에 협력한 팔레스타인인을 색출해 무참히 살해해 ‘도살자’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이스라엘 법원에서 종신형을 네 번 선고받아 이스라엘 교도소에서 22년간 복역했는데, 2011년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포로와 수감자를 교환하면서 풀려났다. 이후 그는 하마스로 돌아와 군사 조직을 이끌었다. 미국은 그를 ‘손에 끔찍하게 많은 피를 묻힌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하고 있다.

2021년 신와르 암살을 시도했던 이스라엘은 신야르가 새 정치국장으로 선출되자 즉각 공격 의지를 밝혔다.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8월 7일 “우리는 그(신야르)를 찾아내 공격할 것이다. 하마스가 다시 한 번 정치국 수장을 교체하게 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와르가 어제 새로운 직함을 받았지만, 그가 지난해해 10월 7일에 일어난 일의 계획과 시행에 연루된 살인자라는 사실을 지울 수는 없다. 우리는 그들을 공격하고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마스의 새 정치국장으로 선출된 야히야 신와르. 사진 EPA연합
하마스의 새 정치국장으로 선출된 야히야 신와르. 사진 EPA연합

전운 감도는 이란·이스라엘

안방에서 손님을 잃은 이란은 이스라엘과 전면전도 불사하고 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하니예 피살 소식이 전해지자,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최고국가안보회의(SNSC)에서 이스라엘 공격과 이스라엘· 미국의 공격에 대비하는 방어책을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 그는 앞서 “공화국 영토에서 발생한 쓰라린 사건과 관련해 그의 핏값을 치르는 것을 우리 의무로 여겨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우리는 방어와 공격 모두 준비돼 있다. 우리는 적을 공격하고 우리 자신을 지킬 것” 이라며 국민에게 침착함을 유지할 것을 당부했다. 이스라엘 당국은 공습경보 시스템을 확대하는 등 유사시를 대비하고 있다. 

미국은 부랴부랴 중재에 나서고 있다. 미국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미국은 중동 동맹국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공격을 재고해달라”며 이란을 설득하고있다. 이란의 신임 대통령은 보복 공격을 지시한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에게 “이스라엘을 공격하면 보복 공격으로 이란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이 태도 변화를 보이는 것과 달리, 하마스는 이전보다 더욱 강경한 노선을 취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휴전협정에 어려움이 커질 전망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앞선 최고 지도자였던 하니예는 겉으로는 강경한 발언을 일삼았지만 하마스 내부에서는 ‘실용적인 온건파’로 분류된다. 그는 이스라엘과 휴전협정을 이끈 것은 물론, 하마스 외교의 최전방에 서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보다 더 강경한 기조인 신와르가 휴전을 논의해야 한다. 이스라엘도 최근 연달아 가자지구 공습을 이어가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최근 “도움이 절실한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을 도울 휴전을 추진할지에 관한 결정은 그(신와르)에게 달려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AFP에 따르면 가자지구에선 10개월여 동안 4만 명에 달하는 주민이 사망했다. 사망자 10명 중 7명은 어린이와 여성으로 추정된다. WAFA통신에 따르면 하니예 사망 후, 이스라엘은 3일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공격해 10여 명이 사망했다. 4일에는 가자시티 학교 2곳과 피란민촌을 포격해 44명 이상이 숨졌고, 8일에도 가자지구 전역에서 40명 이상이 숨졌다. 

Plus Point

암살된 하니예는 누구?
난민 출신, 하마스 창시자의 오른팔

이스마일 하니예는 이스라엘 아스칼란에서 추방된 팔레스타인 난민의 후손으로, 1962년 가자지구 인근 난민캠프에서 태어났다. 유엔의 난민기구가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다 가자지구 이슬람대에 진학해 아랍 문학을 전공했다. 하마스에 합류한 건 1987년이다. 팔레스타인의 반(反)이스라엘 시위인 인티파다에 가담했다가 이스라엘에 투옥된 것을 계기로 하마스에 발을 들였다. 이후 하마스 창시자인 셰이크 야신의 개인 비서를 맡으며 하마스 내부에서 권력을 잡았다. 하니예는 그를 정신적 지주로 여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엔 그와 함께 이스라엘의 표적이 됐고, 야신은 이듬해 이스라엘군에 살해됐다. 하니예는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직에 올랐으나, 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장과 갈등이 일면서 약 4개월 만에 해임됐다. 2007년 하마스가 일방적으로 가자지구를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그로부터 약 10년 동안 하마스를 이끌었다. 2017년 2월 가자지구 지도자 자리를 야히야 신와르에게 넘긴 뒤, 같은 해 5월 하마스 정치국장으로 선출됐다. 이후 카타르로 이주해 망명 생활을 해왔다.

그는 수십억달러 규모의 재산을 쌓으며 호화 생활을 해 왔다는 의혹도 있다. 더타임스 등 외신은 하니예 일가가 가자지구로 들어오는 수입품에 관세를 20% 매기고, 암시장에서 뒷돈을 챙겨 40억달러(약 5조5308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모았다고 보도했다. 카타르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중에도 고급 호텔에서 장기 투숙했으며, 자녀 등이 여러 나라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