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유 업종 A사 전 회장과 화학 업종 B사 전 회장은 관련성이 없어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사모펀드에 기업을 팔고 수천억원의 재산을 가지고 상속세가 없는 국가로 이주했다. 한국은 거주이전의자유가 있기 때문에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해외로 이주하지 않고 국내에서 계속 기업을 유지하거나 가치를 창출했다면, 국익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세계 최고 수준 상속세, 고액 자산가 이민 부추겨
일반적으로 과도한 세금 징수는 경제적 부담을 증가시켜 조세 저항과 조세를 회피하려는 편법을 발생시킨다. 현재 우리나라는 상속세 최고 세율(50%)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 다음으로 2위에 속하지만 최대 주주 주식 할증 과세 적용 시 최대 60%의 세율이 적용돼 상속세 부담이 세계 1위에 해당된다. 세계적인 추세는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상속세 최고 세율을 인하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상속세율 및 과표구간별 금액이 2000년 이후 현재까지 24년간 유지되고 있어 경제 환경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지수(CPI)의 경우 2000년 대비 2023년 1.7배가 상승했고,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1배, 코스피지수의 경우 5.2배가 올랐다. 이렇듯 2000년부터 2023년까지 우리나라는 꾸준히 경제성장을 해온 반면 상속세율은 2000년 1월 1일 개정 이후 변동이 없어 경제 환경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과도한 상속세를 회피하기 위해 역외 탈세 및 조세 회피가 발생하며, 해외 이민자 수가 증가하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해외기관 보고서에 의하면, 인구 대비 고액 자산가의 이민 비율 1위인 나라가 한국이라는 점은 놀랄 만하다. 결국 상속세가 고액 자산가가 한국을 떠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추정된다. 한 번 해외로 나간 돈은 다시 돌아오기 힘들기 때문에 이에 대한 경제적 악영향은 남아있는 국민의 몫이다.
또한 기업의 상속이 이루어질 때 높은 상속세로 인해 상속인의 기업 지분 매각, 주식 담보대출 등을 통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이에 따라 해당 기업의 경우 고용 불안, 지배구조 불안정, 지분 분쟁 등 다양한 투자 저해 요인으로 인해 궁극적으로 기업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커지고 그 피해는 대주주, 소액주주, 종업원 및 이해관계자의 몫이 된다. 이렇게 과도한 상속세는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최근 2024년 세법 개정안이 발표됐는데 필자가 두 편의 학술 논문에서 주장한 대로 최고 세율을 50%에서 40%로 인하하기로 했다. OECD 평균보다는 아직 높지만 사회적 합의 및 개정안 통과 가능성을 본다면, 합리적인 선택으로 판단된다. 또한 상속세 자녀 공제 금액을 1인당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대폭 확대해 자녀를 많이 둔 납세자에게 세 부담을 경감시켜 줘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미약하나마 도움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과세표준 구간이 크게 바뀌지 않은 점이 이번 세법 개정안의 아쉬운 점이다.

서울대 국문학, 경영대학원 회계학 석·박사, 현 세무 관리학회장, 전 중부지방 국세청 국세심사위원
금융투자소득세 시행되면 장기 투자 기피 현상 강해질 듯
금융투자소득세의 경우 필자가 논문에서 주장한 대로 폐지하는 것으로 개정안이 나왔다. 우리나라는 생산성 감소와 인구구조 변화, 경제성장 둔화 추세 등으로 인해 경제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자본의 효율적 활용 및 생산성 향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기업은 높은 시장가치로 투자받아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투자자는 투자에 대한 성과를 기업과 공유하고 기업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금융투자소득세가 도입될 경우 주식 등 투자 상품의 양도소득은 기존 비과세에서 과세 대상으로 바뀌고 이로 인해 개인 투자자의 세후 투자 수익률이 낮아지므로 투자 상품 거래 규모가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기본 공제 5000만원을 감안해 주식 양도 차익을 5000만원 미만으로 만들기 위해 장기 투자를 기피하고 단기 투자를 할 가능성이 크고 이로 인해 매년 연말에 주가가 급락해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예전에 상장 주식 대주주 과세 기준을 강화했을 때 매년 12월 대주주 회피 매물로 인해 중소형 주의 주가 급락이 반복된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또한 기존 국내 주식시장의 자금이 부동산 시장, 해외 주식시장 같은 다른 투자시장 등으로 이동함에 따라 국내 주식시장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크고 기업은 투자받기 어려워지며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많은 해외 유수 논문은 자본이득세율 인상 이후 주식 거래량이 감소함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는 주식 양도 차익에 대한 과세로 인해 투자자는 자본이득세 부담을 회피하고자 주식 거래를 미루게 되며, 이로 인해 주식 거래량이 감소하게 되는 거래량 동결 효과(Lock-In Effect)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회계저널’에 게재한 논문은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일반 주주의 연도별 주식 양도소득세 및 증권거래세를 계산해 세수 규모와 변동성을 분석했는데, 상장 주식 양도 차익 과세 시 세수 안정성 측면에서 실익이 없음을 밝혔다. 또한 금융투자소득세같이 양도 차손에 이월 공제를 도입한다면, 증권거래세가 양도소득세보다 세수 확보 측면에서 우월함을 증명했다. 한편, 금융투자소득의 경우 반기별 원천징수가 원칙이므로 연간 2회 원천징수가 이행됨에 따라 주식 등의 투자를 통한 자산 형성 기회가제한된다. 또한 국내 상장 주식과 공모 주식형 펀드를 합산해 5000만원 기본 공제가 가능하나 여러 증권사를 사용할 경우 기본 계좌를 제외한 다른 계좌에서 발생한 소득이 5000만원 이하여도 무조건 원천징수하게 된다. 이렇게 미리 원천징수한 주식 등에 대한 투자 수익이 5000만원 이하일 경우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에 금융투자소득세 환급 신고를 해야 하므로 납세 협력 비용이 증가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국내 주식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투자 위험을 감내한 일반 주주가 투자로 얻은 양도소득을 보호하고 투자로 얻은 이익을 주식시장에 재투자할 수 있도록 금융투자소득세는 폐지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민주당 출신 미국 제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는 “오늘날 세율이 너무 높고 세수는 너무 낮은 것은 역설적인 진실이다. 장기적으로 세수를 늘리는 가장 건설적인 방법은 세율을 낮추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2024년 세법 개정안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원안대로 통과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