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지난 7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관련 긴급현안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뉴스1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지난 7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관련 긴급현안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뉴스1

지금부터 3년 전, 머지포인트의 부도가 발생했다. 2017년 설립된 머지포인트는 다양한 업체가 발행하는 쿠폰이나 포인트를 하나로 통합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사용자는 여기저기 흩어진 포인트를 한곳에 모아 간편하게 활용하고, 제휴 업체는 포인트 관리에 필요한 인력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머지포인트는 설립된 지 불과 3년 만에 편의점과 대형 마트 등을 포함해 2만여 곳의 가맹점을 확보했다.

대형 마트와 제휴를 바탕으로 머지포인트는 자사 상품권을 현금과 유사한 위상으로 올려놓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20%에 달하는 할인을 제공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몸집을 불렸다. 하지만 머지포인트는 2021년 8월 급작스럽게 마트나 편의점 등 주요 가맹점에서 포인트 결제를 막았다. 시장의 신뢰를 잃은 머지포인트는 불과 2~3주 만에 실질적으로 부도가 났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수천억원대의 피해는 소비자에게 전가되었다.

머지포인트는 사업의 본질이 폰지 사기였기 때문에 실패했다.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발생한 비용을 감당할 만한 마땅한 수익 모델은 없는 상태였다. 덩치를 키우다 현금 흐름이 임계점에 달하자, 부도가 난 것이다. 전형적인 사업 실패다.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또 발생할 일임이 명백하다. 하지만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부도 시점 소비자의 행태였다.

김우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서울대 산업공학, 미 프린스턴대 경영과학 및 금융공학 박사
김우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서울대 산업공학, 미 프린스턴대 경영과학 및 금융공학 박사

뱅크런 연상되는 티메프 사태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포인트를 구매한 일부 고객은 주요 서비스가 막히자, 머지포인트 본사로 찾아갔다. 환불에 성공하는 사례가 나왔다는 소문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지자,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수백 명의 고객이 몰려들었다. 직원과 고객이 사무실 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를 벌여 경찰까지 출동했다. 그 과정에서 끝내 환불받지 못한 사람이 사무실 공기청정기를 들고 가는 모습까지 포착됐다. 상식적으로 절도에 해당하는 행위지만, 대부분의 가입자가 환불받지 못하는 것으로 확정된 후엔 이해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게 나왔다.

머지포인트의 몰락과 그에 이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는 온라인 플랫폼이 위기 상황에 부닥쳤을 때 소비자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학습한 듯하다. ‘티메프(티몬·위메프)’의 자금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소문이 본격화한 7월 25일, 전국 방방곡곡에서 판매자와 소비자가 회사로 들이닥치며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과 유사한 일이 재현됐다. 머지포인트 사태를 통해 ‘현장에 있는 직원을 통해 대금을 정산받는 것 외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학습한 사람들은 환불을 받을 때까지 직원들을 붙잡아뒀다. 그 과정에서 현장 점검을 위해 방문한 공정거래위원회 직원마저 한동안 억류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7월 26일 서울 강남구 티몬 신사옥에서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환불 현장 접수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 뉴스1
7월 26일 서울 강남구 티몬 신사옥에서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환불 현장 접수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 뉴스1

최초 방문한 몇 명은 환불받았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없는 돈이 현장에 간다고 나올 리 없다. 

7월 29일 티메프는 법원에 회생 신청을 했고, 다음 날 법원은 보전처분과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리며 부도를 기정사실로 만들었다. 이때까지 파악된 미정산액은 2000억원 정도지만, 향후 그 피해액은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업은 현금 흐름이 막히면 부도가 난다. 거래 업체가 부도나면 당장 쫓아가는 것 역시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를 뱅크런이라 부르지 않는다. 티메프 사태가 일반적인 기업의 부도와 결이 다른 뱅크런에 가깝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위험 전이(contagion) 가능성 때문이다. 뱅크런은 은행 고객이 대규모로 예금을 인출할 때 발생한다. 예금을 전액 현금으로 쌓아두는 은행은 없기에 뱅크런이 발생하면 해당 은행은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다. 여기까지는 통상적인 부도와 차이가 없다. 하지만 금융기관은 통상 다른 금융기관과 긴밀한 거래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한 금융기관의 지급불능은 거래 네트워크를 통해 전체 금융 시스템으로 전이되어 경제 위기를 촉발할 여지마저 생긴다.

단적인 사례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 위기다. 부동산 버블과 서브 프라임 모기지로 발생한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은 전 세계 금융 시스템으로 전이됐다. 현재 많은 나라를 괴롭히고 있는 인플레이션은 일차적으로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여파지만,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전 세계 중앙은행이 경쟁적으로 낮춘 금리 때문에 10년 가까이 쌓인 유동성을 중국이 더 이상 받아주기 어렵게 되며 발생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을 정도다.

리먼 브라더스 금융 위기의 교훈

리먼의 파산 이후, 다양한 규제가 도입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금융안정위원회(FSB)의 바젤Ⅲ다. 해당 규제 프레임워크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금융 체계상 중요한 금융기관(SIFI)’의 도입이다. 금융 시스템에서 허브 역할을 하는 대형 은행과 보험사를 대상으로 하는 SIFI는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약한 금융기관에 비해 더욱 엄격한 감독 규정과 높은 자본 요구사항을 요구받는다. 이를 통해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건전하게 유지하고,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인식을 원천 차단해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것을 추구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2023년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미국의 몇몇 은행이 파산했지만, 시스템적인 위험 전이는 없었다.

온라인 플랫폼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온라인 플랫폼들은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합성어)의 발전과 함께 금융기관 고유의 역할이었던 결제 기능, 제한적이긴 하지만 상품권이나 포인트 판매를 통한 발권 기능까지 수행한다. 자체 유통망을 가지고 있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소비자와 판매자를 막론하고 절대다수의 경제 주체가 온라인 플랫폼에 종속된 시대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나마 일부 소비자에게 피해가 집중되었던 머지포인트 사태와 달리, 티메프 사태는 판매자, 소비자, PG 업체, 카드사 등 경제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조짐이다. 선제적인 유동성 투입 등 정부의 발 빠른 대처로 실물경기 악화로까지는 번지지 않을 것이라 보이지만, 티메프가 갚지 못한 수천억원은 결국 누군가의 손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플랫폼 기업의 파산은 뱅크런보다 더욱 직접적이고 심각한 파급효과를 불러올 여지가 있다. 금융 섹터 내에서 자체적으로 막을 여지가 있는 뱅크런과 달리, 수없이 많은 개별 사업자와 소비자가 핀테크 등 신금융 기법을 통해 엮여있는 곳이 온라인 플랫폼이다. 따라서 이들의 실패는 이들을 SIFI에 준하는 기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한다.

머지포인트 사태가 전조 증상이었다면, 티메프 사태는 혁신 기업에 느슨했던 규제가 본격적으로 청구서를 들이미는 듯한 느낌이다. 실제로 7월 25일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 부원장은 이커머스 업체의 성장 속도를 점검·감독 체계가 따라가지 못했음을 실토한 바 있다. 이커머스를 포함한 온라인 플랫폼이 전 국민의 경제활동에 필수재가 된 현재 시점에 조금은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규제를 점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우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