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마이스터제도는 숙련된 기술자인 ‘장인’을 길러내는 제도다. 이 제도는 중세 유럽의 길드제도에서 기원했다. 길드는 특정 직업이나 수공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조합이다. 길드는 수공업 분야 기술 표준을 정하고 회원의 권익을 보호할 뿐 아니라 숙련공을 길러내는 역할도 했다. ‘견습생→도제→마이스터’로 이루어진 직급 체계에서 직급마다 공부해야 할 지식과 실무 훈련 등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다. 견습생이 전문 시험을 거쳐 도제가 되면 기능사로 인정받게 된다. 이 자격은 중세 시대부터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인정받았으므로 기능사의 국제 이동도 가능했다. 이렇게 단계별로 짜인 과정을 거쳐서 마지막 단계인 마이스터 시험에 통과하면 장인이 된다.
중세 시대에 만들어진 길드 제도는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독일은 1953년 수공업법을 제정해 이 제도를 현대화하는 노력을 기울였고 수차례의 개정을 통해 1969년에 지금의 직업훈련제도로 자리 잡게 됐다. 기업은 직업훈련 과정에 있는 학생과 졸업생을 위해 실습생 자리를 주거나 근로자로 채용해 실무를 익히고 훈련할 수 있도록 한다. 주어진 교육과 훈련을 거쳐 견습생이 도제 시험에 합격하면, 마이스터 학교에 다닐 수 있다. 마이스터 학교는 도제로 승격한 후 기능사로서 3년간 현장 경험을 갖추고 마이스터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다니는 학교다. 마이스터 시험에서는 자신의 전공 분야뿐 아니라 경제, 법률, 교육 전문 과정 자격 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창업, 기업 경영, 후학 교육 등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 내용과 기간은 주별로 약간씩 차이는 있으나 직종마다 구성돼 있는 협회가 관리하고 상공회의소 같은 직능 단체가 교육과정을 관리하고 통제한다. 교육은 이론 교육을 받는 직업학교와 실무 훈련을 받는 기업체가 담당한다. 직업학교 비용은 공공 분야에서 부담하지만, 업체에서의 교육 비용은 기업이 담당한다. 직업훈련 중 생산과정에 참여하므로 업체와는 임금 협상을 하고 훈련 수당을 지급받는다. 직능 단체는 새로운 지식을 도입하는 경우 새로 교과과정에 편입하고 마이스터에게 보수 교육을 시행한다. 최근에는 컴퓨터 도입으로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수공업 분야에서도 기술 고도화를 위한 교육이 급속히 확대되는 중이다. 기업과 국가가 공동으로 전문인을 양성하는 독일의 마이스터제도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인정하는 200여 개의 마이스터 자격이 있다. 상공회의소 기준으로는 450여 개 자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의 마이스터제도는 해당 분야 지식을 축적해서 후대에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하는 제도다. 독일의 강소기업을 길러낸 제도적 근간이다.
한국도 독일 같은 제조업 강국으로 불린다. 하지만 우리나라 제조업은 생산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지난해 제조업 생산 규모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이후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3년 12월 및 연간 산업 활동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제조업 생산 지수는 전년 대비 3.9% 하락했다. 1998년에 기록한 -6.5% 이후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고 절대 규모도 2021년보다 감소했다. 지난해 실적 악화는 반도체 수출 감소가 유발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우리나라 제조업 전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인력 부족이다. 고급 기술 인력과 기능 인력이 모두 부족하다. 첨단 분야의 고급 인력은 열심히 키워놓으면 대우가 좋은 선진국으로 떠난다. 제조업의 근간인 기능 인력은 새로 유입되는 인구가 없어서 빈 일자리가 채워지지 않고 있다. 경기도에서만 지난해 연말 기준 2만7000개의 일자리가 채워지지 않았다. 실업계고 졸업생은 단순 제조업에 취업할 마음이 없다. 대우도 매력적이지 않고 미래도 밝아 보이지 않아서다. 제조업 분야 국내의 지식이 체계적으로 후세에 전달될 수 있도록 지식 축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숙련공이 대우받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독일의 마이스터는 사회적 존중을 받는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이 만들 수 없다. 숙련공의 지식을 사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은 국가가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