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유 없이 나른하고 무기력하다면 퇴근길에 로또 복권 한 장을 구입해 보라. 그리고 머리맡에 복권을 두고 잠자리에 들라. 꿈을 꾸는 것은 자유다. 희망은 좋은 것이다. 사진 셔터스톡
요즘 이유 없이 나른하고 무기력하다면 퇴근길에 로또 복권 한 장을 구입해 보라. 그리고 머리맡에 복권을 두고 잠자리에 들라. 꿈을 꾸는 것은 자유다. 희망은 좋은 것이다. 사진 셔터스톡

지인 중 한 사람이 한때 로또 복권을 사 모으느라 심신이 피폐해지고, 직장에서 해고될 위기까지 몰리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는 건실한 기업의 착실한 직장인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뭔가에 홀린 듯 복권을 사 모으는 데 혈안이 됐다. 매주 한 번에 몇십만원은 예사였다. 어떤 경우에는 100만원을 넘기도 했다. 당시 그의 눈빛에는 이상한 결기가 느껴졌다. 평소와는 전혀 딴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난주 내 당첨액이 50만원인데 그것도 전부 복권을 사는 데 썼어” “당첨자를 많이 내는 ‘로또 명당’이 몇 군데 있는데, 지난주에는 OO 명당에 가서 수십 장을 사 왔어” 그는 사람을 만날 때면 로또 복권 이야기를 하느라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말을 할 때도 상대방과 눈을 맞추기보다는 멀리 허공을 응시하거나 끊임없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한국에 로또 복권이 있다면 미국에는 파워볼이 있다. 파워볼은 메가밀리언과 더불어 미국의 대표적인 로또 복권 중 하나다. 미국인은 이런 말을 한다. “파워볼에서 잭팟(1등 당첨)이 터질 확률보다는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이 더 높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파워볼이나 로또 복권을 사려고 줄을 선다. 

대체 사람들은 왜 복권에 목을 매는 것일까. 가장 먼저 사람들의 미신적인 사고(su-perstitious thinking)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노스웨스턴대의 심리학 교수인 한스 브라이터는 사람들은 높은 수입이 따른다면 위험도 기꺼이 감수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가능성이 작아도 최소 비용으로 복권 1등 당첨 같은 엄청난 보상이 따른다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유혹에도 빠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실용적이지 않다. 특히 도박에 관해서는 비합리적이고 낙관적이다. 일어날지도 모르는 미래의 나쁜 위험(bad risk)에 대비해 차근차근 준비하기보다는 좋은 위험(good risk)에 베팅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대체로 로또 1등 당첨 같은 ‘결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사건’을 더 중요시한다. 반면 나이가 들수록 꼭 필요한 건강보험 가입 같은 ‘반드시 일어날 사건’ 은 덜 중요하다고 느낀다.

줄기차게 로또 복권을 사는 나의 지인 같은 사람들, 로또 명당을 찾아가서 복권을 사는 사람들, 당첨 가능성이 큰 로또 번호의 조합을 연구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로또 복권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이런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을 가진 사람을 심리학에서는 흔히 ‘도박사의 오류(gambler’s fallacy)’에 빠졌다고 말한다. 

김진국  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김진국
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동전을 던질 경우 동전이 똑바로 서는 경우를 제외하면 동전의 앞면이나 뒷면이 나올 확률은 언제나 똑같이 2분의 1씩이다. 그런데 동전을 10번 던져 앞면이 7번 나오고, 뒷면이 3번 나왔을 때 통상 도박사의 오류에 빠진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앞면이 7번이나 나왔으니, 이제는 뒷면이 나올 확률이 훨씬 높아지겠군”

우리는 상식적으로 안다. 동전은 인공지능(AI)이 아니다. 기억력도 없고 학습 능력도 없다. 그냥 우리가 던지면 각각 2분의 1의 확률로 앞면 혹은 뒷면이 나올 뿐이다. 그런데도 아무런 연관이 없는 단순 확률적인 사건에서 굳이 상관관계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 도박사의 오류다.

지난번에 1등 당첨이 나온 집이라고 해서 또다시 1등 당첨이 나올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당첨 번호 3개를 맞춰 5등이 되었다고 해서 다음에 4개를 맞춰 4등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과거의 결과는 미래의 결과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우연히 당첨 번호에 일련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보일 뿐이다. 복권은 궁극적으로 무작위(ultimately random)인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당첨되지 못한 다수의 패배자가 아니라, 잭팟을 터뜨린 극소수의 승자에게 집중한다. 미국 같은 경우 잭팟을 터뜨린 사람은 단번에 유명 인사가 된다. 보도를 접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오호라. 저 사람도 잭팟을 터뜨렸는데, 내가 잭팟의 주인공이 되지 말란 법은 없잖아.”

어쨌거나 누군가 잭팟을 터뜨려 한순간에 거액을 손에 넣었을 때 이전보다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할까. 이 역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언론 보도로 우리는 선입관을 갖고 있다. 대개 복권 당첨자의 삶은 망가지고 결국은 비참해질 것이라는 고정관념 말이다. 일반적 통념과는 달리 잭팟을 터뜨린 사람은 대체로 삶의 만족도도 증가하고 새롭게 얻은 부(冨)를 흥청망청 낭비하지 않는다고 한다. 복권에 당첨되면 인생이 망가진다는 것은 오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고정관념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것 역시 당첨 후 망가진 사람들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너무 강력한 인상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통장의 예금 잔고가행복을 보장할 수 있을까. 물론 보장할 수 없다. 우리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돈이 직접 행복을 창출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돈이 행복으로 가는 다리는 될 수 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복권에 당첨되는 것은 ‘대체로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19년 워릭대와 취리히대에서 행한 연구에서 복권에 당첨된 619가구의 사람은 전반적으로,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고, 금액이 많을수록 긍정적인 효과도 컸다. 2020년 스웨덴의 복권 당첨자 3000명을 대상으로 스톡홀름대 등이 행한 연구에서도 당첨자는 삶의 만족도가 10년 이상 전반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시간이 지나도 만족도가 사라졌다는 증거는 없다고 했다. 복권 당첨으로 인해 망가진 사람들의 사례는 오히려 소수일 뿐 대표성이 없다는 것이다.

스톡홀름대의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당첨자 대부분이 상금을 탕진하지 않고 중장기계획을 세워 신중하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또한 일을 덜 하는 경향이 생기기는 했지만,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드물었다. 요컨대 그들은 복권에 당첨된 뒤 더 높은 품질의 여가를 즐겼고, 멋진 삶을 살기 위한 웰빙 감각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심리학 전문가들은 말한다. 잭팟을 터뜨리고 나면 목적의식이 사라지면서 성취감이 떨어지는 등 개인적으로 감정적 갈등이 생긴다. 또 프라이버시가 사라지면서 갑자기 생긴 재화를 노리는 가족, 친구, 사회단체에 괴롭힘을 당하는 등 사회적으로는 관계의 스트레스(relationship stress)를 겪을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본 연구에서처럼 이런 개인적, 사회적 스트레스를 겪지 않고, 혹은 잘 이겨내고 행복하게 잘사는 사람도 많다.

저자는 심리학자로서 성형수술을 강력하게 권하는 사람이다. 물론 복권 중독자나 당첨 후 망가진 사람처럼, 과도한 성형 중독으로 망가지는 경우는 논외로 한다. 적절한 수술을 통해서 자존감도 높아지고 사회적 성취도 이룬다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로또 복권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팍팍한 생활, 신산(辛酸)한 삶에 로또 복권 한 장이 삶에 희망을 주고, 활력소가 된다면 충분히 권장할 만한 일 아닌가.

요즘 이유 없이 나른하고 무기력하다면 퇴근길에 로또 복권 한 장을 구입해 보라. 그리고 머리맡에 복권을 두고 잠자리에 들라. 혹시 꿈속에서 돌아가신 증조할아버지가 로또 번호를 알려줄지 누가 알겠는가. 꿈을 꾸는 것은 자유다. 희망은 좋은 것이다. 파랑새는 내 마음속에 있다. 그리고 혹시 잭팟을 터뜨린 사람이 있다면 절대로 주위에 알리지 말고, 직장을 그만두지도 말고, 조용히 자기 삶의 여정을 재점검해 여생을 멋지게 꾸며 나가기 바란다. 

김진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