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사진 A24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사진 A24

지난 6월 개봉한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유대계 영국 감독 조너선 글래이저의 2023년 작품이다. 영화 제목은 1941년 나치 독일이 아우슈비츠 수용소 주변에 설정한 40㎢의 관리 구역을 의미한다. 친위대는 이 구역에서 폴란드인 주민을 추방하여 그들의 범죄를 목격할 잠재적 증인을 제거하고, 수용인과 외부 세계의 접촉을 차단하려 했다. 착취된 농지에서는 수용인의 노동으로 곡물을 생산했고, 철거된 주택 자재는 수용소 막사를 짓는 데 사용됐다.

영화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생활하는 나치 장교 루돌프 회스 가족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들의 삶은 겉보기에는 평화롭다. 가족은 맑은 날 강가로 피크닉을 가고, 생일에는 선물을 주고받으며 기뻐한다. 아이들은 꽃이 만발한 정원과 수영장에서 뛰놀고, 부부는 옛 추억을 공유하며 현재의 행복을 음미한다. 그러나 이 평범한 장면은 그가 나치의 절대 악에 앞장선 인물이라는 사실과 맞물리면서 섬뜩한 이중성을 드러낸다.

루돌프 회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초대 소장이었던 실존 인물이다. 그는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사령관으로 재직하며 약 25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매일 수천 명의 유대인이 샤워를 기대하며 들어간 공간에서 독가스로 죽임을 당했고, 그 시신은 대량으로 소각됐다. 노동력이 없는 노인과 여성, 어린이가 우선적으로 희생됐다. 일과 동안 양심의 가책 없이 사람을 죽이는 수용소장이 퇴근 후 가족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푸는 모습은 희생자의 비극을 더욱 가혹하게 만든다.

강현석 SGHS 설계회사 소장 코넬대 건축대학원 석사, 서울대 건축학과 출강, 전 헤르조그 앤드 드 뫼롱스위스 바젤 사무소 건축가
강현석
SGHS 설계회사 소장 코넬대 건축대학원 석사, 서울대 건축학과 출강, 전 헤르조그 앤드 드 뫼롱스위스 바젤 사무소 건축가

벽으로 가려진 모순

회스의 이중성은 주택 모습에서 극대화된다. 회스 가족의 호화로운 주택과 정원은 단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용소와 맞닿아 있다. 벽을 기점으로 한쪽에서는 죽음의 공포가 진행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상류 계층의 행복한 삶이 대조를 이루며 조용히 흘러간다. 수용소 시설과 소각로 굴뚝이 힐끗 보이기는 하지만, 벽은 가해자의 에덴동산으로부터 그들이 불편함을 느낄 피해자의 지옥을 시각적으로 가려준다.

영화 내내 카메라는 벽 너머 수용소로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주택 쪽에 계속 머물면서 회스 가족의 일상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목격한다. 그러나 벽은 시선을 막을 수는 있어도 소리를 차단할 수는 없다. 가족의 평온한 삶 가운데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총성, 사람들의 절규와 아이들의 울음소리, 화염에 휩싸이는 소리와 고압적인 명령이 메아리치며 뒤섞인다. 모순적인 상황은 가족 모두,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생활한다는 점이다.

노동자 계급 출신의 회스 부부는 나치 대학살에 대한 충성으로 상류층의 삶을 얻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염원해 온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 정당화가 필요했다. 회스 가족에게 벽은 그 너머의 참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죄책감의 고통에서 분리시키는 완충 막 역할을 했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사진 다니엘 리베스킨트 웹사이트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사진 다니엘 리베스킨트 웹사이트

벽 너머의 타인

루돌프 회스는 1947년 폴란드의 전후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그가 대학살을 저지른 아우슈비츠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전후 재판에서 많은 홀로코스트 전범은 자신이 나치의 절대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고 단지 공무로서 수행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1961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그의 공개 재판을 지켜본 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를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명령에 대한 단순한 복종을 넘어서 자기 행동이 타인의 존엄성을 훼손하는지 충분히 사유하지 않았고, 그로 인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를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여기에서 아렌트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 개념은 영화 속 벽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벽은 언제나 이쪽과 저편의 양면을 지닌다. 회스 가족의 편안한 삶을 보호하는 벽은 그 너머의 유대인에게는 자유를 억압하는 폭력의 도구다. 수용소의 비참한 소리가 벽을 넘어 회스 가족의 세계에 스며들었듯이, 회스 가족의 평화롭고 일상적인 소리도 공포의 대기 속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학살 현장의 유대인 아이는 어쩌면 벽 너머 정원에서 장난치는 회스 아이들의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렌트의 관점에서, 회스와 그의 가족은 벽을 넘어 타인의 입장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평범한 선의를 망각했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사진 다니엘 리베스킨트 웹사이트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사진 다니엘 리베스킨트 웹사이트

타인의 상실을 경험하는 공간

2001년에 개관한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은 전후 독일에서 유대인의 총체적 역사와 홀로코스트의 여파를 명확히 드러낸 첫 번째 건축물이다. 18세기 바로크식 건물 옆에 새롭게 확장된 이 박물관에는 독립된 외부 출입구가 없어 기존 건물의 지하 통로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유대계 폴란드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유대인의 뼈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물관 초입부에는 ‘홀로코스트’ ‘망명’ ‘연속성’이라는 세 갈래 길이 펼쳐지는데, 그중 ‘홀로코스트의 길’은 나치 희생자가 남긴 물건을 전시하고 있다. 좁고 긴 전시실의 막다른 끝에는 검은 철제문이 있는데, 이 문을 여는 순간 방문객은 높이 24m의 텅 빈 콘크리트 공간에 사로잡히게 된다.

‘공허한 공허’로 불리는 이 타워는 조명이나 냉난방 장치, 그 어떤 전시물도 없이 오직콘크리트 표면의 차가움과 짙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 가느다란 빛줄기와 함께 예리한 모서리의 틈으로 스며들어오는 차량의 소음과 새들의 지저귐이 벽에 부딪히며 공간 전체를 울린다. 건축가는 압도적인 공간을 통해 방문객이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이 느꼈을 깊은 상실감을 체험하도록 했다. 침묵 속에 퍼지는 벽 너머 일상의 소리는 억압의 현실에서 도망칠 수 없었던 유대인의 절망에 공감하게 한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사진 다니엘 리베스킨트 웹사이트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사진 다니엘 리베스킨트 웹사이트

당연함에 대해 사유하는 일

건축가는 지그재그 형태인 박물관 상층부에도 수직으로 뻗은 다섯 개의 콘크리트 공간을 삽입했다. 이 공간은 다른 전시 공간과는 철저히 분리돼 있으며, 희생된 유대인의 부재와 상실됐던 인간성을 상징한다. 그중 ‘기억의 빈 공간’에는 이스라엘 예술가 메나세 카디시만의 작품인 ‘낙엽’이 설치돼 있다. 두꺼운 강철을 잘라 만든 1만 개 이상의 입을 벌린 얼굴이 좁고 깊은 공간의 바닥을 덮고 있다. 방문자가 공간을 따라 걸어가면 얼굴들을 밟게 되며, 이때 조각들이 서로 부딪치는 둔탁한 쇳소리가 비명처럼 허공에 울려 퍼진다.

현재의 우리도 우리가 정당하다고 믿는 행동으로 인해 벽 너머 타인이 내는 소리를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너선 글래이저 감독은 제96회 오스카상 시상식에서 영화가 ‘그들이 그때 무엇을 했는가를 보라’고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보라’고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연설했다. 이어서 자신이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가자 지구에 대한 공격과 민간인 희생에 대해 비판했으며, 유대인 사회는 감독의 발언을 향해 맹비난을 퍼부었다. 

강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