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야외 음악 페스티벌의 시즌이다. 물총 놀이 보면서 더 이상 아이들 장난이 아닌, 거대한 쇼 비즈니스로 만든 ‘워터밤’ 페스티벌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워터밤은 걸그룹 아이즈원 출신의 권은비부터 올해 키스오브라이프까지 매년 화제의 출연진을 만들어낸다. 올해는 7월 초 ‘워터밤 서울’에 이어 8월 3일 ‘워터밤 인천’까지 그 열기가 이어졌다. 출연진은 하나뿐이지만 대형 페스티벌에 맞먹는 싸이의 ‘흠뻑쇼’도 여름의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태국에서 매년 4월 열리는 새해맞이 축제 ‘송끄란’까지 수입돼 갈수록 동남아 같아지는 우리의 7월에 ‘S2O 코리아’라는 이름의 페스티벌로 안착했다.
여름 페스티벌에 물 축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6년 시작해 현재까지 한국 대표 여름 페스티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도 있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과 여름 시장을 양분했던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도 있었다. 이들은 땡볕 아래, 또는 폭우 속에, 여름 모기들 가운데로도 수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는, 여름의 신기루 같은 이벤트다.
음악 페스티벌은 어디에서 온 걸까. 고대 로마나 이집트에서부터 음악과 춤이 함께하는 축제는 늘 인류와 함께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적 모습을 갖춘 대형 야외 음악 페스티벌, 즉 무대 위 연주를 굉음으로 증폭해 뿜어내는 초대형 스피커와 음악만을 위해 모인 수만 명의 관객이 있는 축제의 진정한 출발점을 찾으려면 1969년 6월 15일, 미국 뉴욕주 북부의 베설 농장 지대로 날아가야만 한다. 바로 히피 운동의 최종 분출구이자 광란의 4일로 불리는 ‘우드스톡 뮤직 앤드 아트 페어’, 일명 우드스톡이다. 물론 이보다 몇 년 앞서 뉴포트 포크 앤드 재즈 페스티벌이나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지미 헨드릭스가 기타에 불붙였던!)이 있었지만, 우드스톡만 한 문화적, 경제적 파급효과는 없었다.
폴 매카트니, 믹 재거가 조직위원… '별들의 잔치'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
앞서 1967년 6월 몬터레이의 광활한 들판에서 열린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은 잘 조직된 별들의 잔치였다. 훗날 당시 사회 현상인 ‘사랑의 여름’과 히피 운동의 시작점으로 두고두고 거론된 이 행사에는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 미라클스의 스모키 로빈슨이 조직위원회에 버텼다.
우드스톡은 기획 단계부터 모험이었다. 모험을 영어로 하면 벤처다. 실제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벤처캐피털의 신화로 꼽힌다. 4일간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무려 45만 명(추산)을 모은 우드스톡이란 문화사적 랜드마크는 20대 청년 둘의 조금 허무맹랑해 보이는 아이디어와 배포, 실행력으로 이뤄졌다. 내건 슬로건은 ‘평화와 음악의 3일’이었지만 현장의 어지러운 상황은 평화와 거리가 멀었고 예상을 넘은 열기로 ‘3일’은 하루 연장돼 ‘4일’이 됐으며 ‘음악’만이 슬로건에서 남았다. 심지어 애초 광고대로 우드스톡에서 열리지도 않았다. 장소 섭외 완료 직전, 우드스톡 마을 주민의 반발에 직면해 무려 100㎞나 떨어진 베설 지역의 야스거 가족 농장 부지로 옮겼다.
이 모든 아이디어의 출발점은 20대 친구인조얼 로젠먼과 존 로버츠. 음반사와 공연 기획사 임원까지 설득해 ‘우드스톡 벤처’를 설립하고 앞서 이야기한 ‘평화와 음악의 3일!’ 을 내세워 뉴욕타임스에 광고까지 한다. 당초 5만 관객을 예상했지만, 뉴욕주에서만 판매한 18달러짜리 티켓은 무려 18만 장 이상 팔려나간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밀려든 젊은 관객은 결국 45만 명까지 치솟았고, 미비했던 펜스와 매표소 문제로 담장을 뚫고 진입한 무단 입장 관객이 유료 관객보다 더 많아지면서 주최 측은 ‘평화와 무료의 콘서트’로 부랴부랴 개최 취지를 사후에 둘러대기에 이른다. 결국 존 바에즈, 더 후, 지미 헨드릭스 등 수십 팀의 스타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출연료를 비롯한 천문학적 비용은 기획자에게 부채가 돼 돌아왔다.
‘DIY(Do It Yourself)의 신화’ 우드스톡은 이렇게 젊은 기획자의 모험심, 히피 관객의 혈기, 기획자의 착오와 실수, 폭우와 뻘밭이 뒤섞인 문화적 금자탑이자 경제적 재난이었다(물론 ‘우드스톡 벤처스’는 이후 사운드트랙 앨범과 영화 제작으로 인한 판매 수익금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게 된다). 45만 명을 모은 이 장관에서 영감을 얻거나 기획에 착수한 이는 많았다. 음악이란 형이상과 경제라는 형이하의 조합은 전에 없이 새로운 규모로 상상되기 시작했다.
매년 약 30만 명을 허허한 사막지대로 모으는 코첼라. 2016년, 이 축제에 방문한 적 있다. 2010년대 SNS의 발달과 함께 가장 인스타그래머블한 페스티벌로 유명해진 코첼라는 2030 세대 패션 힙스터 외에 이곳을 찾는 핵심 관객층에도 재빠르게 눈을 돌렸다. 당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장년층을 위한 VIP 패키지를 출시한 것이다. 2인 기준 4박에 7000달러(약 958만원). 코첼라 3일짜리 VIP 티켓과 무제한 무료 음료, 식사, 콘시어지 서비스가 포함됐다. VIP 티켓이 있으면 축제장에서 전용 공간, 전용 통로를 이용하고 숙소와 축제장 사이를 무료 카트로 이동할 수 있었다.
영국의 경제 분석 기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코첼라의 직간접적 경제 효과를 합하면 87억달러(약 1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미국의 코첼라와 롤러팔루자, 영국의 글래스턴베리 같은 초대형 페스티벌들은 K팝 그룹 섭외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블랙핑크가 코첼라의 메인 무대를 헤드라이너(마지막 순서의 최고 출연진)로 장식했고 올해 글래스턴베리는 세계 페스티벌 시장의 랜드마크 격인 피라미드 스테이지에 첫 K팝 그룹, 세븐틴을 세웠다.
이런 움직임은 수십 년간 호황을 누린 페스티벌 산업이 직면한 근년의 위기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인스타그램, 틱톡이 대변하는 ‘찰나의 미감과 무한 재미’의 숏폼 콘텐츠, 무제한 스트리밍과 큐레이션을 내세운 플랫폼 서비스로 젊은 세대의 음악 소비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라이브 음악 좀 즐기러 먼 황야로 이동해 비싸고 불편한 숙박, 모기, 폭우를 견디는 일은 요즘 말로 ‘가성비’ 가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충성도 높은 종교적 팬덤, 정주(定住)형 팬덤이 아니라 스타를 따라 어디든 가는 카라반형 팬덤이 이끈 스위프트노믹스에 대해 이 시리즈의 첫 회에 다뤘다. 젊은 세대의 음악 소비 경향 변화, 페스티벌 브랜드의 레드오션화를 타개하는 방법으로 세계 유수 페스티벌은 종교적 팬덤, 카라반형 팬덤을 끌어들일 방안을 찾고 있는 듯하다. 그간 록이나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같은 장르에 치중하던 국내 페스티벌도 아이돌 그룹에 문호를 여는 식으로 저변 확대를 모색 중이다. 올해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축제 골수팬 사이에 일었던 논란을 무릅쓰고 신인 밴드형 걸그룹 QWER을 무대에 세웠다. 페스티벌 가운데 이름이 ‘록(rock)’에서 근년에 시나브로 ‘락(樂)’으로 바뀐 점도 주목할 만하다.
사람이 모이면 돈이 모인다. 머리가 크고 몸집이 커서 아이가 어른이 되고 놀이가 산업이 되더라도 어느 한곳에 젊음의 이상과 모험 정신, 어떤 영혼만은 남아있기를 바란다. 우드스톡은 45만이란 숫자보다 지미 헨드릭스가 연주한 ‘The Star-Spangled Ban-ner(성조기여 영원하라)’로 더 기억된다. 젊은이를 전쟁의 화마로 몰아넣은 명분 없는 베트남전 참전에 항의하기 위해, 지미가 전기기타의 폭음과 소음을 이용해 미국 국가를 변형한 역사적인 연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