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 관련 정부 규제를 적용받는 기업은 국내에 700곳가량에 그친다. 그러나 규제 밖의 기업도 수출 경쟁력을 갖추려면 선진국의 탄소 중립 요구를 따라야 한다. ‘자발적 탄소 시장(VCM)’이 유망한 이유다. 2026년엔 이 시장이 제대로 꽃피우기 시작할 것이다.”
자발적 탄소 시장은 탄소 중립을 이행하려는 기업이나 기관이 ‘탄소상쇄크레디트(이하 크레디트)’를 사고파는 시장을 말한다. 정부 요구에 따라 탄소 배출권을 거래하는 규제 시장과 달리, 자발적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기업이 탄소를 배출하고 난 뒤, 탄소 저감 사업에서 얻어진 크레디트를 매입함으로써 자사의 탄소 배출량을 상쇄하는 식이다. 거래 대상으로부터 탄소 감축 요구를 받는 기업이나 기관이 이 시장에 크레디트 매입자로 참여한다.
블록체인 기반의 크레디트 거래 플랫폼을 개발한 ‘키우다(KIUDA)’의 리챠드 윤(Rich-ard Yoon) 대표는 “글로벌 기업이 탄소 중립을 이행할 때 주로 이 크레디트를 활용한다” 며 “정부 규제를 받지 않는 작은 협력사도 수출 경쟁력 제고를 위해 탄소 중립 이행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키우다의 탄소 거래 플랫폼은 주식 거래 플랫폼과 비슷하다. 탄소 감축 프로젝트는 주식 종목처럼 플랫폼에 상장된다. 그런 다음 프로젝트의 크레디트가 발행되고, 동시에 블록체인화된다. 해당 프로젝트의 크레디트 거래를 희망하는 사람이 키우다의 거래 플랫폼에서 실시간으로 크레디트를 사고팔며, 시장에 의해 가격이 정해진다. 거래 투명성은 주식 거래보다더 높다. 각 탄소 감축 프로젝트의 정보부터 세부적인 크레디트 거래 내역까지 전부 암호화돼 키우다의 거래 플랫폼과 탄소 등록소에 기록되고 영구 저장된다.
윤 대표는 “탄소 감축은 정부 노력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 탄소 감축은 이미 세계 산업계의 가장 큰 트렌드가 됐고, 민간에서도 이를 뒷받침할 차례”라고 말했다. 키우다는 올해 기업 가치 5000만달러(약 683억2500만원)로 산정해 투자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은행, 국내외 공기업, 대기업 등과도 협력을 논의 중이다. 그를 7월 30일 서울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자발적 탄소 시장은 정부가 주도하는 규제 탄소 시장과 무엇이 다른가.
“먼저 규제 탄소 시장은 정부가 탄소 배출량의 상한선을 정하고, 탄소 감축 의무가 있는 기업을 지정해 배출량을 할당한 뒤, 이 기업이 ETS(Emission Trading System) 안에서 배출권을 거래하는 시장이다. 할당받은 배출권이 모자라면 다른 기업이 탄소 배출을 감축해 남긴 여분의 배출권을 구매하게 해 국가 단위의 탄소 배출량 총량을 유지하는 구조다. 반면, 자발적 탄소 시장은 민간이 자발적으로 탄소 감축 프로젝트를 벌이고, 각 프로젝트에서 생성된 크레디트를 거래하는 시장이다. 이 시장은 정부나 규제기관의 직접적인 감독을 수반하지 않는 시장 중심의 자율적인 구조다. 기업이나 기관은 자유롭게 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 크레디트가 많은 아프리카 같은 해외의 크레디트를 매매할 수 있는 점도 규제 탄소 시장과 다르다.”
수십 년간 호주, 뉴질랜드, 유럽에서 IT 금융인으로 지냈다. 왜 탄소 시장에 뛰어들게 됐나.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먼저였다. 1988년 호주로 유학을 떠난 뒤 현지에서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2011년 당시 모바일뱅킹의 최강자로 꼽혔던 핀란드의 한 금융 그룹(페라텀)에서 ‘IT 금융’이라는 영역을 접하게 됐다. 그때부터 블록체인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블록체인의 가장 큰 특징인 데이터 투명성이 필요한 시장이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자발적 탄소 시장을 발견하게 됐다. 2018년부터 5년 넘는 준비 기간을 거쳐 2023년에 스리랑카에 키우다를 세웠고, 올해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자발적 탄소 시장 관리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기존 자발적 탄소 시장에는 어떤 문제가 있나.
“투명성이 낮은 점이 시장 성장을 가로막아 왔다. 표준이 다양하고, 인증 기준이 통일되지 않아 기업이 크레디트로 실제 탄소 배출량을 감축했는지 판단하기 어렵고, 탄소 감축 프로젝트의 효과를 측정하기 어렵다. 시스템 미비로 동일한 크레디트가 이중으로 판매되는 경우도 있고, 가격 데이터가 부족해 구매자는 공급자가 정한 가격이 공정한지 판단하기 어렵다. 인프라와 데이터 관리 시스템도 충분히 구축되지 않아 전반적으로 신뢰도가 낮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시장이었다. 이 때문에 단순히 온라인 플랫폼만 만들어서는 해결이 안 되고 위·변조가 불가능한 강력한 보안이 동반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블록체인이 해법이 된 것인가.
“그렇다. 블록체인의 가장 큰 특징인 안전성, 선명성, 투명성, 무결성을 바탕으로 신뢰성을 확보했다. 블록체인은 데이터 조작과 위·변조를 방지해, 탄소 감축 프로젝트 데이터와 거래 데이터가 안전하게 기록될 수 있게 한다. 거래 추적도 가능하다. 특정 크레디트를 누가 누구로부터 사서 누구에게 팔았는지, 또는 자신이 사용하고 폐기했는지 등에 대한 거래 내역을 알 수 있다. 이 점 때문에 블록체인은 자발적 탄소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최적의 도구로 여겨진다.”
본사를 스리랑카에 둔 이유가 궁금하다.
“지리적 이점이 크기 때문이다. 탄소 감축 프로젝트는 주로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국가에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성장과 환경보호를 동시에 촉진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크레디트의 주요 공급국이 될 것이고, 동아시아 국가(한국·일본)와 대만 등이 주요 수요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스리랑카는 공급국과 수요국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데다, 스리랑카 정부는 ‘제2의 싱가포르’를 목표로 기업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에 사업을 전개하는 최적의 요충지라고 판단했다.”
자발적 탄소 시장의 전망을 제시해 달라.
“자발적 탄소 시장은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 증가 △탄소 중립 목표 설정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확대 등 요인으로 인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크레디트에 대한 글로벌 수요는 2030년까지 연간 1.5~2GT (1GT은 10억t)씩, 2050년까지는 연간 7~13GT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30년까지 이 시장은 최소 30억달러(약4조995억원)에서 최대 500억달러(약 68조325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키우다의 중장기 계획은.
“단순한 크레디트 거래 플랫폼이 아니라, 자발적 탄소 시장에서 블록체인화된 데이터를 관리하고 서비스해 주는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다. 선물, 옵션, 파생 상품 거래소 라이선스 취득을 위해 스리랑카 콜롬보 증권거래소 그리고 다른 3개국 증권거래소와 컨소시엄을 꾸리고 있다. 영국의 글로벌 은행이 달러 기반 결제 시스템을 제공할 예정이고, 아프리카 8개국과는 탄소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국내에는 기업 대상 크레디트 거래 플랫폼을 구독형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Company Info
회사명 키우다(KIUDA)
본사 스리랑카
사업 자발적 탄소 시장 내 탄소상쇄크레디트 거래소
대표 리챠드 윤 설립 연도 2023년기업 가치 약 5000만달러
주요 투자자 SK증권 투자 부문 자회사 외 5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