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 참전 용사인 부친의 권유로 19세에 입대
월즈는 1964년 미국 네브래스카주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네브래스카주 웨스트포인트는 인구가 3500여 명에 불과한,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지는 농촌이다. 월즈는 10대 시절 학교 관리자였던 아버지와 함께 농장에서 일하며 농사를 짓고 사냥을 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 한국전쟁 참전 용사인 부친의 권유로 주 방위군(비상근)에 입대했다. 이후 2005년까지 25년간 주 방위군으로 일했다. 그는 채드론 주립대에서 사회과학교육학을 공부했다. 이후 중국으로 넘어가 1년간 광둥성 포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미국과 영국 역사를 가르쳤다. 월즈가 ‘중국통’이라는 평가를 받고, 그의 부통령 후보 발탁에 중국이 큰 관심을 두는 배경이다. 월즈는 미국으로 돌아와 네브래스카주에서 공립학교 교사로 일했고, 1994년 동료 교사인 그웬 위플과 결혼했다. 2년 후 아내의 고향인 미네소타주 맨케이토로 이주한 월즈는 고등학교 지리 교사 및 미식축구 코치로 활동했다. 어려서부터 미식축구를 좋아한 월즈는 학생을 진심으로 가르쳤고, 그가 가르치던 시절 멘케이토 웨스트 고등학교 미식축구부는 처음으로 주 챔피언이 되기도 했다.
월즈는 WP와 인터뷰에서 “미식축구 코치로서 학교가 우승한 경험은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월즈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결혼 후 7년간 불임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2001년 딸과 2006년 아들 모두를 체외수정으로 낳았다.
민주당 대선 후보 자원봉사자로 정치 입문
월즈가 정치에 입문한 계기는 독특하다. 그는 2004년 치러진 미국 대선 때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의 선거 유세에 학생들을 인솔해 참석했다. 그런데 인솔한 학생 중 한 명이 민주당 후보 스티커를 지갑에 붙이고 있었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당하자 크게 분노했다. 다음 날 월즈는 상대편 후보인 존 케리 민주당 후보 선거 캠프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이때의 경험이 정계에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2006년 미네소타 제1선거구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6년까지 10년간 하원의원으로 활동한 월즈는 2018년 미네소타 주지사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미네소타 주지사였던 마크 데이턴이 3선 도전에 나서지 않으면서 민주당 소속 월즈에게 출마 기회가 돌아왔고, 그는 무난하게 주지사에 당선됐다. 월즈는 2022년 재선에 성공하면서 현재까지 미네소타 주지사로 일하고 있다.
월즈는 하원의원 시절 총기 관련 권리 강화, 이스라엘 지지, 송유관 건설 등을 추진한 이력으로 민주당 내에서도 온건파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주지사로 재임할 당시 기호용 마리화나 합법화, 낙태권 보호, 성소수자 보호 확대, 주 내 학생에 대한 무상 급식,중산층 세금 감면, 노동자 유급휴가 확대 등 급진적인 정책을 펼치면서 진보 성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월즈는 털털하고 온화한 이미지가 강하다. 주지사가 된 후에도 헐렁한 티셔츠와 야구 모자를 쓰고 동네 주민과 친근하게 대화하는 경우가 많아, ‘진보 성향의 친근한 아저씨’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정치적 감각에서는 ‘기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통령·부통령 후보 중 가장 적은 자산
월즈는 가장 가난한 부통령 후보라는 평가도 받는다. 블룸버그는 8월 7일 “월즈의 순자산은 민주·공화 양당의 정·부통령 후보 네 명 가운데 가장 적다”라며 “월즈 부부의 순자산은 100만달러(약 13억6700만원)에도 못 미친다”라고 분석했다. 월즈는 집을 포함한 부동산과 주식, 펀드, 채권 등을 보유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존 정치인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다만 20년 넘게 공립학교 교사로 일한 만큼 향후 수령할 연금의 가치는 최대 80만달러(약 11억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게 블룸버그의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은퇴한 공립학교 교사이자 주 방위군이었던 상황에 걸맞게 많지 않은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부족한 인지도 올리기 시급한 과제
월즈는 흑인 여성이라는 해리스의 부족한 확장성을 채워줄 러닝메이트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부족한 인지도는 한계로 꼽힌다. 20년간 주 방위군과 공립학교 교사로 일한 평범한 일생은 노동자·백인·남성 표심 공략에 유리하다. 하지만 전체 정치 인생이 미네소타주로만 한정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가 부족하다. WP가 8월 8일 “월즈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역사적 혼란에 휩싸인 선거를 불과 3개월 앞두고 본인을 알려야 하는 것”이라고 평가한 것도 이런 이유다. 월즈가 주지사로 일하면서 추진했던 정책이 ‘진보 일색’이라는 점도 확장성을 방해하는 요소다. 그가 주지사 시절 미네소타주에 도입한 무상 대학 등록금, 동성애 보호, 중산층 감세, 임신 중지(낙태) 권리 보호, 유급휴가 확대 등은 민주당 지지층 결집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중도층으로 세를 확장하는 데는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CNN은 “월즈는 민주당 내 선거 캠프 직원 사이에서 인기가 매우 높다”라며 “다만 그가 보여준 진보적 색깔이 중도층 확장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월즈 경쟁 상대는 ‘오하이오 흙수저’ J.D. 밴스

월즈와 경쟁하는 공화당 부통령 후보는 J.D. 밴스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이다. 밴스는 7월 15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상원 초선인 밴스 의원은 올해 39세로, 1952년 이래 최연소 부통령 후보다. 밴스는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 출신이지만, 예일대 로스쿨을 거쳐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일한 엘리트다. 그는 불우한 환경(약물 중독에 빠진 어머니, 폭력을 일삼는 의붓아버지)에서 10대를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밴스는 곧바로 미국 해병대에 입대해 5년간 사병으로 복무했다. 군 복무 기간 중 6개월간 이라크 전쟁에 투입되기도 했다. 군 제대 후 대학 진학을 희망한 밴스는 오하이오주립대 정치학과에 진학했고, 이후 예일대 로스쿨에서 공부했다. 졸업 후 로펌 등에서 법조인으로 일한 밴스는 2016년 공화 당원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밴스가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 건 2022년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다. 밴스는 자수성가한 ‘오하이오 흙수저’ 이미지로 보수 지지층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부족한 인지도가 한계인 월즈와 달리 밴스는 과거 여성과 민주당을 향한 강경한 발언이 재조명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특히 2016년 미국 대선 때 밴스는 공화당 후보 자리를 놓고 트럼프와 경쟁한 에반 맥멀린 후보를 지지했는데, 당시 트럼프를 ‘미국의 히틀러’ ‘바보’ ‘문화적 헤로인’ 등으로 조롱한 발언이 재소환되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월 1일 “트럼프의 선택에 대해 공화 당원 사이에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밴스에 대한 트럼프의 신뢰는 두텁다. 트럼프는 “기술과 금융 분야에서 매우 성공적인 비즈니스 경력을 쌓은 밴스는 자신이 훌륭하게 싸웠던 사람들,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오하이오, 미네소타 및 그 너머의 미국 노동자와 농부들에게 집중할 것” 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