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은 와인 애호가에게 그리 달갑지 않은 계절이다. 아이스 버킷에 담가 와인을 차게 식혀 봐도 잔에 따르면 금세 미지근해지고 레드 와인의 진한 풍미는 더운 날씨 때문에 부담스럽기만 하다. 해결책으로 와인에 얼음을 넣어 보면 어떨까? 와인 애호가라면 펄쩍 뛸 일이다. 감히 와인에 얼음을 넣다니! 얼음이 녹으면 물이 더해져서 와인 맛이 희석될것 아닌가. 하지만 그런 점을 보완하여 특별히 양조한 와인이 있다. 바로 얼음과 함께 즐기는 와인이다.
얼음을 넣을 수 있도록 만든 와인에는 몇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얼음이 녹아 와인이 묽어져도 맛의 균형을 잃지 않도록 당도와 산도가 일반 와인보다 약간 더 높다. 아로마가 약해질 것에 대비해 풍미도 더 진하다. 물이 많아지면 와인 맛이 가벼워질 수 있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도 조금 높게 만들어 보디감을 유지한다. 그런 와인으로는 스파클링이 많고 샴페인과 카바(Cava) 등 종류도 다양하다. 가장 추천할 만한 네 가지를 소개한다.


얼음과 즐기는 와인 베스트 4
모엣&샹동 아이스 임페리얼(Moët & Chandon Ice Impérial)은 샴페인 중에 최초로 얼음을 넣어 마시는 와인으로 개발됐다. 럭셔리 와인의 대명사인 샴페인의 보수적인 틀을 깨고 얼음과 즐긴다는 과감한 시도가 빛나는 와인이다. 맛이 희석될 것을 예상해 적포도인 피노 누아와 피노 뫼니에의 비율을 최대 90%까지 높여 묵직한 보디감을 추구했다. 라즈베리, 망고, 구아버, 살구 등 과일 향이 풍성하다. 일반 샴페인보다 당도를 조금높여 산뜻한 산미와 균형감도 고려했다. 회나 초밥 같은 해산물과 잘 어울리고 핑거푸드와 함께 가볍게 애피타이저로 즐겨도 좋은 스타일이다.
모엣&샹동의 아르헨티나 자회사인 샹동(Chandon)의 가든 스프리츠(Garden Spritz)는 피노 누아, 샤르도네, 세미용으로 만든 와인에 카다멈, 캐모마일, 후추, 오렌지 껍질 등을 침출한 리큐르를 블렌드했다. 레몬과 오렌지 등 싱싱한 과일 향과 허브의 쌉싸름한 풍미가 일품이다. 은은한 단맛과 산뜻한 신맛이 활기찬 기포와 어우러져 청량감을 선사한다. 가든 스프리츠에 얼음을 넣은 뒤 얇게 저민 오렌지를 잔에 꽂고 로즈메리를 띄우면 근사한 여름 칵테일이 완성된다. 모든 음식과 두루 잘 어울리지만, 낙지볶음, 떡볶이, 김치볶음밥 등 매콤한 우리 음식과 특히 궁합이 잘 맞는다.
스페인의 스파클링 와인인 카바 중에도 얼음과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꼬도르뉴(Codorniu)의 안나 아이스(Anna Ice)와 프레시넷(Freixenet)의 아이스 퀴베(Ice Cuvée)가 그것이다.
카바는 스페인 토착 청포도인 마카베오,자렐로, 파레야다로 만드는데 파인애플, 망고, 멜론 등 열대 과일과 복숭아, 살구 같은 핵과류 향이 풍부하고 질감이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커다란 잔에 카바를 따르고 얼음을 담은 뒤 레몬, 라임, 오렌지, 블루베리 등 취향에 따라 과일을 넣어도 좋고 민트, 바질, 타임 같은 허브를 더하면 맛이 한결 싱그럽다. 채소나 과일샐러드에 곁들여도 좋고 치즈를 얹은 간단한 스낵과도 잘 어울리며 가벼운 해산물 요리와도 잘 맞는다.



입맛 살리는 다양한 여름 와인 칵테일들
평상시 마시는 와인 중에도 얼음을 넣어 마실 수 있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 단맛이 있고 향이 진한 와인이라면 얼음이 녹아도 맛이 크게 변하지 않고 오히려 보디감이 가벼워져서 더운 여름에는 얼음과 즐기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에서 생산되는 브라케토 다퀴(Brachetto d’Aqui)와 모스카토 다스티(Moscato d’Asti)가 그런 와인이다. 아퀴 지방에서 브라케토 포도로 만든 브라케토 다퀴는 알코올 도수가 낮고 단맛이 나며 붉은 베리류의 아로마가 진하지만 얼음을 더하면 풍미가 산뜻해지고 당도가 낮아져 상큼함이 살아난다. 햄처럼 짭짤한 스낵을 곁들여도 좋고 초콜릿과 즐겨도 별미다.
아스티 지방에서 모스카토 포도로 만든 모스카토 다스티는 맛이 감미롭고 아로마가 향긋하며 기포가 부드러워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은 와인이다. 얼음을 넣으면 당도가 내려가면서 아로마의 신선함이 살아나서평소 단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햇빛 찬란한 여름날 느긋하게 브런치를 즐기며 마시기 딱 좋은 스타일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로제 와인인 화이트 진판델(White Zinfandel)은 얼음을 더할 때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한층 빛을 발한다. 분홍빛 와인에 담긴 얼음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과일 한 조각이나 민트로 장식하면 눈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라즈베리, 크랜베리, 자몽 등 싱싱한 과일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단맛과 신맛의 경쾌한 밸런스는 더위에 지친 입맛을 깨운다. 야외에서 바비큐를 즐길 때 얼음을 띄운 화이트 진판델을 준비해 보자. 한여름의 낭만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주정 강화 와인인 포트(Port)도 얼음과 잘 어울린다. 잔에 얼음을 가득 채운 뒤 화이트 포트와 토닉 워터를 1 대 1.5의 비율로 따르고 레몬이나 라임 슬라이스와 민트를 넣으면 모히토를 연상시키는 근사한 포트와인 칵테일이 된다. 포트와인과 토닉 워터의 비율은 입맛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
얼음과 함께 와인을 즐길 때는 얼음이 들어갈 공간을 고려해 큼직한 잔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굳이 와인 잔을 고집할 필요 없이 온더록스나 하이볼 잔을 이용해도 된다. 얼음도 이왕이면 큰 것을 사용해야 빨리 녹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프리미엄 와인은 우아한 복합미가 흐려지므로 절대 얼음을 넣어 마시면 안 된다. 막바지 무더위는 가성비 와인과 얼음으로 이겨내고 아껴둔 와인은 바람이 선선해지는 가을이 올 때까지 조금만 더참고 기다리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