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대 무역학, 전 수석무역 사장, 전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대표 사진 박순욱 기자
당시 술 취재를 꽤 오랫동안 맡고 있던 기자가 ‘그 만남’ 이후 자주 그에게 연락했던 이유는 물론 그의 외모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마케팅 담당 임원이었고, 기자들의 소통 창구를 맡은 홍보 담당 임원은 따로 있었지만, 기자는 홍보 임원이 아닌 그를 대상으로 자주 취재를 했다. 기자의 까칠한 질문을 귀찮은 내색도 없이 위스키를 얼음 잔에 편하게 마시듯, 답변을 술술 풀어나가는 해박한 입담에 감동했기 때문이었다. 위스키에 관한 한 그 어떤 질문도 그처럼 쉽고, 명확하게 답을 주는 위스키 업계 종사자는 당시 국내에 아무도 없었다. 1983년 첫 직장으로 백화양조에 입사하면서부터 위스키 영업과 마케팅을 시작한 그는 2019년부터는 자신이 세운 드링크인터내셔널의 회장으로,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고 있다. 올해까지 만 41년간 위스키 업계 종사자로 일하고 있으니, 이 기록을 깰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국내에는 앞으로도 없을 듯하다.
윈저 위스키, 임페리얼 키퍼(위조 방지 캡), 저도수(알코올 도수 36.5도) 위스키의 선두 주자 골든블루 등 그의 손을 거쳐 나간 위스키는 지금도 국내 위스키 시장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산 브랜드 위스키 역사 자체가 김 회장 한 개인의 프로필인 셈이다. 2013년에는 싱글몰트 위스키인 글렌피딕과 발베니를 유통하는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대표를 맡아, 당시 국내에 생소했던 싱글몰트 위스키 저변을 크게 확대한 주역도 그다.
김 회장이 오너인 드링크인터내셔널은 그 자신이 대히트시킨 임페리얼 위스키가 대부분의 매출을 차지하고 있다. 임페리얼의 독점 판매권을 드링크인터내셔널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김 회장이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주종은 위스키가 아니다. 샴페인, 스파클링 와인이다. 2021년 김 회장은 샴페인을 포함한 스파클링 와인 브랜드 ‘골든블랑(Golden Blanc)’을 출시했다. 제품은 프랑스 샴페인의 본고장 샹파뉴에서 만들지만, 브랜드와 패키지 디자인 등은 한국에서 했다. 말하자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품이다. 한국 회사가 만든 최초의 샴페인 브랜드인 셈이다.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만든 제품만 샴페인 이름을 허용하고 있다. 현재 골든블랑은 샴페인(5스타), 크레망(4스타), 스파클링 와인(3스타) 등 크게 세 종류의 스파클링 와인이 있다. 클럽과 유흥업소 대상인 최고급 샴페인(6스타, 7스타)도 따로 있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섞어 쓴 브랜드도 독특하다. 황금빛 버블을 상징하는 ‘골든(Golden)’과 샴페인 원액을 뜻하는 ‘블랑(Blanc)’을 합쳐 이름을 만들었다.
가장 비싼 골든블랑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에서, 기존 샴페인 제조 방식 그대로 만든 제품이고, 그보다 하나 아래 단계인 골든블랑 크레망은 제조 방식은 동일하되, 생산을 샹파뉴 밖의 프랑스에서 하는 제품이다. 골든블랑 스파클링 와인은 프랑스에서 만들지만, 샴페인보다 숙성을 짧게 하는 등 제조 방식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가장 좋아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이 골든블랑 스파클링 와인이다. 소비자 가격이 3만원대. 골든블랑 샴페인 역시 ‘마케팅 전문가’ 김 회장의 역량이 돋보인 제품이다. 프랑스 본고장에서는 샴페인이 수백 가지에 이르지만, 하나의 브랜드에 샴페인, 크레망, 스파클링 와인을 같이 생산하는 경우는 없다. 샴페인, 크레망, 스파클링 와인 브랜드가 각기 따로 있다. 그런데 골든블랑은 세 가지 스파클링 와인이 다 있다. 다만, 등급을 달리해서 3스타는 스파클링 와인, 4스타는 크레망, 5~7스타는 샴페인으로 구분돼 있다. 김 회장은 “전 세계 스파클링 와인 시장에서 하나의 브랜드에 샴페인, 크레망, 스파클링 와인이 모두 있는 브랜드는 골든블랑 하나뿐” 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와인 시장 전체는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샴페인을 필두로 한 스파클링 와인 시장은 성장세가 꾸준한 편이다. 이런 점을 모를 리 없는 김 회장은 고급 샴페인 구매층부터 합리적 가격대의 스파클링 와인 소비자까지 모두 아우르는 샴페인 브랜드 골든블랑을 내놓은 것이다. 마케팅 전문가인 김 회장의 역량이 총결집된 제품이 골든블랑이다. 골든블랑을 개발하게 된 스토리부터 김 회장에게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출시한 골든블랑 신제품을 자세히 소개해달라.
“국내 주류 시장에서 가장 큰 시장은 맥주다. 골프장을 가보면 운동 중간이나 운동 후에 시원하게 한잔 마시는 술은 대부분 맥주다.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손님들이 목을 축인다고 먼저 한잔 마시는 술 역시 맥주가 아닌가. 종합 주류 회사를 추구하는 우리에게도 그래서, 맥주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제품이 필요했다. 골든블랑 제품 중에는 스파클링 와인이 가장 저렴하지만, 이 제품마저 소비자가격이 3만원이 넘어 식당에서 마시기는 부담이 있다. 식당에서는 6만원 안팎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자가격 1만원대인 ‘가성비 갑’ 골든블랑 스파클링 와인을 출시했다. 아마 식당에서는 2만~3만원 정도를 받을 것 같은데, 알코올 도수는 다른 제품과 같은 12도, 용량도 750다. 요즘 생맥주 한 잔도 1만원이 넘는 곳이 많지 않은가? 골든블랑은 양이많아 서너 명이 같이 마실 수 있으니, 맥주보다 오히려 더 실속 있는 ‘식전주’가 될 것으로기대한다.”
국내 하이볼 시장에 대한 평가는.
“현재 국내 하이볼 시장의 문제는 위스키 본연의 맛이 아니라 토닉워터의 단맛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고품질의 위스키보다는 주정이나 저급 위스키를 사용해 가격을 낮추는 데만 급급한 상황이다. 편의점 업계가 요구하는 중저가 가격대를 맞추려면 하이볼 제조 업체들도 고급 재료를 쓰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하이볼 시장이 오래 가려면 일본처럼 위스키마다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고품질의 하이볼이 유행해야 한다.”
연간 매출이 4조원이 넘는 한국 소주는 외국산 농산물로 만들어, 국내 농산물 소비를 외면하고 있다. 국내 소주 시장을 어떻게 보나.
“정부가 세수의 안정적 확보를 이유로 소주 시장 진입 문턱을 지나치게 높여, 시장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저해했다. 업계도 정부의 비호 아래 그동안 경쟁 없는 성장을 누려왔다. 변화와 혁신을 거부했다. 다양한 소주가 세상에 나오지 못한 것은 정부의 세제 때문이다. 고급 원료를 쓸수록 세금을 많이 매기는 종가세(가격에 세금을 부과하는 형태로, 제조원가가 높을수록 높은 세금을 낸다)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화요, 일품진로 같은 술은 정말 좋은 술인데도 세금 구조상 더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나지 못해 안타깝다. ‘개성 있는 소비’가 주류 문화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는 이 시점에 새로운 스타일의 증류식 소주가 점점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주세가지금의 종가세에서 종량세(제조원가 상관없이 술 양에 세금을 매기는 형태로, 고급술일수록 세금 비중이 낮아진다)로 전환되면 정말 좋은 술이 쏟아질 것이다.”
증류식 소주 개발은 하고 있나.
“우리가 내놓을 가격대의 소주가 안착할 수 있는 여건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종가세인 세금 정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주세가 바뀔 것으로 보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주 레시피는 공개할 단계가 아니지만, 세상이 깜짝 놀랄 술을 준비하고 있다고만 얘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