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7월 19일 시행된 이후 한 달이 지났다.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시행되었단 사실이 크게 뉴스가 안 될 정도로 시장은 안정적이다. 작년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후 업계와 감독 당국이 1년 동안 제도 안착을 위해 준비해 온 결과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거래량 감소와 시장 정상화
첫 번째로 살펴볼 부분은 가상자산을 대표하는 암호화폐 국내 시장 거래량이다. 국내 암호화폐 5개 거래소의 8월 20일(지난 24시간 기준) 거래량은 15억달러(약 2조238억원)였다. 같은 기간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량은 591억달러(약 79조7377억원)로, 국내 거래량이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6%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량이 최대치를 기록했던 2021년 4월 국내 거래량이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20%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국내 암호화폐 거래량이 정상 범위로 들어왔다고 판단된다. 8월 19일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하루 거래 대금이 16조8000억원인 것과 비교해 보아도, 암호화폐 거래 대금 약 2조원은 상식적인 수준이다.
이것은 암호화폐 유통시장에 대한 아무런 법적 규제가 없던 시기에 국내 암호화폐 시장의 과도한 거래량이 비정상적이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비트코인 가격 급등 소식을 이용해서 너도나도 빈껍데기 암호화폐를 상장하고, 자기들끼리 자전 거래로 가격을 띄우고, 이를 보고 몰려온 투자자에게 팔아넘기는 수법(pump-and-dump)이 만연하던 때였다. 시세조종, 미공개 정보 이용, 허위 사실 유포 등 부정행위를 국내 시장에서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던 시기였다.
여기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시행 전후의 거래량을 직접적으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법 시행 이전 거래량이 투자자의 진성 거래인지 확인할 방법이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 시행 이후 거래량이 감소했다는 사실을 가지고, 규제 때문에암호화폐 시장이 침체했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과거 거래량과 가격을 부풀리던 불공정 거래가 사라졌기 때문에 거래량이 줄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이러한 현상은 시장의 침체가 아니라 시장의 정상화다.
금융시장 영향, 깊이 있게 논의해야
두 번째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이후의 향후 정책적 과제다. 암호화폐에 대한 2단계 입법과 금융기관, 기관 투자자의 암호화폐 투자 허용 등에 대한 요구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과거 불공정 거래와 비정상적인 거래를 통해 업계가 누렸던 비정상적인 이익은 사라졌다. 따라서 현재 시장 참여자 수준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투자자가 확대되어 거래량이 합법적으로 증가해야 한다. 또한 혁신적인 블록체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등장한다면 투자자 자금이 예전처럼 크게 유입될 것이라고 기대할수 있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국내에서 암호화폐를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ICO(Ini-tial Coin Offering) 허용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2017년 12월 13일 암호화폐 관련 긴급 대책을 발표하면서 제도권 금융회사의 암호화폐 신규 투자가 투기 심리를 자극하지 않도록 금융기관의 암호화폐 보유, 매입, 담보 취득, 지분 투자를 금지한 바 있다. 또한 해당 긴급 대책에서는 국내의 ICO도 금지한 바 있다. 긴급 대책이 발표된 지 7년 가까이 흐르는 동안 국내외적으로 암호화폐를 둘러싼 규제 환경과 거시 금융 환경 모두 급변했다. 따라서 정부의 기존 입장은 현재 상황에 맞게 수정할 필요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기존 입장을 새로 수립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암호화폐 시장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그 의의에 대한 엄밀한 분석이 수반되어야 한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개최됐던 수백 번의 암호화폐 세미나에서 업계의 입장은 한결같았다. 규제는 혁신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2000년 초 닷컴 버블처럼 혁신에는 버블이 필연적이다. 블록체인은 인터넷 다음의혁신 기술이다. 지금 우리에게 어떤 혁신적 블록체인 기술이 남았는지 반추해 보면, 업계의 의견을 수용하는 데는 항상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전통 자산과 동조화하는 비트코인
세 번째는 개인 투자자가 암호화폐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미국 암호화폐 ETF(Exchange Traded Fund·상장지수펀드) 허용 현황, 암호화폐에 대한 미국 법원의 증권성 판단, 오는 11월 대선을 치르는 미국 대통령 후보의 암호화폐 관련 공약 등에 일희일비하며 투자할 필요는 없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왜 유독 비트코인이나 암호화폐에 대한 뉴스가 이렇게 화제가 될까 의문을 가졌었다. 필자의 해답은 한국 사회 시스템상 연금 체계가 빈약하고, 평균 근로 기간이 짧으며, 고소득 직장도 극소수이기 때문에 노후 대비를 위한 재테크가 국민 모두의 최고 관심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10년 전 개당 20만원 수준이었던 비트코인이 현재 개당 최고 1억원까지 500배 상승했다는 뉴스는 모두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불공정 거래가 난무하던 시절 가격이 하루에 몇백 배가 폭등하는 알트코인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에 수두룩했으니, 전 국민적인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글로벌 비트코인 가격을 주도하는 것은 미국의 일부 기관 투자자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로 인해 헤지펀드 같은 일부 기관 투자자가 암호화폐 투자를 본격화하면서 비트코인 가격은 전통 금융자산 가격과 동조화되고 있다. 즉 비트코인은 더 이상 탈중앙화의 상징도 아니고, 달러에 대항하는 화폐는 더더욱 아니며, 위험 자산 중 하나일 뿐이다. 금리가 떨어지면 당연히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 것이지만, 다른 자산 가격도 오를 것이라는 점을 명심한다면 암호화폐 투자를 할 때 객관적 시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