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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서울대 경제학 학·석·박사, 옥스퍼드대 명예 펠로, 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 교섭 민간자문위원회 위원, 전 대외 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박사, 옥스퍼드대 명예 펠로, 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 교섭 민간자문위원회 위원, 전 대외 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아프리카의 앞날은 밝다.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몇 가지 문제가 남아 있지만, 상황은 호전될 것이다. 21세기는 아프리카의 세기가 될 것이다.” 

2023년 12월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관계자는 아프리카의 미래에 관해 이런 낙관적 전망을 내놨다. 가장 중요한 근거는 폭발적인 인구 증가다. 역동적인 경제성장으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 왔던 동아시아, 큰 시장과 높은 기술 수준으로 세계경제를 주도했던 서방 선진국이 인구 정점을 지나 감소하는 동안 아프리카는 급격히 낮아지는 사망률과 높은 출산율 덕분에 인구가 크게 늘었다.

늘어나는 인구는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경제성장은 투입 노동량과 자본양 그리고 생산수단을 잘 결합하는 기술 수준, 적절한 동기부여로 이어지는 투명하고 효율적인 제도에 의해 결정된다. 이렇게 본다면 공급 측면에서 주요 요소인 투입 노동력 향상은 분명 경제성장을 촉진할 것이다. 수요 측면에서도 급격한 인구 증가는 수요 폭발로 이어지기 때문에 경제성장에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결국 인구 증가는 수요와 공급, 양 측면에서 경제성장을 가속화한다. 이것을 인구 배당(population dividend)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고도 성장기가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와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구 증가의 축복으로 기회 맞은 아프리카

아프리카 식민지들이 너도나도 독립했던 1960년대 초반, 불과 2억8000만 명 수준에 불과했던 아프리카 인구는 2024년 15억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해 보더라도 6억 명 이상 늘었다. 지금 아프리카는 20여 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젊은이로 채워져 있다고 봐야 한다. 중위(median) 연령이 20세가 되지 않는 아주 젊은 국가가 다수다. 유엔(UN)이 내놓은 2050년까지의 인구 전망을 보면, 아프리카 성장세는 인상적이다. 2050년까지 아프리카 인구는 9억5000만 명이 더 늘어나 25억 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00년 세계 인구의 13%를 차지했던 아프리카 인구는 2050년까지 26%, 2100년에는 38%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몇십 년 동안 매년 1200만 명의 젊은이가 노동시장에 진입해 아프리카 경제를 더욱 역동적으로 바꿀 것이다. 2023년  9월 국제통화기금(IMF)도 ‘아프리카 세기(African Century)’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2050년까지 세계 인구 증가의 절반 이상을 가져갈 여덟 개 나라 중 5개국이 아프리카 국가인데 이러한 변화가 세계 질서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구 배당이 현실화하기 위한 조건

처음 언급한 마라케시 국제회의로 돌아가 보자. 인구 증가가 아프리카에 기회를 줄 것이라는 그의 발언에 대한 청중의 반응은 오히려 차분했다. 인구 증가가 경제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순조로운 성장이 지속하려면 다른 많은 조건이 충족돼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은 투입된 노동량의 증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자본양과 기술 수준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장을 촉진하는 제도적 요인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많은 아프리카 국가는 자본 축적에서 문제를 겪고 있다. 자본 축적은 선진국의 공적개발원조(ODA)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자본이 지속적으로 투입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 자본에 매력적인 투자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투자 기회가 그야말로 투자 수익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교통, 통신, 행정 등 간접자본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아프리카는 여전히 부족하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디지털 전환과 녹색 전환 등 새로운 기술 혁명은 아프리카 국가의 자생적 성장 기회를 오히려 좁히고 있다. 디지털과 그린 산업에서뿐만 아니라 전통적 제조업이 새롭게 디지털화, 그린화하면서 동종 산업에서 생산성 격차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의 장점이 낮은 인건비라면 디지털 시대에 낮은 노동 비용은 더 이상 매력적인 요소는 아니다. 새로운 기술의 확산은 유럽, 동아시아 국가로 더 빨리 퍼져나갈 것이다. 사헬 지역을 포함한 몇 나라에서는 꾸준히 늘어나는 국내 정치적 위기가 무력 충돌로 발전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길게 볼 때 아프리카 국가의 정치적 불안정은 점차 줄었지만, 최근 니제르, 부르키나파소, 말리, 차드, 기니 등 중부와 서부 아프리카에서 다시 정치 불안정이 고개를 들고 있다. 2020년 이후 이 지역에서는 여섯 번의 성공한 쿠데타와 두 번의 실패한 쿠데타가 있었다. 아직도 아프리카 국가 중 22개국이 정치적 불안정 국가로분류된다. 안보 위협은 최악의 투자 환경이다. 결국 인구 증가가 자동으로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제성장을 제약하는 다른 요인

아프리카가 갖고 있는 독특한 제약 조건에도 주목해야 한다. 아프리카 동부는 수단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남북으로 이어진 고원지대다. 서부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는 독특한 지형이다. 그 결과 고지대가 갑자기 바다와 만나거나 서부의 늪지대가 바다로 이어지면서 대규모 항구를 만들기 어렵다. 운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큰 강은 경제성장에 필수다. 하지만 잠베지강, 니제르강 등 아프리카의 강은 유럽과 달리 고도차가 크고 유속이 빨라 내륙 운송에 불리하다. 유럽과 달리 아프리카에 내륙국이 많은 것도 경제 발전에 큰 제약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풍토병은 아프리카인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있다. 말라리아 등으로 매년 800만 명이 사망한다. 이는 인구의 0.5%에 달하는 높은 비율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사막화가 빨라지면서 기아와 난민이 발생, 경제성장은 고사하고 생존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이 밖에도 식민지 유산에 따라 부족과 민족에 따라 나뉘지 않은 국경 구획은 여전히 문제다. 나이지리아는 200개가 넘는 종족이 하나의 나라를 구성하고 있다. 큰 세 개의 부족은 지역, 종교, 산업, 경제적 지위 등 여러 측면에서 정체성이 각기 다르다.

역동성을 발판 삼아 미래로

마라케시에서 만난 아프리카 청년들은 재능 있고 야심 찬 애국적인 젊은이들이었다. 아프리카를 사랑하는 그들에게서 미래를 봤다. 하지만 그들은 선택받은 극소수의 사람이다. 2023년 현재 4억6000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이 여전히 극심한 빈곤 속에서 미래를 기약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성장률도 경제 규모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2022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평균 성장률은 3.6%에 불과했고, 2023년에는 2.5%로 주저앉았다. 2023년 동아프리카는 1.8% 성장했을 뿐이다.

인구 배당으로 경제성장의 조건 하나는 충족될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부분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열악한 기본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 혁명과 역동성이 없다면, 아프리카 경제의 도약은 요원한 일이 될 수 있다.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