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타트업, 기술 대기업의 경영자와 한국 경영자 간 큰 차이를 하나 꼽으라면 ‘사고 리더십(Thought Leadership)’이다. 물론 훌륭한 리더는 사고방식과 실행 그 자체에 리더십이 있지만, 미국의 사고 리더십은 좀 다르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기 전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왜 이렇게 X(옛 트위터)를 많이 하는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왜 유튜브에 진심인지 이해를 못 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보니, 젊은 신생 기업 창업자도 소셜미디어(SNS)를 활발히 하고 있고, 창업자의 트위터 활동을 권장하는 투자자도 많이 봤다. 심지어 ‘빌드 인 퍼블릭(Build in public)’이라고 사업의 성장 과정과 주요 지표를 SNS에 공유하는 문화도 활발하다. 과거에는 그냥 문화 차이, 또는 돈 많은 사람의 사회 공헌 활동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작부터 모든 인류를 대상으로 혁신을 추구하는 창업자는 대부분이 동의하지 않는 미래가 맞다고 설득하고, 시장을 만들고, 인재와 자본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세계 최고의 벤처 투자사 앤드리슨 호로비츠는 2011년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 치운다’라는 칼럼을 기고하며 뛰어난 인재들이 그들이 생각하는 흐름(narrative)을 따라서 창업하도록 이끌고 펀드를 모아 투자했다. 일론 머스크는 전기차 설계 도면을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테슬라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업이 바뀌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졌고, 세상은 그 방향으로 조금씩 향해 갔다.
사고 리더십이란 기업 활동과 관련된 임직원, 주요 파트너를 포함한 산업과 생태계 그 자체를 이끌고 움직일 수 있는 생각과 행동 그 자체다. 몇몇 창업자는 사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는 영역에선 창업 자체를 하지 않는다. 충분히 혁신적이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창업자와 투자자는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사고 리더십을 갖추기 위해 문제를 정의하고, 의심하고, 생각을 키워봤다가 미래를 예측해 보기도 하고, 미래에 이미 살고 있다고 가정한 후 현재를 바라보기도 한다. 이를 통해 ‘세상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가다듬어 대중, 인재, 산업 전반의 이해 관계자를 대상으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필요한 일을 실행한다.
스타트업 창업자가 시리즈 A에서 B 단계 펀딩을 받으면 투자사가 미디어 트레이닝 전문가를 붙여준다. 기업의 스토리와 메시지를 가다듬고 언론과 대중을 대상으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창업자를 훈련한다. 때로는 SNS 전문가에게 운영 대행을 맡길 것을 권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유명 PR 에이전시 식스이스턴(SixEastern)의 CEO 에밀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비전과 미션이 선명해야만 인재와 자본시장으로부터 관심받을 수 있다. 욕먹지 않는 것보다 때론 욕을 먹더라도 지지자를 얻고 지지를 공고히 하며, 비판을 들으면서 개선해 나가는 게 더 좋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에서 아직도 스타트업의 왕도는 해외의 것을 잘 배워 한국에 도입하는 것이다. 젊은 창업자와 투자자, 창업 지원 제도가 10년 뒤 미래를 이끌 생각을 하는 사람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쫓아가는 것에 최적화돼 있다 보니 애초에 자신의 생각과 비전을 공공연히 말하기가 어렵다. 쫓아가는 데 급급한 사람이 제국을 건설할 사고 토대를 세우기란 쉽지 않다. 특히 한국에서 국내 기업과 경쟁하는 기업의 경우 회사를 키우려면 다양한 사업으로 빨리 확장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뾰족한 생각을 공공연히 말하거나 지표를 공개하며 고객,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 쉽지 않다.
반면 일본 창업자는 트렌드를 좇지 않고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실현하고 완성하겠다는 생각으로 창업하는 사람이 많다. 성공 확률이 낮을지언정 시작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사업을 펼치는 독특한 기업도 많다. 인건비, 운영 효율화로 세계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기업을 만들 수 있는 시절은 오래전에 지나갔다. 세계시장에서 사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창업자, 인재를 키우고 지원하려면 우리의 생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