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을 두른 프라이팬 위에서 계란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고 있다. 프라이팬이 얼마나 뜨거우면, 계란 위로 연기가 피어오를 정도다. 필자는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계란이 익어가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다. 이 뜨거운 땡볕 아래, 이글거리는 돌바닥을 걸으며, 나 자신이 그 계란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날씨 뉴스를 보니, 서울은 28일 연속 열대야를 기록하며 118년 관측 사상 가장 긴 열대야를 기록했다고 한다. 올여름 서울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폭염과 열대야로 고통받고 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실내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행위는 초대형 오븐의 열기를 온몸으로 견디는 체험처럼 느껴진다.
다만 지금 필자가 걷고 있는 이 뜨거운 돌바닥은 대한민국 서울이 아닌,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다. 마침 카카오톡으로 어머니가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한국은 저녁에도 너무 더워서 식사할 때 입맛이 없어. 그곳은 얼마나 아름답고 날씨도 좋을까? 조심히 다니렴.” 베네치아가 워낙 아름다운 도시로 유명하긴 하지만, 이곳도 현재 낮 기온이 35℃를 우습게 넘고 있어서 어머니가 부러워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이곳 베네치아에서는 현재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1895년 개최 이후 올해 60회를 맞는 국제 현대미술 전시회다. 2년에 한 번 개최되며 역사, 규모, 내용 면에서 전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계의 올림픽’으로 불린다. 현재 및 미래의 미술 경향과 향방을 가늠할 수 있으며, 기술의 발전과 융·복합 장르의 선호 현상으로 인해 현대음악의 접목 시도도 많다. 필자도 계획 중인 공연 프로젝트에 영감을 얻기 위해 되도록 꼭 방문하곤 한다. 현대미술 전시 외에도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음악, 무용, 연극, 건축, 영화 등의 행사도 개최하며 여전히 세계 문화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음악에서는 궁정이 아닌 시민을 위한 세계 최초의 오페라 극장이 1637년에 개관했으며, 몬테베르디, 프란체스코 카발리, 비발디, 로시니, 벨리니 등 당시 유럽 최고의 음악가가 이곳에서 활동했다.
그중 안토니오 비발디가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곡가일 것이다. 심지어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비발디의 작품 ‘사계’의 일부를 영화, 드라마, 대중음악에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계’는 비발디가 1725년 발표한 ‘Il cimento dell’armonia e dell’inven-tione(조화와 창작을 위한 시도)’라는 작품집에 실린 네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각각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 네 작품이 가장 많이 연주되기에 후에 따로 묶어 ‘사계’로 불리며 연주되고 있다. 따스한 봄 햇살 아래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는 ‘봄’, 습기로 가득 찬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한 ‘여름’, 추수의 즐거움이 깃든 ‘가을’, 황량한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는 ‘겨울’을 감상하다 보면, 계절마다 변화하는 자연과 그것과 함께 어우러진 인간의 삶이 참으로 아름답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초반에 언급했듯이, 계란프라이가 프라이팬 위에서 타들어 가는 듯한 베네치아의 돌다리를 건너며 의문이 생겼다. 비발디 ‘사계’의 ‘여름’에서는 이런 위협적인 폭염보다는 오히려 비바람이 가져다주는 드라마틱한 감정이 더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중요한 이슈인 ‘기후변화’ 때문에 필자가 이곳에서 느끼는 여름은 더 이상 비발디의 여름과 같지 않은 걸까.
실제로도 15세기 초부터 비발디가 ‘사계’를 작곡한 18세기 초반까지는 소빙기(小氷期)라고 한다. 이 소빙기에 유럽은 지금보다 평균기온이 더 낮았고, 겨울도 더 길었다고 한다. 런던의 템스강, 파리의 센강 등 현재는 잘 얼지 않는 강도 당시에는 자주 얼어붙곤 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소빙기가 끝나가며 기온이 포근해질 무렵, 산업혁명으로 인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이에 맞춰 화석연료 사용과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지구의 온도는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2021 기후변화 6차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대의 평균 지구 온도는 1850~1900년의 온도에 비해 약 1.1°C 상승했다고 한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2023년에는 심지어 산업혁명 이전보다 약 1.45°C 상승했으며, 1980년 이후로 매년 지구의 온도는 예외 없이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을 비롯한 중부, 남부 유럽의 폭염 문제와 남북극의 빙하가 녹아가며 해수면이 상승해 베네치아를 포함한 고도가 낮은 지역의 삶이 위협받는 등, 비발디가 경험했던 18세기의 ‘사계’는 차치하더라도, 현대의 다수가 공유하는 ‘어렸을 적의’ 사계절은 점차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흥미로운 음악 프로젝트가 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The [Uncertain] Four Seasons([불확실한] 사계)’라는 프로젝트다. 이는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작곡가 휴 크로스웨이트, 독일의 광고 에이전시 ‘융 폰 맛(Jung von Matt)’ 등이 함께 기획한 다국적 음악 프로젝트로, 비발디가 작곡할 당시인 1720년대의 사계절이 2050년에는 어떻게 변화하고, 그 변화가 음악에 어떻게 반영될지를 다룬다. IPCC는 현재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상황인 ‘기후변화 시나리오 RCP 8.5’가 2050년까지 지속된다면, 전 세계 평균기온이 4.8°C 상승하고, 한반도는 6°C 상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불확실한] 사계’ 프로젝트는 RCP 8.5 상태의 2050년 지구의 사계를 인공지능(AI)을 통해 분석하고, 이를 비발디의 ‘사계’ 음악에 반영한다. 유튜브에 있는 연주 녹음을 들어보면, ‘사계’ 중 ‘봄’에서 바이올린이 표현하는 새의 아름다운 노래가 몇 초 뒤 갑자기 끊기고, 한참의 정적이 이어진다. 이후 음악은 사계절이 아닌, 시종일관 종말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프로젝트가 지난해 9월 KAIST와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의 협업으로 진행됐다. 역시 기후변화 시나리오 RCP 8.5가 2050년까지 지속된다는 가정하에 AI가 해당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발디의 ‘사계’를 변화시킨 곡이 연주됐다. 이 연주에서도 비발디 본래의 음악 사이사이에 불협화음이 등장하고, 그의 음악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구조와 박자, 화성이 무너져가며 아포칼립스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프로젝트에서 음악감독을 맡은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은 한 방송사와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비발디의 ‘사계’를 불협화음과 공포감을 자아내는 음악으로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필자는 이 불협화음과 공포감이 기후변화에 대한 강력한 대처가 없으면 우리가 20년 내에 맞이하게 될 미래의 일상적인 감정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걸음은 어느덧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도착했다. 비엔날레 정원에 자리한 독일관에서 한 영상 작품을 관람했다. 영상에서는 여러 동물 탈을 쓴 무용수가 달밤에 의식을 거행하듯 춤을 추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작가는 설명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지구를 떠나는 이들을 위한 세리머니라고 말한다. 이들이 떠나는 새로운 행성에서도 또 다른 파괴가 시작될 것인지 머릿속에 불쾌한 생각이스쳐 지나간다.
부디 50년, 100년 뒤에도 비발디의 ‘사계’ 가 노래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 유효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