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 저전마을은 일명 ‘정원마을’로 불린다. 집 대문 앞, 담벼락, 모퉁이마다 작은 정원이 만들어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계절마다 다른 꽃을 심고 정성 들여 정원을 가꾼다. 어느 여름날, 마을 길을 걷고 ‘순천만국가정원’과 선암사를 여행했다.
마을에 정원만 16개 ‘저전마을’
순천 저전동은 마을에 정원만 16개에 달해 ‘정원마을’로 불린다. 아주 한적하고 고요한 마을이다. 낮은 지붕의 집들 사이로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작고 다정한 정원을 만날 수 있다. 마을 곳곳마다 자리한 정원은 ‘보랏빛 향기 정원’ ‘수더분 정원’ ‘오월의 정원’이라는 예쁜 이름을 달고 있다. 한두 평 공터라도 있으면 어김없이 푯말이 서 있다. ‘빗물 가로정원’ ‘한 평 정원’ ‘골목 정원’ ‘건강 정원’ ‘세모 정원’ ‘숲먹거리 정원’ ‘저전성당 역사정원’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웃사촌 정원’ 이란 이름도 자주 눈에 띈다. 사유지에 있지만 마을을 찾은 방문객도 구경할 수 있는 정원을 뜻한다. 마을에는 모두 7개의 이웃사촌 정원이 있다. 주민들은 서로 ‘꽃 나눔’을 하고, 꽃 관리 노하우도 공유한다.
저전마을이라는 이름은 닥나무에서 비롯됐다. 닥나무 저(楮)에 밭 전(田)을 쓴다. 옛날에 이곳에 닥나무가 많았고, 닥나무가 종이의 원료가 되니 제지 산업이 발달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마을을 걷다 보면 ‘아, 여기서 한 달 정도만 딱 살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골목에는 예쁜 벽화도 그려져 있다. 과한 수준이 아니고 딱 보기 좋은 만큼이다. 아마도 이 골목의 주인이 꽃과 정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꽃을 보며, 벽화를 감상하며 천천히 걷다 보면 ‘남승룡 정원’과 만난다. 저전마을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3위를 차지한 마라토너 남승룡(1912~2001) 선수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발걸음은 저전 성당에 닿는다. 100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순천에서 가장 오래된 천주교 성당이다. 성당도 도시 재생 사업에 참여해 높은 담장을 허물고 성당 옆길을 새로 텄다. 유휴 공간은 마을 방문객을 위한 무료 주차장으로 탈바꿈했다. 성당 앞 벚나무가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출발점으로 되돌아왔다. 천천히 걷다 보니 약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개천 옆 원두막에 노인 네 명이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마을이 매우 이쁘다고 말하니 탤런트 최수종, 하희라 부부도 열흘 넘게 머물다 갔다고 한다.
찬란한 여름 햇살 속 정원을 걷다
순천에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정원이 있다. 이름도 거창한 순천만국가정원이다. 이름 그대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원이다. 순천만국가정원 서문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습지를 만난다. 습지는 여름 햇살 속에서 눈부신 색상으로 반짝이고 있었는데 모네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추천 코스는 서문으로 가 동문 쪽으로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걷다가 다시 서문으로 나오는 코스. 약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입장료 1만원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연간 입장권도 팔고 있는데, 순천에 산다면 연간 입장권을 사 이곳에 매일 오고 싶을 정도다.
순천만에도 가보자. 전남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자리한 순천만은 세계 5대 연안 습지 중 하나로, 연안 습지 중 최초로 ‘람사르 협약’에 등록됐다. 순천만을 알게 된 계기는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 때문이었다. 한국문학사에서 빛나는 소설가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김승옥. 대학 시절 그의 소설을 열심히 읽었고, 그의 대표작 무대가 된 순천만은 꼭 한번 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렇게 찾은 순천만. 새벽안개가 점령한 우윳빛 갈대밭은 ‘무진기행’에 나오던 그대로였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이후 자주 순천만을 찾았지만, 이곳에서 맞이하는 노을은 찾을 때마다 한국 최고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걷기 좋은 숲길을 가진 절
순천에는 꼭 가봐야 할 절집이 있다. 선암사다. 선암사는 절도 절이지만, 매표소에서 절까지 이어지는 숲길이 정말 좋다. 이팝나무, 서어나무, 굴참나무, 팽나무, 조팝나무, 산딸나무, 느티나무가 우거진 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몸과 마음이 깨끗하게 씻기는 기분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는 승선교가 있다. ‘선녀들이 승천한다’는 뜻을 가졌는데, 아치형의 다리는 이름만큼이나 아름답다.
승선교를 지나면 아담한 절이 나타난다. 빛바랜 기왓장과 모서리가 닳아 둥그스름해진 돌계단. 바람이 불어 풍경이라도 울리면 마음 한구석이 환해지는 느낌이 든다. 대웅전은 절 규모에 비해 그리 크지 않지만 단아한 느낌을 물씬 풍긴다. 선암사의 또 다른 명물은 해우소다. 우리나라 사찰 재래식 해우소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된 화장실이기도 하다. 그 생김새부터가 눈길을 잡아끄는데, 정(丁) 자형으로 우아하게 들어앉은 모습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생긴 화장실’답다. 정호승 시인은 ‘선암사’라는 시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고 위로하기도 했다.
여행수첩
선암사 앞에 장원식당, 길상식당, 선암식당 등 산채를 내는 집들이 있다. 선암사 가는 길 쌍암기사식당과 진일기사식당도 백반을 푸짐하게 차려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쌍암기사식당은 뷔페식으로 바뀌었다. 순천 웃장은 1920년 조성된 전통 시장. 웃장의 국밥집들은 선술집 형태의 국밥집으로 운영하다가 언제부터인가 순천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을 정도로 명성을 얻고 있다. 제일식당과 향촌식당, 쌍암식당, 황전식당, 순복식당, 백가네 등이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