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빌리 아일리시와 함께한 구찌 홀스빗 1955 광고 캠페인./사진=구찌 2 올 상반기 샤넬의 국내 백화점 매출은 전년 대비 1% 감소했다./사진=샤넬
1 빌리 아일리시와 함께한 구찌 홀스빗 1955 광고 캠페인./사진=구찌 2 올 상반기 샤넬의 국내 백화점 매출은 전년 대비 1% 감소했다./사진=샤넬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명품 수요가 감소하면서 최고급 명품으로 꼽히는 샤넬마저 백화점 매출이 감소했다. 조선비즈가 입수한 국내 명품 브랜드 매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샤넬의 백화점 매출은 전년 대비 1% 감소한 5142억원으로 집계됐다. 유통 업계에 따르면 샤넬의 백화점 매출이 마이너스 성장한 건 1997년 샤넬이 국내에 첫 백화점 매장을 낸 이래 처음이다.

업계에선 샤넬이 지난 3월 갤러리아 명품관 매장 운영을 20일간 중단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샤넬은 주변 매장이 자사 매장을 가린다는 이유로 해당 매장의 운영을 중단했다. 업계에 따르면, 이 매장의 하루 매출은 평일은 5000만원, 주말은 1억원 수준으로 전해진다. 

상반기 백화점 명품 20개 중 11개 마이너스 성장

샤넬만이 아니다. 국내에서 백화점 매장을 운영 중인 명품 브랜드 20개 중 11개 브랜드가 올 상반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6월 매출만 놓고 보면 14개 브랜드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감소했다. 구찌(-24%), 펜디(-26%), 버버리(-17%), 살바토레페라가모(-15%)는 상반기 백화점 매출이 두 자릿수 뒷걸음질 쳤고, 발렌시아가(-2%), 보테가베네타(-2%), 생로랑(-2%), 셀린(-1%) 등 인기 명품도 매출이 줄었다.

반면, 샤넬과 함께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로 불리는 최고급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매출은 전년 대비 20% 증가한 4029억원을 기록했다. 20개 명품 중 매출 규모가 가장 큰 루이비통도 같은 기간 매출이 3% 증가한 7441억원으로 자존심을 지켰다. 디올(2%), 프라다(1%), 미우미우(75%), 고야드(24%) 등도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갔다.

명품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기간 이른바 보복 소비(억제됐던 소비가 분출하는 것) 여파로 2022년까지만 해도 백화점 매출 증가율이 30%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엔데믹(endemic·감염병 주기적 유행) 이후 해외여행 등에 소비가 쏠리고, 경기 불황으로 명품 수요가 줄면서 지난해부터 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둔화했다.

올 상반기 20개 명품의 백화점 매출액은 전년 대비 3% 증가한 4조241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주요 명품이 가격을 인상하고, 신규 매장을 출점한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이나 다름없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한 명품 업계 관계자는 “내수 부진의 여파가 명품 업계에도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있다”면서 “특히 샤넬 매출이 주춤한 건 안 좋은 신호”라고 지적했다.

명품 업계는 면세 매출을 끌어올려 부진을 상쇄하는 분위기다. 샤넬의 경우 상반기 면세 매출이 111% 증가한 1474억원을 기록했다. 생로랑, 발렌시아가, 셀린, 버버리 등도 면세 매출이 두 자릿수 증가하면서 백화점에서 빠진 매출 공백을 메웠다.

이와 함께 주얼리·시계 등도 강화하고 나섰다. 명품 보석은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희소성이 높아 최상류층 고객의 선호도가 높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명품 매출이 부진한 가운데 부쉐론(28%), 불가리(26%), 반클리프앤아펠(20%), 까르띠에(18%)의 백화점 매출은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조용한 럭셔리 열풍에 뒤바뀐 글로벌 명품 지도

주요 명품 업체 매출이 줄어든 데는 명품 수요 감소와 함께 트렌드 변화도 한몫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래퍼 등 신흥 부자를 중심으로 부(富)를 과시하는 ‘플렉스(flex)’ 문화가 부상하면서 큰 로고와 형형색색의 문양 등을 앞세운 구찌와 발렌시아가 등이 인기를 끌었다. ‘잇츠 소 구찌(It’s so Gucci)’라는 말이 ‘멋지다’와 동의어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명품 업계는 절제되고 우아한 느낌이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가 대세다. 상속으로 부(富)를 축적한 최상류층 소비자가 명품인 걸 드러내지 않는 단조롭고 기품 있는 옷차림을 즐기는 걸 빗대 ‘올드 머니(old money) 룩’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할리우드 배우 귀네스 팰트로가 스키 리조트 사고로 법정에 출석하면서 선보인 차림새처럼, 캐시미어나 실크 같은 고급 소재의 옷을 정숙하게 입는 식이다. 대표 브랜드로는 랄프로렌, 로로피아나, 브루넬로 코치넬리를 비롯해 미국 아역 배우 출신 올슨 자매가 만든 더로우 등이 꼽힌다.

영국 패션 검색 플랫폼 리스트(Lyst)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더로우의 검색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93% 증가했다. 이 브랜드의 대표 상품인 ‘마고백’의 검색량은 같은 기간 198% 급증했다. 이 상품은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모양의 가죽 가방으로 K팝 걸그룹 블랙핑크 제니, 배우 정유미 등이 들면서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현란한 로고를 앞세워 인기를 끌던 구찌, 발렌시아가, 생로랑 등의 매출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 브랜드를 보유한 프랑스 명품 그룹 케링에 따르면, 구찌의 올 상반기 매출은 전년 대비 20% 줄었고, 생로랑의 매출은 9% 감소했다. 주력 브랜드의 부진으로 올 상반기 케링그룹의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감소한 90억1800만유로(약 13조3533억원)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42%가 줄었다. 같은 기간 루이비통과 디올, 펜디 등을 보유한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상반기 매출은 417억유로(약 61조7469억원)로 1% 줄었다. 케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행을 덜 타는 브랜드를 보유했지만, 중국 등 아시아 시장매출이 10%가량 감소한 것이 매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명품 중의 명품’을 추구하는 우버 럭셔리(Uber Luxury·최고 사치품) 브랜드 에르메스는 상반기 매출이 전년 대비 12% 증가하며 변함없는 명성을 자랑했다. 

김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