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찾은 스코틀랜드 스카이섬에 있는 탈리스커(Talisker) 증류소. 섬 북서쪽 하포트(Harport) 호수 기슭에 있는 증류소에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신선하고 강렬한 바다 향이 묵직하게 퍼져 있었다. 덕분에 탈리스커가 강조하는 ‘바다에서 만든 위스키(made by the sea)’라는 브랜드 설명을 곧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쉬지 않고 6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이곳은 1830년부터 200년 가까이 위스키를 만들어 온 곳이다. 섬에서 가장 오래된 싱글 몰트위스키 브랜드인 탈리스커는 ‘경사진 바위’라는 뜻이 있다.
이완 건(Ewan Gunn) 탈리스커 수석 글로벌브랜드 담당은 “미국 버번위스키는 독특한 당화(mashing) 과정으로 차별화했고, 아이리시 위스키는 독보적인 캐스크(숙성) 과정을 앞세우지만, 스카치위스키는 스코틀랜드 전역에 있는 마을과 여러 세대에 걸쳐 위스키를 만든 사람에 의해 세워졌다”며 “스카치위스키는 장소와 사람에 관한 위스키”라고 말했다. 깨끗한 자연과 스코틀랜드 증류소가 오랫동안 발전·유지해 온 기술이 스카치위스키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전통 제조 방식 고수하는 증류소
세계적인 주류 시장 조사 업체 IWSR에 따르면, 탈리스커는 2023년 기준 세계 1위 피트 몰트위스키로 인정받고 있다.
이곳에서 위스키가 생산된 탈리스커의 역사는 18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코틀랜드 에익(Eigg)섬 출신인 휴, 케니스 맥아스킬(Hugh & Kenneth MacAskill) 형제가 처음 증류소를 세웠다. 하지만 이곳 증류소가 번창하기 시작한 것은 50년이 더 지나서다. 운영난으로 여러 번 주인이 바뀐 탈리스커는 1880년대 가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보물섬’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쓴 영국 유명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탈리스커에 ‘위스키의 왕(The King o’drinks)’이란 찬사를 보냈다.
강한 피트(peat) 향으로 유명한 탈리스커는 과일, 소금, 후추 맛을 독특하게 조합해 오랫동안 컬트(cult)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에는 우리말로 이탄(泥炭)이라고 부르는 피트가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진흙 상태의 석탄인 이 피트를 때 젖은 맥아를 건조하면, 위스키에 강한 피트 향이 스며든다.
위스키는 보리와 물, 효모(이스트) 단 세 가지 재료를 배합해 최소 3년, 길게는 수십 년간 오크 통에 숙성해 만들어진다.
이 간단한 재료가 위스키로 향하는 가장첫 단계는 보리를 물에 적셔 싹을 틔우는 맥아 제조(몰팅·malting) 과정이다. 탈리스커는 증류소 뒤에 있는 호크 힐(Hawk Hill) 지하 샘에서 끌어올린 천연수에 보리를 넣고불려 싹을 틔운다. 이렇게 만들어진 맥아를 피트를 땐 불로 훈연해 말린다. 건조된 맥아를 잘게 부순 후 끓인 물을 부어 맥아즙을 만든다. 처음에는 63.5℃ 물과 섞은 뒤 두 번째는 75℃ 물이 주입된다. 마지막으로 85℃ 뜨거운 물과 섞어 당화 공정을 거친다.
발효 기간에 따라 위스키 맛이 크게 달라진다. 발효 기간이 짧을수록 곡물, 견과 향이 강하고, 발효 기간이 조금 더 지속되면 상쾌한 향으로 발전한다. 숙성 시간이 더 길어지면 위스키는 과일 향을 낸다. 땅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곡물이 인고의 과정을 거쳐 과실수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탈리스커 관계자는 “물과 보리, 효모가 거치는 매우 극적인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기술과 지식”이라고 설명했다. 증류소를 둘러싼 아름다운 자연환경만으로 이 진득한 캐러멜색 액체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사람의 손길로 탈리스커 위스키의 풍미를 배가시키는 절정의 단계가 바로 증류 과정이다. 발효 이후 위스키 원액을 증류하는 단계에 이르는데, 탈리스커는 독특한 증류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탈리스커는 1928년 이전까지 삼중 증류 시스템을 이용해 풍미를 높여왔다. 1928년부터는 2회 증류 방식을 도입했지만, 웜통(worm tubs)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이용해 증류 횟수를 늘린 효과를 내고 있다.
"엄격한 규칙 없이 다양하게 즐긴다"
이곳 양조장에는 1960년 화재 이후, 이전과 동일하게 제작된 워시 증류기(wash stills) 두 대와 스피릿 증류기(spirit stills) 세 대가 있다. 이 사이에 U 자 모양의 독특한 증류 방식이 더해진다. 양조장 밖에 있는 거대한 둥근 나무통은 찬물을 채워 구리관을 식히는 역할을 하는데, 증류된 기체가 이 구리관을 지나며 액체로 바뀌는 응축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은 탈리스커 위스키의 무게감을 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많은 양조장이 현대적이고 효율적인 열교환기(shell and tube) 방식으로 바꿨지만, 탈리스커는 웜통을 사용하는 오래된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웜통은 구리 함량이 높아 더 빨리 마모되고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며 더 많은 물이 필요하다. 하지만 탈리스커는 높은 품질의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그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얻은 원액은 미국산 참나무로 만든 오크 통에서 숙성된다. 이 긴 과정을 거친 후에야 보리와 물은 스코틀랜드 토착민인 게일족이 ‘생명의 물’이라고 불렀던 스카치위스키로 태어난다.
탈리스커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위스키로 유명하다. 건 담당은 “이 절묘한 액체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정해진 규칙은 없다” 면서도 “탈리스커는 풍미가 뛰어나 다른 재료 때문에 풍미가 가려지는 일이 거의 없어 대담하게 선택할 수 있다. 지금 막 껍데기를 벗긴 굴과 탈리스커 한 방울은 특별히 훌륭한 작용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탈리스커의 대담한 강렬함은 한국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라고 덧붙였다.
탈리스커 위스키는 10년과 18년, 25년산이 주력이다. 특히 탈리스커 10년산은 저렴한 가격에 강렬한 스모크 향과 바다의 단맛, 목 넘김 전 느낄 수 있는 섬세한 매운맛을 즐길 수 있는 싱글 몰트위스키다. 이 밖에도 탈리스커 30년과 셰리 통에서 숙성한 스카이(Skye), 스톰(Storm), 포트 통에서 추가로 숙성한 포트 루이지(Port Ruige)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