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시장이 급등하자 정부가 제동 걸기에 나섰다. 전 정부처럼 강한 수요 억제 드라이브를 걸 정도는 아니지만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수요 조절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당장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대출 규제 카드가 대표적이다. 단기 급등 지역을 중심으로 조만간 가격 오름세는 주춤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장 수요자가 원하는 주택 공급이 많지 않은 데다 기대 심리도 높아서 하락세로 전환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서울 아파트값 껑충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8월 말까지 집계되는 7월 아파트 거래량(계약일 기준, 8월 27일 현재 8599건)은 9000건에 이를 전망이다. 2006년부터 2023년까지 월평균 거래량이 6000건 남짓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거래가 폭발한 셈이다. 경기도 역시 7월 아파트 거래량이 1만5000건을 훌쩍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8월 27일 현재 1만4853건). 경기도의 역대 월평균 거래량 1만1954건을 웃도는 거래량이다.
거래가 크게 늘면서 가격도 상승세다. 서울 지역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는 상반기에 4.48% 올랐다. 같은 기간 경기도는 1.83%, 인천은 2.38% 상승했다. 서울은 지난해 초 바닥권에 비하면 1년 6개월 사이 거의 14% 이상 오른 것이다. 이에 따라 6월 말 기준 서울은 고점(2021년 10월) 대비 87.1% 수준으로 회복됐다. 강남 3개 구가 포함된 동남권은 더 높아 91.3% 수준까지 올라섰다. 평균 가격이나 중위 가격으로 보면 이미 고점을 넘어섰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비싼 신축 아파트가 입주하면 이들 가격이 높아지므로 고점 회복 여부는 실거래가 지수로 따지는 게 맞을 것 같다.
시장 참여자의 기대 심리는 높다. 1년 이상 전셋값이 상승한 데다 분양가 급등과 공급 절벽 우려 등에 따른 공급 불안이 겹쳤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8월 주택 가격 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118로 나타났다. 아파트 실거래가 기준 역사적 고점이었던 2021년 10월(125) 이후 34개월 만에 최고치다. 해당 지수가 100보다 높으면 1년 뒤 현재보다 집값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 응답자가 더 많다는 의미다. 한국부동산원의 선행지수 격인 아파트 실거래가 잠정 지수(7월) 역시 모두 플러스를 보인다. 서울(1.66%), 경기(0.61%), 인천(0.48%) 모두 비교적 높게 나타나 회복세는 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도 지역별로 편차가 있으나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 기준 6월 들어 강보합세(0.07%)로 전환됐다. 서울발 훈풍이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7월 잠정 지수 역시 소폭 플러스(0.05%)를 보인다. 하지만 미분양이 80%를 넘을 정도로 소화불량에 시달리고있어 급반등보다는 체력 다지기가 더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지방은 빠르면 연말, 늦어도 내년 이맘때 본격 회복세가 나타날 것으로 점쳐진다.
시장 흐름은 옐로칩이 이끈다
지금 주택 시장의 새 트렌드는 갈아타기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주로 30대 후반에서 40대가 시장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서울 지역을 살펴보면 뜨고 있는 동네가 성동구와 광진구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실거래가 아파트 동향을 조사한 결과, 서울 25개 구 가운데 가장 많이 오른 곳이 성동구로 9.6% 상승했다. 그다음이 광진구(9.2%)다. 주택 시장의 선도 역할을 해왔던 강남권은 이에 못 미친다. 서초구는 1년 새 7.9% 올랐으나, 송파구(6.3%)와 강남구(6.1%)는 6%대에 머물렀다. 중소형 아파트가 밀집해 ‘갭투자’의 성지로 불렸던 노원구는 되레 0.7% 떨어졌다. 맞벌이 부부에게 인기가 높은 마포구는 7.1% 올랐다.
성동구가 많이 오른 것은 갈아타기 수요가 많았던데다 신축이나 준신축이 많아서다.도심이나 강남으로 맞벌이가 통근하기 편하고 옥수동, 금호동 일대 재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새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다. 광진구는 광장동 일대를 중심으로 교육 여건이 좋은 곳이다. 광장동은 한때 목동과 경쟁할 정도로 인기 주거지역이었으나 재건축 테마를 가진 목동에 밀렸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있었으나 젊은 학부모가 몰리면서 시세 상승이 나타난 게 아닌가 분석된다. 이들 지역 아파트는 블루칩보다는 옐로칩 지역으로 꼽힌다. 강남권으로 가자니 부담스러워 아이 키우기 좋고 출퇴근하기 편한 곳으로 이들 지역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대출 제한이 풀린 것도 이들 지역 수요 증가의 한 요인이다.
시장은 수요자의 니즈나 욕망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낸다. 전세를 안고 사는 갭투자가 많아져야 집값이 오르기 시작할 것이라는논리도 틀렸다. 실수요만으로 집값이 오르긴 힘들고 시세 차익을 겨냥한 갭투자자가 나서야 본격 상승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요즘 아파트값 오름세를 설명하지 못한다. 지금은 갭투자보다 살 집(정주 공간)을 사려는 사람들이 시장 흐름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사례를 지금 시장분석이나 전망에 도식적으로 대입하면 큰 오류를 낳는다.
전 고점 돌파 아파트는 조심
문제는 정부가 시장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시장 과열을 막고 안정세를 유도하는 것은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응당 해야 할 책무이기 때문이다. 당장 금융 당국은 9월 1일 시행되는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금리를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선 더 높게 적용했다. 즉 은행권의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서는 0.75%포인트가 아닌 1.2%포인트로 스트레스 금리를 상향 조정했다. 정부는 이미 주택담보대출의 60%를 차지하는 디딤돌대출과 버팀목 대출금리를 최대 0.4%포인트 인상했다. 또 집값이 잡히지 않으면 현재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 대출 등에만 적용하는 DSR 적용 범위를 전세 대출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심지어 담보대출인정비율(LTV)을 올리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 현재 무주택자·1주택자는 규제 지역(서울 강남 3구, 용산구)에서 LTV 50%, 비규제 지역에서는 70%가 각각 적용된다. 이런 규제를 시행할 경우 부동산 시장에 공급되는 유동성이 줄어들 수 있다. 서울 지역에선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추가적으로 지정될 가능성도 있다.
수도권 아파트 시장은 금리나 유동성, 대출 규제 등 금융 변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집값이 싼 지방과는 달리 가격대가 높아 집을 살 땐 대출을 낄 수밖에 없다. 그만큼 대출 제한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얘기다.
9월을 전후해서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한국도 연말쯤에 금리를 낮출 것 같다. 하지만 서울 인기 지역 아파트는 이미 금리 인하 기대감이 반영된 상태다. 한때 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2%대까지 떨어진 점, 가격에서도 신고가를 경신한 점에서 볼 수 있다.
미국 금리가 인하되더라도 그 영향은 서울 외곽이나 경기, 인천, 지방 아파트에 더 많이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덜 올라서다. 물이 아래도 흐르듯이 투자자도 싼 곳으로 움직인다. 상가나 토지, 오피스텔, 빌딩 등 비아파트 시장 역시 금리 인하로 수익률이 올라가 거래에 숨통이 트일 것이다. 따라서 서울 인기 지역 아파트를 매수하더라도 가격 메리트가 있는 매물에 선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전 고점을 돌파한 지역이나 아파트 매입은 신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