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은 역사적으로도 지혜와 권위, 경륜을 상징한다.  
인간 사회에서 이런 사회적 신호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심리학적으로 수염을 깎는 면도 행위는 그 자체로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갱신(renewal)의 의미가 있다. /사진=셔터스톡
수염은 역사적으로도 지혜와 권위, 경륜을 상징한다. 인간 사회에서 이런 사회적 신호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심리학적으로 수염을 깎는 면도 행위는 그 자체로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갱신(renewal)의 의미가 있다. /사진=셔터스톡
1990년대에 태어난 내 아들은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아본 적이 없다. 그가 초등학교에 다닌 시절에는 남자가 이발관보다 미용실을 이용하는 비율이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이후 경제개발과 고도성장 덕분에 가전제품이 집집이 자리를 잡았다. 전기면도기도 급속도로 보급됐다. 그 여파의 하나가 바로 이발관의 쇠락이다.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나온 나는 어린 시절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았다. 이발관 벽에는 ‘못난이 3형제’ 그림이나 러시아 시인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시화 액자가 걸려 있었다. 어떤 집에는 ‘기도하는 소녀’라는 이름의 그림이 걸려 있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 수염이 나면서부터 이발관 아저씨가 직접 면도해 줬다. 일단 이발 의자를 뒤로 젖히고, 얼굴에 따뜻한 물수건을 덮어준다. 아마도 메마른 피부에 윤기를 줘 부드럽게 면도해 주기 위한 보습 효과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면도용 비누통에서 솔을 휘저어 거품을 일으켜 수염 난 얼굴 부위에 골고루 발라준다. 겨울에는 거품 내는 솔을 난로 연소 통에서 살짝 데운 뒤에 거품을 바른다. 겨울에 고객이 찬 기운을 느끼지 않게 하는 배려였을 것이다.

이발관 아저씨는 나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긴 손잡이가 달린 면도용 칼로 귀밑에서부터 차례로 면도를 해나갔다. 면도용 칼은 이미 숫돌로 잘 갈아놓았을 텐데, 무슨 이유에선지 면도하기 전에 가죽에다 한두 번 문질러서 다시 날을 세운다. 깨끗하게 씻은 이발사 아저씨의 손과 면도용 칼이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면서 내 얼굴에 난 수염은 쓱쓱 부드럽게 잘려 나간다. 이발관 특유의 냄새와 면도용 칼이 피붓결을 따라서 리드미컬하게 움직일 때, 나는 이발관 아저씨가 연주하는 감각의 교향곡에 심취한다. 그는 고도의 집중력과 몰입감으로 섬세하게 내 피부를 터치한다. 자칫 집중력이 흐려져서 얼굴이 날카로운 칼에 살짝이라도 베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전기면도기가 보급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남자에게 이발관은 단순히 머리만 깎는 것이 아니라 면도라는 중요한 과제를 맡아 실행해 주던 중요 기관이었다.

그런데 일회용 면도기가 등장하더니 이제는 전기면도기까지 나오면서 이발관의 중요성이 반감한 것이다. 혼자서도 큰 어려움 없이 면도라는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게 됐다.게다가 개성 있는 머리 스타일과 피부 미용으로까지 확대된 이발 및 미용 트렌드는 대부분 남성의 발길을 확실하게 미용실로 돌리게 했다. 

대학생 시절 나는 지인에게서 이중 날 면도기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외국 출장길에 사 온 면도기였다. 지금이야 일회용 면도기도 이중 날은 기본이고 3중, 4중에 6중 날까지 생겼지만, 당시만 해도 이중 날 면도기는 시중에서 보기 힘든 고급 제품이었다. 그땐 국산 제품의 품질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렇게 선물 받은 이중 날 면도기를 잘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중 날의 간격을 조절하는 나사를 잘못 건드려 면도 중에 아래턱의 살점이 살짝 깎여나가는 사고가 일어났다. 얼굴에 거품과 함께 선혈이 낭자해졌다. 깜짝 놀란 나는 급히 면도를 마무리하고 응급처치를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때 그 사건이 내게는 강한 트라우마가 됐던 모양이다. 나는 전기면도기 품질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이후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어지간해서는 습식 면도를 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아무래도 깔끔하고 상쾌한 면도로는 전기면도기로 하는 건식 면도가 면도용 칼로 하는 습식 면도를 당할 수 없다. 다행히 요즘은 전기면도기 수준이 일취월장해 방수 기능이 확실해졌다. 나처럼 습식 면도를 꺼리는 사람도 시중에 파는 면도용 거품을 이용해 전기면도기를 쓰면 편하고 깔끔하게 피부에 무리를 주지 않고 나름 습식 면도의 개운함을 취할 수 있다(그래도 면도용 칼 면도에는 못 미치지만).

그런데 사람은 왜 면도를 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뒤집으면 ‘왜 사람은 수염을 기르는 것일까’ 하는 질문과 이란성 쌍둥이처럼 맞닿는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수염을 기르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성적인 매력을 꼽을 수 있다. 수염은 성숙한 남성의 상징이다. 수염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나타내는 지표로 작용한다. 수염은 잠재적인 여성 파트너에게 성적인 매력을 높일 수 있다는 가설도 있다. 

수염은 역사적으로도 지혜와 권위, 경륜을상징한다. 인간 사회에서 이런 사회적 신호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염은 신체를 보호하기도 한다. 수염은 물리적으로 얼굴이 나뭇가지 등에 긁히거나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동물의 털처럼 체온을 유지하는 기능도 한다. 

반대로 이런 나름 큰 의미를 가진 수염을 밀어버리는 면도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앞서 말한 성적인 매력이 수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을 더 선호한다. 수염이 신체 보호 작용을 한다지만 털에는 세균이나 오염 물질이 쌓이기 쉽다. 면도하면 피부가 더 깨끗해지고 더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다. 기분도 상쾌해진다. 사회적으로도 면도한 얼굴은 성숙함, 책임감, 전문성을 나타내는 신호가 된다.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 말고 실제 현장에서 여성이 수염을 기르는 남성과 면도하는 남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아는 게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전기면도기를 파는 영국 온라인 업체인 CTC(Cut Throat Club)에서 18~60세 여성 108명에게 ‘남성의 얼굴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위는 어디인가요’라고 물었더니 39%가 깨끗하게 면도한 얼굴을 꼽았다.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과 짧게 기른 수염을 선호하는 여성 비율은 각각 30% 정도로 비슷했다. 수염 기른 사람을 선호하는 비율을 더하면 면도하는 얼굴 선호보다 높다는 게 눈에 띈다. 업무 환경 측면에서 ‘어느 쪽이 더 전문적으로 보이는가’라는 질문에는 깨끗하게 면도한 얼굴을 선호하는 비율(75%)이 그렇지 않은 얼굴을 압도했다. 그렇다면 이미 수염을 기른 사람 중에서 파트너를 고르라면 어떤 이를 더 선호할까. 여성은 짧은 수염(22%)이나 손질하지 않은 덥수룩한 천연 수염(7.4%)보다는 단정하게 다듬은 자연스러운 천연 수염(46%)을 더 선호했다. 물론 그럼에도 끝까지 깨끗하게 면도한 얼굴을 선호한다는 사람(24%)도 적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당시에 나는 두 차례 백신을 접종했다. 불행하게도 두 번이나 코로나19에 걸렸다. 

당시에는 법적으로 일주일간 격리 조치가 행해졌다. 나는 서재에 틀어박혀 한 주를 지냈다. 아내가 사식처럼 넣어주는 밥을 죄수처럼 받아먹는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이었다. 하지만 지극히 내향적인 성향에 책상물림형이라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이때까지 시도해 보지 못한 수염 기르기에 도전했다. 과연 며칠 지나지 않아 수염이 덥수룩해졌다. 하지만 내가 수염 기르는 것에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아내 때문에 결국 다시 면도해야 했지만 말이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수염은 단지 얼굴의 액세서리가 아니라, 인격의 확장이다.” 글쎄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다. 수염을 기르는 일은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사회· 문화적 배경에 따라 선호도는 분명하게 갈린다. 당연하게도 깨끗하게 면도할 것인가, 수염을 기를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물론 우리나라 직장에서 수염을 기르는 일이 아직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쨌거나 CTC의 조사처럼 수염을 기르더라도 제발 면도를 통해 단정하고 깔끔하게 손질하고 다녔으면 좋겠다.

심리학적으로 수염을 깎는 면도 행위는 그 자체로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갱신(renewal) 의미가 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잠시나마 꼼꼼하게 자기 몸을 매만지는 집중과 몰입의 시간을 경건한 의식처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상의 의식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말이다. 

김진국 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김진국 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김진국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