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팬더4’. /사진=드림웍스
‘쿵푸팬더4’. /사진=드림웍스

2024년에 개봉한 '쿵푸팬터4'는 드림웍스가 8년 만에 선보인 대표 애니메이션 시리즈다. 2008년 시작된 이 시리즈는 주인공 포의 성장 과정을 단계별로 섬세하게 그려내며 관객의 사랑을 받아왔다. 첫 번째 영화는 평범하고 어리숙한 팬더 포가 '용의 전사'로 변모하는 과정을, 두 번째 영화는 과거의 아픔을 직면한 포가 내면의 평화를 찾는 여정을 그린다. 세 번째 영화에서 포는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발견하며 마침내 진정한 영웅으로 완성된다. 

이전의 완결적인 서사와는 달리, '쿵푸팬더4'는 '변화'를 주제로 삼으며 과도기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영화에서 포의 사부인 마스터 시푸는 그에게 후계자를 지명하여 '용의 전사' 타이틀을 전수하고, 나아가 '평화의 계곡' 마을의 영적 지도자가 되라고 권유한다. 하지만 마을을 수호하는 쿵푸 영웅으로 남고 싶은 포에게 이러한 변화는 달갑지 않다. 고민하던 포의 앞에 쿵푸 고수의 능력을 복제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당 카멜레온이 나타나고, 포는 그녀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변화를 받아들이며 후계자를 선정하게 된다. 

자이수이 미술관. /사진=dezeen
자이수이 미술관. /사진=dezeen

자연과 하나 되는 내면의 평화

쿵푸팬더 시리즈는 화려한 액션보다 마음의 자세를 더욱 강조해왔다. 모든 편을 관통하는 주요 개념은 우그웨이 대사부의 마지막 가르침인 '내면의 평화'다. '쿵푸팬더4'에서도 마스터 시푸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포에게 명상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고요한 마음에서 얻는 깨달음을 통해 오직 마음이 이끄는 대로 보고, 느끼고, 행동하라'는 영화 속 가르침은 노장사상의 '무위자연'과 닮아 있다. 노자는 억지로 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태도를 강조했으며, 장자는 세속적 속박이나 명예와 이익의 집착에서 벗어나라고 했다. 세계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은 정신적 자유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내면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영화 속 쿵푸 장소는 속세와 떨어져 자연과 하나된 모습으로 묘사된다. 예를 들어, 포와 스승은 산봉우리에 올라 분홍색 꽃이 만발한 복사나무 아래에 앉아 명상을 수행한다. 이 장면에서 고립된 환경과 복사꽃의 이미지는 종종 무위자연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무릉도원을 떠올리게 한다. 중국 시인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에서 길을 잃은 한 어부가 복사꽃 잎이 떠내려오는 물길을 따라 도달했던 이상향의 마을이 무릉도원으로 불린다. 영화 속 쿵푸의 성지인 제이드 궁전도 '평화의 계꼭'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다. 여기에서 산 능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 가파른 계단은 속세로부터 격리를 상징한다. 계단 끝의 궁전 마당에서는 마을의 모습이 구름 아래 사라지고, 산수화처럼 겹겹이 펼쳐진 산봉우리가 수행자의 시야를 둘러싼다. 

내면의 고요함이 분출하는 역동성

포가 자연과 동화되어 얻은 내면의 고요함은 역설적으로 강렬한 움직임으로 발현된다. 악당의 공격을 유연하게 흘려보내고, 공중을 가로지르며 돌진하는 포의 쿵푸 동작은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긴 듯 매끄럽게 이어진다. 이는 실제 소림사의 '오형권법'에서 용, 호랑이, 뱀, 학, 표범 등의 동물 동작을 모방하여 자연의 원리를 무술에 적용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영화는 내면과 외연, 고요함과 역동성, 부드러움과 강인함처럼 상반된 요소가 자아 안에서 분리되지 않고 조화롭게 상호작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를 상징하듯, 극 중 현실계와 영혼계를 잇는 '지혜의 지팡이'는 음과 양의 무한한 상생을 의미하는 태극의 형상을 띠고 있다. 마지막 격투 장면에서 여러 쿵푸 고수의 동물 형상으로 변신하는 카멜레온을 향해 포는 이렇게 말한다. "겉모습의 변화는 의미 없어. 마음이 변해야 진짜 변하는 거야."

자연을 향한 건축의 대담한 몸짓

중국 르자오의 신개발 구역에는 산과 언덕이 포근히 감싸안은 호수가 평온한 풍경을 펼쳐낸다. 나무와 갈대, 물에 비친 하늘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자연의 고요함 속에서, 하나의 지붕이 대담하게 호수 중앙을 가로지른다. 수면에 닿을 듯 낮게 뻗어 나가며 부드럽게 물결치는 1㎞ 길이의 지붕은 영화 속 쿵푸 고수의 몸짓처럼 우아하면서도 역동적이다. 2023년 개관한 '자이수이 미술관'의 의뢰인은 일본 건축가 이시가미 준야에게 호수와 밀접하게 연관된 미술관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질문했다. 이시가미는 이에 대한 답으로 호숫가가 아닌 호수 한가운데 있는 미술관을 제안했다. 

미술관은 인공 호수의 동쪽과 서쪽 끝에 있는 주차장과 부속 건물을 연결하며, 방문객에게 물 위를 산책하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건축가는 건축물의 몸체를 유연하게 움직여 1㎞에 달하는 긴 동선을 따라 다채로운 공간이 이어지도록 했다. 길쭉한 내부 공간의 폭은 동서 방향으로 5m에서 20m로 확장되며, 예술 전시 공간과 주변 자연과 거리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킨다. 곡면 지붕은 상하좌우로 1.2m에서 5m 사이를 오가며 높이가 변화한다. 낮게 기울어진 지붕 아래에서는 호수만 보이지만, 높이 솟은 곳에서는 시야가 확장되어 먼 산의 경관이 드러난다. 이러한 지붕의 높이 변화는 자연광의 유입을 조절하 각 영역의 특성에 맞는 채광과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자이수이 미술관. /사진=dezeen
자이수이 미술관. /사진=dezeen

호수와 동화되는 내부 공간

자이수이 미술관의 대담한 몸짓은 자연에 부드럽게 동화되려는 건축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건축가는 자연과 건축물을 가깝게 두고, 이들 사이의 경계를 최대한 모호하게 하는 것이 설계의 주제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개념은 벽이 없어 시선이 연속되는 미술관 내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광택 콘크리트로 마감된 천장과 바닥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호수의 색채를 반사하며 공간에 생동감을 더한다. 호수 수면보다 10㎝ 높게 설계된 바닥은 가장자리를 향해 부드럽게 수면 아래로 내려가고, 외벽의 유리 패널은 수면 아래 10㎝에서 멈춰 바닥과의 틈을 만든다. 이 틈으로 호수의 물이 유입되어, 내부는 호수의 연장선에 있는 모래톱처럼 느껴진다. 바닥 높이를 따라 리듬감 있게 곡면을 형성하는 수면이 유리면을 통해 외부로 이어지면서 미술관과 호수의 경계는 점차 흐려진다. 호수를 따라 수위가 변화하는 내부 수면은 호수가 얼어 붙는 겨울철에도 바닥 하부의 난방 시스템을 통해 액체 상태를 유지한다. 전체 공간은 인공조명이 없이 자연광만으로 운영되고, 개폐할 수 있는 유리 패널을 통해 신선한 공기로 채워지면서 사계절 내내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또 하나의 자연'을 완성한다. 내면의 평화에서 나오는 포의 위력적인 장풍처럼, 자연과 동화(同化)를 꿈꾼 건축가의 집요한 노력이 '부드러운 거인'을 탄생시켰다.

강현석 SGHS 설계회사 소장 코넬대 건축대학원 석사,서울대 건축학과 출강, 전 헤르조그 앤드 드 뫼롱스위스 바젤 사무소 건축가
강현석 SGHS 설계회사 소장
코넬대 건축대학원 석사,서울대 건축학과 출강, 전 헤르조그 앤드 드 뫼롱스위스 바젤 사무소 건축가
강현석 SGHS 설계회사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