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라치 사진은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독특하고 때론 논란이 되는 종류의 사진이다. 유명 인사, 공인, 정치인, 스포츠 스타 등 대중의 관심을 받는 인물의 사적인 순간을 동의 없이 촬영한 사진을 의미한다. 사진이 촬영되고 있는지 알지 못하거나 사진 촬영을 허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되는 경우가 많앋. 이 사진은 가십 잡지나 온라인 매체 등에 대중의 흥미를 끌기 위한 목적으로 실린다.
20세기 중반 타블로이드 신문과 잡지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파파라치 사진에 대한 수요 역시 높아졌다. 브리지트 바르도, 엘리자베스 테일러, 믹 재거 등이 파파라치의 주요 타깃이 되었다. 또 한 번 파파라치 사진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였다. 온라인 세계에서 사진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와 전파력으로 유통됐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패리스 힐턴, 린제이 로한 등의 사적인 모습이 여과 없이 소비되었다. 개인이 겪는 고통으 ㄹ통해 파파라치 사진가는 돈을 벌었다. 대중은 비용 없이 사진을 즐겼다. 그 대가는 무엇이었을까.
마자리초 앤드 드로윌랄(Mazaccio & Drowilal)은 엘리스 마작(Elise Mazac)과 로베르 드로윌랄(Robert Drowilal)로 구성된 프랑스 아티스트 듀오다. 1980년대 후반 프랑스 남부 시골에서 태어난 두 사람은 작은 극장 외에는 문화적 콘텐츠를 접하기 어려웠기에, 자신들이 자란 지역을 문화적 사막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 가정용 인터넷이 보급됐을 떄,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접하게 된 문화적 콘텐츠는 이들을 광적으로 사로잡았다. 영화, 게임, 음반, 만화를 다운받고 이를 소비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특히 미국의 문화 콘텐츠는 이들에게 튼 영향을 미쳤고, 이들은 그 안에서 성장했다.
마자치오 앤드 드로윌랄이 문제 삼고 해체하려는 것은 자신들 역시 큰 영향을 받은 대중문화 속 이미지다. 이미지를 소비한다는 것은 곧 그 이미지의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들은 현대 대중문화 속 이미지를 변형하고 콜라주해 재해석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이들은 인터넷에서 수집한 자료를 작업의 재료로 삼는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미지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비전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바로 이 지점을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라는 이들의 말처럼, 우리가 날마다 인터넷에서 소비하는 끝없는 이미지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과 세상에 대한 관점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파파라치(Paparazzi, RVB Books·2021)'는 다양한 유명인의 모습을 포착한 파파라치 사진을 재료로 한 콜라주 작업을 담은 책이다. 이들은 우선 인터넷에서 파파라치 사진을 수집했다. 그리고 공통된 요소를 중심으로 사진을 분류했다.
사진 속 인물들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행동으로 분류돼 있다. 1) 유모차 밀기 2)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걷기 3) 입양한 아이 안고 있기 4) 요가 매트를 들고 있기 5) 셀카 찍기 6) 서핑하기 7) 손가락 욕하기 8)애완동물과 산책하기 9) 차에서 나오기 10) 옷, 목도리, 쇼핑백, 손 등으로 얼굴 가리기 11) 헛디뎌 넘어지기 12) 캐나다 구스 패딩을 입고 걷기 13) 마트 주차장에서 카트 밀기 14) 달리기 15) 골프하기 16) 경기 관람하기 17) 바이크 타기 18) 키스하기 19) 보디가드의 보호받기 20) 해변가에서 산택하기 등 우리가 그간 소비하며 익숙해진 파파라치 사진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배경이 될 이미지 역시 인터넷에서 수집해 그 위에 파파라치 사진을 콜라주해 최종 이미지를 완성했다.
책에 담긴 사진 속 유명 인사들은 사람들의 선망으로 작동하는 엔터테인먼크 산업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의 파파라치 사진은 전 세계에서 소비되고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쉽게 모방된다. 이 책은 특정한 행동이나 유행의 반복을 콜라주로 드러낸다. 요가 매트를 든 사진은 요가가 큰 인기를 끌었던 시기를 떠올리게 하고, 입양한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은 비(非)백인 아이를 입양한 스타들이 이렇게 많았는지 새삼 놀라게 하며, 특정 브랜드의 패딩을 입고 있는 사진은 유행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콜라주가 희극적이고 도발적인 효과를 발생시킴과 동시에 광범위하게 소비되는 파파라치 사진의 영향력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진정한 모방이 존재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라이프스타일을 전파한다. 이들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를 분석하고, 조금은 비틀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래서 유명인의 실루엣을 정성스럽게 오려내고, 유형별로 분류한 후, 우리가 화면에서 자주 보게 되는 과도하게 리터칭된 바탕화면을 연상시키는배경에 다시 붙였다. 동일한 행동의 축적을 통해, 한 명의 개인에게서 군중 효과로 변화하게 된다. (…) 이들을 원래의 맥락에서 벗어나게 해 재구성함으로써, 표면 아래에 숨겨진 이데올로기와 사회 모델을 드러낸다."
이처럼 마자치오 앤드 드로윌랄의 작업은 대중문화 속에서 소비되는 이미지의 힘을 조명한다. 그간 보아온 파파라치 사진을 우리가 단순히 소비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힘이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들의 작업은 희극적인 요소와 함께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으며, 대중문화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이미지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지를 보여준다. 이미지는 어떻게 미디어를 통해 유통되는가? 이미지는 어떻게 우리에게 감정적으로, 이성적으로 영향을 미치는가? 이미지는 어떻게 의미와 힘을 얻는가? 그리고 어떻게 기호와 상징으로 소통되는가? 이러한 질문을 남기는 책이다.